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의 역사에서 주한미군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안정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양국에서 늘 찬반 논쟁의 대상이 돼왔는데, 한반도의 실질적인 억제력이나 역내 한국과 미국의 전략적 이익보다는 정치·이념적 문제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 정치·이념적 논쟁 회귀 안돼
전작권 전환, ‘조건’ 충족이 우선
‘다영역 임무부대’ 창설 검토해야
미국 냉전 전략의 설계자인 조지 케넌은 6·25 전쟁 이후에도 한반도 내 미군 주둔을 강력히 반대했다. 그는 19세기 전략가 앨프리드 세이어 마한이 강조한 해로(海路)와 해군력에 집중하는 전략에 기반한 절제된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 접근법을 지지했다. 이런 비전은 최근 고립주의 성향의 퀸시 연구소로 이어졌고, 연구소의 일부 인사는 현 트럼프 행정부에 자리 잡고 있다.
자칭 ‘현실주의자’인 이들의 아시아 내 군사적 개입에 대한 혐오감은 베트남전 이후 힘을 얻었다. 당시 미국의 좌파 세력은 박정희 대통령을 타깃으로 삼으며, 미국의 대한 방위 공약이 인도차이나 전쟁과 같은 수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고, 이는 1970년대 지미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시도로 이어졌다. 그러자 우파는 훗날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주한미군을 압박했다. 당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부 장관은 전 세계적으로 더욱 민첩하고 다목적의 미군 주둔체계를 구축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실제 그는 주한미군 전력을 차출해 이라크전에 투입했고 당시 차출된 2여단 병력은 그 뒤 한국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우파가 주한미군 반대 목소리에 앞장섰다면 한국에서는 좌파 진영이 주도했다. 386세대는 북한의 위협은 가짜이고 주한미군은 한국 보수를 돕기 위해 미 제국주의가 보낸 점령군이라는 주장을 당시 한국의 독재정치와 결부시켰다. 몇 차례의 정권 교체를 거치며 민주화 운동가들도 지정학적 현실에 눈을 뜨긴 했으나 미군 철수와 한국의 주권 회복에 대한 욕구는 잠재돼 있다. 20년 전 럼즈펠드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여 전시작전통제권을 전환키로 합의했을 때 미국의 우파와 한국의 좌파 간 ‘적과의 동침’이 잠시 목격되기도 했다.
이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와 같은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 2기와 한국의 진보정부 집권으로 인해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서 좌우 이념이 맞물리는 ‘퍼펙트 스톰’의 복귀를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집권 초 전작권 조기 전환 옹호론자들을 주변에 포진시켰다. 폭풍 전야와 같은 작금의 시기일수록 현명한 정책 입안자라면 이념적이고 이분법적인 논쟁이 아니라 억제력과 역내 전략적 이익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의 두 가지 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의 발언이다. 그는 최근 미 하원 군사위원회에서 전작권 전환은 정치 일정이 아닌 준비 태세와 억제력을 위한 ‘조건’이 충족될 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국방부는 주한미군 사령부의 관점일 뿐이라며 브런슨 사령관을 이례적으로 직격했다. 이재명 정부는 차기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2028년 미국이 전작권 전환에 동의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앞으로 이 논쟁에 대한 하원 군사위 공화당 지도부의 관심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전작권 전환이 성급하게 추진된다고 판단하면 제동을 걸 수 있다.
둘째는 애틀란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의 새 보고서에서 제안한 부분이다. 이들은 대북 억제력을 강화하고 중국의 침략 등 광범위한 역내 위험 대응에 도움이 될 ‘한·미 다영역 임무부대(MDTF)’ 창설을 제안했다. 이 부대가 한미연합사를 대체하거나 전작권 전환 문제의 답이 되진 않더라도 주한미군의 미래 담론에 있어 혁신적인 전략적 사고의 전환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진부한 정치적 논쟁으로 회귀해선 안 된다. 동맹의 미래 구조를 제대로 설계하려면 새로운 지정학적 맥락(북·중·러의 밀착 등), 변화하는 전장(戰場)의 양상에 부합하는 지휘 통제체계를 깊이 있게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