흘러간 명화 가운데 진 시몬즈와 말론 브란도가 주연한 1954년 작 ‘데지레’가 있었다. 나폴레옹이 스물세 살 때, 형 조세프의 집에 갔다가 형의 처제인 데지레(Desiree·1777~1860·사진)를 만났다.
미모에 15만 프랑을 유산으로 가지고 있던 데지레와 나폴레옹은 약혼까지 했으나, 욱일승천하던 그들의 사이에 조세핀이 끼어들어 결혼했다. 처음으로 한 남자를 사랑했던 데지레는 상심한 나머지 죽음을 생각했다. 데지레의 마지막 편지를 받은 나폴레옹은 자신의 과오를 후회하며 전도유망한 스웨덴의 왕자 베로나도트(Bernadotte) 장군과 결혼하도록 중매했다.
뒷날 베로나도트가 스웨덴의 왕위계승권자로 경합되었을 때 나폴레옹은 그를 기꺼이 추천하고 힘써 주었다. 그러나 베로나도트는 스웨덴의 왕이 되어 영국과 나폴레옹을 타도하는 데 앞장서자 그는 제위에서 물러나 엘바섬으로 유배되었다. 이때 데지레의 가슴 아픔이 어떠했을까? 그 뒤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 귀양 갔을 때 마지막으로 그를 찾아간 여성은 데지레였다.
세월이 흘러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황제로 등극했다. 그때까지 데지레는 스웨덴의 황후로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루이 황제는 숙부 나폴레옹의 후광을 업고 자기의 권위를 높이고자 파리에 오스망 광장을 건립하게 했다. 그런데 막상 그 일대의 민가를 헐어 버리려니 한 모퉁이에 나폴레옹이 데지레에게 사주었던 집이 한 채 있었다.
루이는 살아 있는 데지레의 추억을 생각하여 그 집만은 헐지 않았다. 그러다가 데지레가 83세에 세상을 떠나자 그제야 데지레의 유택을 헐고 오스망 광장을 완성했다. 자고 깨면 헐고 짓기를 식은 죽 먹듯 하는 우리의 도시 건설을 보노라면 문득 데지레와 나폴레옹 3세가 생각난다. 무지한 관리와 탐욕스러운 건설업자와 무심한 시민이 문화재를 좀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