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부모 허락 없인 전입 불가”…어린 엄마 두 번 울린 ‘황당 행정’

중앙일보

2026.05.06 13:00 2026.05.06 13:3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신생아가 부모와 손가락 악수를 하는 모습. 사진 셔터스톡

신생아가 부모와 손가락 악수를 하는 모습. 사진 셔터스톡


수도권에 거주하는 유세희(19·가명)양은 최근까지 임신한 몸을 이끌고 일당을 벌기 위해 인력 사무소를 찾아가야만 했다. 실거주지와 주민등록상 주소가 불일치하다는 이유로 청소년 산모 지원 정책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그는 6일 중앙일보에 “아이를 지우길 원하는 부모를 피해 다른 도시로 이사했지만, 관할 행정복지센터에선 ‘부모의 허락이 없으면 안 된다’며 전입신고를 막았다”며 “만 19세가 될 때까지 어떠한 지원도 없이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처지의 백승주(18·가명)양은 생활비 마련을 위해 불법 고금리 대출까지 알아봤었다고 한다. 그는 “다행히 민간단체에서 진료비 등 도움을 주고 있다”며 “만약 단체마저 만나지 못했다면 ‘낙태’를 결심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최근 민간단체의 후원을 받아 수도권에 임시 주거지를 마련한 김민서(17·가명)양도 “‘임산부이고, 명확한 거주지가 있다’고 아무리 설명해봐도 복지센터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어린 부모들은 본인의 부모에게도 손 벌리지 못하고 정부 지원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전입신고서 작성하는 장면. 중앙포토

전입신고서 작성하는 장면. 중앙포토


희망찬 시간을 보내야 할 5월 가정의 달에도 이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 부모가 적잖은 것으로 추정된다. 부모와의 갈등 등으로 독립을 했음에도 전입 신고 문턱에 막혀 각종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저출산 대책으로 임산부에게 ▶임신·출산 바우처 ▶청소년 산모 지원 ▶긴급 복지 의료비 ▶임산부 지원 프로그램 등 각종 모자 보건·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6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청소년 부모(부모가 모두 만 24세 이하인 경우)로부터 출생한 아동은 총 5403명으로 전체 출생아(23만8317명)의 2.3%에 달했다. 이를 미성년자(15~19살) 부모로 좁혀보면 441명으로 줄어든다. 청소년 부모 지원 민간단체인 ‘킹메이커’ 대표 배보은씨는 통화에서 “통계상으론 소수지만, 지원 필요도는 가장 높은 집단”이라며 “심지어 일부는 부모의 출산 반대, 가정 내 정서·신체적 폭력과 통제 등으로 원가정과 분리가 필요한 상태임에도 ‘전입신고’라는 행정 절차 때문에 사각지대에 놓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세사기 관련 시위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전세사기 관련 시위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전세 사기 등을 막겠다며 정부가 강화한 전입신고 절차가 진입 장벽을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은 지난달 21일 보고서를 통해 “2024년 대규모 전세 사기 때문에 정부가 전입자 확인과 신분증 확인 절차를 강화하면서, 미성년 부모의 경우 법정대리인의 협조가 필수 요건처럼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민등록법 시행령 제23조에 ‘법정대리인 확인을 받기 어려운 경우에는 읍·면·동장의 사실 조사로 갈음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지만, 현장에선 해당 조항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다수라는 뜻이다.


결국 시행령을 고치거나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인감·민원처리 업무 지침’이라도 개정해 ‘확인을 받기 어려운 경우’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복잡한 법 개정 이전이라도 현행 체계 내에서 미성년자가 전입할 수 있는 다양한 우회로를 지자체가 적극 수용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며 “특히 청소년 쉼터나 임시 보호시설 거주만이라도 합법적 주소지로 인정해 주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짚었다.



김정재([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