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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보호조치 아이도 ‘시설 밖에서 살 권리’ 있다

중앙일보

2026.05.06 08:22 2026.05.0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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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장애인권리보장법이 통과되며 ‘탈시설’이 법률에 명시됐다.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제도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장애인을 관리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보는 정책 전환을 보여준다. 전후 시기와 도시화 과정에서 공동체 기반의 돌봄은 약화됐고, 그 자리를 시설 중심의 보호 방식이 채우기 시작했다. 시설을 통해 살린 생명도 적지 않지만, 그 운영 방식은 효율적 ‘관리’에 가까웠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한 공간에 모아 통제하며 보호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시설 밖 권리 얻었지만
보호조치 아동의 80% 시설 입소
유엔 “아동의 시설 보호, 최후 수단”
지역 돌봄 등 탈시설 대안 늘려야

문제는 이 방식이 아직도 기본값이라는 점이다. 자원과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숫자로 성과를 평가하기에 시설만큼 편리한 방식도 드물다. 그래서 취약계층 보호 체계를 설계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제도가 시설이다. 장애인, 아동, 범죄 피해자들은 쉼터나 생활시설로 보내진다.

초저출생 대한민국의 아동 생활시설은 어떤 상황일까. 2024년 발견된 보호대상 아동은 2836명이었다. 이 가운데 858명은 귀가하거나 연고자에게 인도됐고, 나머지 1978명이 보호조치를 받았다. 그런데 이들 중 1583명, 약 80%가 시설에 입소했다. 전체 기준으로도 절반이 넘는 56%가 시설로 향한 셈이다. 지역사회 기반 대안이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 보니 초저출생 시대에도 아동 생활시설은 항상 과밀 상태에 가깝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게 시설이 ‘예외’가 아니라 ‘기본값’이 되고 있는 것이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의 시설 보호를 ‘최후의 수단’으로 규정하고, 가족과 지역사회 기반 돌봄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한국의 아동 탈시설 문제는 이 기준과 거리가 있다. 이 문제를 다루는 토론회에 참석한 한 보건복지부 고위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아동은 어차피 성인이 되면 퇴소하는데, 왜 탈시설이 필요한가요.” 이 발언은 아동 보호를 ‘일시적 분리와 관리’로만 보는 시각을 여실히 드러냈다. 아동기는 발달의 연속선 위에 있으므로 어떤 환경에서 하루하루 쌓아가느냐는 이후 성인기의 삶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게 주어지는 현행 거주 형태는 가정 아니면 시설이다. 그러나 이 두 선택지 모두 불가능한 아이들도 적지 않다. 과거 법률대리를 맡았던 한 학대 피해 중학생이 있었다. 친모는 아이가 어릴 때 집을 떠났고, 친부는 알코올 의존 상태였다. 아이는 친부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입었고, 신고 이후 시설로 분리됐다. 하지만 시설에서도 정서적 학대를 당했다. 가해자가 사는 집에 돌아갈 수 없던 아이는 절망 속에서 자해를 반복했고, 결국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하게 됐다. 이후 모든 시설이 그 아이를 거부했다. 아이가 원한 것은 그저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었지만, 제도 안에서 그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선택지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뿐 아니다. 사실상 해체됐거나 심각한 역기능을 보이는 가정에서 탈출한 아동, 이른바 ‘가정 밖 청소년’을 위한 대책은 거의 없다. 법적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제한적이다. 독립된 주거를 마련하는 것도,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쉼터는 입소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에, 입소를 고민하는 아이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생기는 이유는 유기와 학대, 빈곤과 질병, 이혼과 수감까지 다양하다. 아이마다 필요한 보호의 내용이 섬세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입양은 연간 겨우 200명 수준에 그치고, 가정 복귀는 제도와 현장의 괴리가 크다. 그래서 아동 보호 체계는 시설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렇게 시설에 의존하는 방식이 굳어지다 보니, 다른 방식의 지원을 고민하고 만들어 볼 여지도 점점 줄어든다.

시대가 변하면서 가정의 형태와 관계는 다양해졌고, 시설 보호를 최후의 수단으로 제한하는 것은 국제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국의 아동 보호 체계는 여전히 가정과 시설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를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구조에서는 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고, 시설에도 머물기 어려운 아동이 역설적으로 보호에서 배제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이 공백을 설명하거나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시설과 가정 사이의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주거 지원과 사례 관리를 결합한 중간 형태의 보호 모델이 이미 운영되고 있다. 생활기술 교육을 연계해 청소년에게 단계적 자립 주거를 제공하는 나라도 있다.

최근 장애인권리보장법을 통해 ‘시설 밖에서 살아갈 권리’가 법률로 명시된 것을 다시 주목한다. 보호의 방식을 관리에서 권리로 바꾸는 변화가 법에 반영됐지만, 아동 보호는 그 흐름에 닿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날을 지나며 다시 묻게 된다. 가정에 돌아갈 수 없는 아이에게도 시설 밖의 삶을 말할 수 있는가. 이제는 그 질문에 답해야 할 때다.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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