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탄핵으로 막을 내린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체육관광부는 국정농단의 주 무대였다. 최순실에게 발탁된 CF 감독 출신 차은택이 당시 ‘문화계 황태자’로 불렸다. 차은택은 자신의 친척·은사·지인을 정부 요직에 앉혀 이른바 ‘차은택 라인’을 구축했다. 그의 외삼촌인 김상률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 그의 지도교수였던 김종덕이 문체부 장관으로, 그의 광고계 선배인 송성각이 한국콘텐트진흥원장으로 임명됐다. 측근 인사를 통해 정책과 예산을 주무르는 컨트롤 타워를 완성한 셈이었다. 이후 문화예술계를 발칵 뒤집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도 이들은 실행 및 관리를 담당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이어진 국정농단 재판에서 이들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비난 들끓어도 코드인사 강행
선거철 노린 한예종 이전 시도
예술은 사회의 생명 유지 장치
홀대했다간 국가경쟁력 훼손
지난달 21일 문화연대ㆍ한국작가회의 등 문화계 인사들이 현 정부의 문화예술 인사 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상조 기자
자기 사람을 요직에 앉히고 승리에 기여한 이들에게 보은 인사로 화답하는 것은 정치권력의 자연스러운 생리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권력의 본능이 정권의 성향을 막론하고 유독 문화예술 분야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문화 전문성에 대한 존중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는, 그 정도 문화생활을 하는 인사라면 누구나 문화 행정 업무쯤이야 해낼 수 있을 것이란 안일한 인식이다.
‘형수 욕설’ 옹호 황교익 “내 덕에 홍보” 문화예술 기관장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코드 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현 정부의 지지세력이었던 진보성향 시민단체 문화연대조차 ‘밀실 인사’ ‘셀럽 인사’ ‘보은 인사’라고 비판했을 정도로 인사 전횡의 수위가 높다. 대표 사례로 꼽히는 서승만 국립정동극장 신임 대표는 2021년 “대장동 개발 씹는 애들, 대선 끝나고 대장암이나 걸렸으면 좋겠다”며 친명 성향을 드러냈던 코미디언 출신이고, 황교익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신임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형수 욕설’ 문제에 대해 “욕하는 사람이 많은 환경 속에서 살다 보면 그런 말을 자연스럽게 쓰게 된다”고 옹호했던 맛 칼럼니스트다.
이들의 임명 사실이 알려진 뒤 비난 여론이 들끓었지만 당사자들은 “비난은 짧고 예술은 길다”(서승만), “우리 연구원 홍보에 내가 역할”(황교익) 등 꿋꿋한 발언으로 응수했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 역시 지난달 30일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회의에서 “문화예술계는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분야인 만큼, 인사 대상자에 대한 과도한 공격이 이어지는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며 비난 여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밝혔다. 60%를 넘나드는 대통령 지지율의 기세를 믿고 여론을 무시하는 오만한 행태다. 내 편을 챙겨주는 ‘화이트리스트’는 네 편을 배제하는 ‘블랙리스트’로 이어지게 마련이고 그 결말은 파국이란 게 역사의 교훈이지만 권력은 늘 이를 망각한다.
지난달 28일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한예종 광주 이전 법안 발의에 대한 반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지방선거를 앞두고 난데없이 튀어나온 한국예술종합학교 광주 이전 문제도 정치권의 문화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인사 전횡과 결을 같이 한다.
한예종은 일반적인 공공기관이나 행정 부처와는 성격이 다르다. 예술 교육에는 주변 인프라와의 유기적 결합이 필수다. 수도권에 밀집해있는 공연장, 갤러리, 제작 현장과 단절되면 경쟁력을 잃을 위험이 크다. 학생들이 “문화예술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라며 반대 집회에 나선 배경에는 지역구 표심만 계산하는 정치적 근시안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지난달 28일 집회에서 학생들은 “연간 공연 티켓 판매액 중 수도권의 비중이 82.7%에 달하고, 전업예술인의 50∼60%가 수도권에 거주한다”며 “정부의 서울 쏠림 현상 방기의 책임을 왜 한예종이 져야 하냐”고 따져 물었다.
예체능 시간에 자습했던 시절 여파인가 1992년 설립된 한예종은 전문 예술인 양성에 특화된 학교다. 부족한 예산에 변변한 교사(校舍)도 없이 출범했지만, 임윤찬·김기민 등을 길러내며 오늘날 세계가 경탄하는 K컬처의 요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예종 설립은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선생이 퇴임 직전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천재가 있으면 특별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역설해 관철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선생은 타계 한 달 전인 2022년 1월 중앙일보와 마지막 인터뷰를 하면서 한예종 학생들을 향해 “너희들은 이 사회의 산소호흡기야! 떼면 죽어!”란 말을 남겼다.
예술을 공동체의 생명 유지 장치로 본 선생의 말이 무색하게도, 문화를 논공행상과 표심의 수단으로 여기는 권력 앞에서 예술은 구색 맞추기용 장식품 취급을 당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거철마다 진통을 겪는, 정치권의 만만한 타깃이 돼버렸다.
왜 문화예술이 이런 대접을 받게 됐는가. 그 원인을 파고들다 보면, 현재 의사 결정권자들의 청소년기였던 1980년대 교실 풍경이 떠오른다. 입시 위주의 당시 교육 현장에서 음악·미술·체육은 주변부 과목이었다. 시험 기간이 닥치면 예체능 수업이 자습시간으로 대체되기 일쑤였다. 이런 ‘문화맹(文化盲)’적 인식이 문화를 정치의 하위 범주로 취급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의 토양일지 모른다.
하지만 문화예술은 늘 권력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더욱이 이제 문화는 그 자체로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다. 문화예술에 대한 홀대가 국가의 미래 먹거리 기반마저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할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