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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현의 기쁨과 희망] 우리에게 교황이 있다

중앙일보

2026.05.06 08:10 2026.05.0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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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현 가톨릭평화방송 신문(cpbc)보도주간

조승현 가톨릭평화방송 신문(cpbc)보도주간

지난해 5월 8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새 교황의 선출을 전 세계에 알리는 신호였다. 당초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을 이어 새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는 길어질 것으로 예상했었다. 교황이 될 자격이 있는 추기경들의 국가와 인종과 언어가 다양하고 무엇보다 전임 교황에게 보낸 사람들의 많은 사랑이 후임 교황에게 부담이었다. 추기경들이 의견 일치를 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콘클라베의 추기경들은 예상을 깨고 이틀 만에 새 교황을 뽑았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인물이 뽑혔다는 말이다.

첫 일성이 ‘평화’였던 레오 14세
전쟁 반대, 성경의 복음 거듭 강조
참된 평화 세상 곳곳에 펼쳐지길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 바티칸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서 수석 추기경은 ‘우리에게 교황이 있다’는 뜻의 라틴어 “하베무스 파팜”을 외치며 세상에 새 교황의 탄생을 알렸다. 새 교황은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 이어 새 교황은 당신의 교황 명으로 ‘레오 14’세를 선택했다고 수석 추기경은 말했다. 들뜬 마음으로 새 교황 탄생에 환호하던 바티칸 광장의 사람들은 곧 놀라움에 빠졌다. 왜냐하면 새 교황이 최초의 미국 출신 교황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오랜 역사 속에서 미국인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기는 어렵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정치·경제·문화적 영향력이 막강한 ‘수퍼파워’ 국가이다. 만약 영적 지도자인 교황까지 미국인이 맡게 되면, 가톨릭교회가 미국의 외교 정책이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또한 교황은 전 세계 13억 신자를 아우르는 보편적 지도자인데, 중국이나 이란처럼 미국과 대립하는 국가의 신자들에게는 미국인 교황의 존재가 종교적 수용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다. 하지만 추기경들은 ‘가장 미국인 같지 않은 미국인’이라는 평을 받는 미국 시카고 출신의 동료 추기경을 교황으로 뽑았다.

수석 추기경의 소개로 세상 앞에 첫 모습을 드러낸 레오 14세 교황의 첫 마디는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였다. 이는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건넨 첫인사를 인용한 것으로, 갈등이 많은 세상에 ‘무기를 내려놓는 겸손한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하는 의미였다. 레오 14세 교황의 첫 일성을 들은 사람들은 교황이 이제 ‘평화’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을 것임을 직감했다. 영어를 포함해 다양한 언어를 할 줄 알고 무엇보다 페루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 레오 14세 교황의 삶의 궤적이 증거였다. 참고로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인사는 “형제자매 여러분!”이었다.

평화에 대한 미국 출신 레오 14세 교황의 태도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미국과 이란과의 전쟁이 터지자 교황은 강하게 전쟁을 비난했다. 미국의 민간 시설 폭격에 대해 “증오와 파괴의 행위”라고 했다. 교황은 “소수의 독재자(handful of tyrants)들이 전쟁에 수십억 달러를 쓰며 세상을 망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는 교황의 말이 불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레오 14세 교황이 “급진 좌파”라며 “정치인처럼 굴지 말고 훌륭한 교황이 되는 일에나 신경쓰라”고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조지 밴스 부통령은 레오 교황에게 “말할 때는 신중”하라고 했다. 말씀과 전통에 기초해 살아가는 사제에게 정치적 낙인을 찍는 일. 어디서 많이 본 일이다.

하지만 레오 14세 교황은 멈추지 않았다. 아프리카를 사목 방문하는 비행기 안에서 “복음의 메시지는 분명하다”며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이루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자신에 대해 비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두렵지 않다”며 권력에 맞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교회의 일이며 자신이 교황인 이유라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자비와 평화는 모든 종교의 핵심 아니던가. 분열이 아니라 일치를 만들기 위한 투신이 “훌륭한 교황”의 조건 아니던가.

레오 14세 교황이 우리에게 온 지 1년이 되었다. 레오 14세 교황은 인류의 보물인 전통과 가치에 대한 수호자로 또한 새 시대에 펼쳐지는 ‘새로운 사태’에 대한 현실주의자로 첫 한 해를 보냈다. ‘각자도생’과 ‘전쟁의 시대’. 레오 14세 교황이 우리에게 보여줄 ‘참된 평화’가 세상 곳곳에서 펼쳐지길 기도한다.

조승현 가톨릭평화방송 신문(cpbc)보도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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