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0일 LA 다운타운에서 벌어진 ICE의 과잉 단속에 대한 항의 시위. 등교를 거부하고 시위에 참석한 학생들도 많았다. 김상진 기자
정치는 추방을 외치고, 경제는 일손을 요구한다. 트럼프 정부의 이민정책은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단속과 추방이 전부가 아니다.
지난 1월 미니애폴리스의 차가운 길바닥에 번진 두 미국인의 피는 전국을 분노로 물들였다. 공권력의 정당성이 규탄받자 각자 옳다고 믿는 질서가 들어섰다. 거리엔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폭력적인 불법 체류자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일부 지역엔 단속요원의 통행을 제한하려는 자경단의 검문소가 설치됐다. 골든글로브와 그래미 시상식에선 반ICE 메시지가 식순처럼 끼어들었다.
감정이 연쇄반응을 거쳐 질량감을 획득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번이 그렇다. 마구잡이 단속에 대한 강력한 역풍은 정치적 흐름을 바꿔놓을 듯했다. 트럼프 정부는 한발 물러섰다. 백악관의 국경 차르 톰 호먼은 지난 2월 2일 미니애폴리스에서 ICE 요원 700명의 철수를 발표했다. 이어 12일엔 단속 작전을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현실은 어느 한 쪽의 승패를 가릴 만큼 단순하지 않다. ICE 요원 철수는 여론에 떠밀려서만 하는 게 아니다. 민주당 지방정부의 협조로 단속 인력을 줄일 만해졌기 때문에 하는 거다. 특히 교정당국이 복역 중인 불체자들의 출소 일정을 ICE에 통보해 신병을 넘겨주기로 협의 중이다. 길거리에서 사냥하듯 불체자를 잡으려면 한 명당 8~10명의 ICE 요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교도소에서 나오는 이를 인계받아 추방하는 데엔 한두 명이면 된다. 거리에서의 단속은 정치로 비치지만, 교도소를 통한 추방은 행정이 된다. 위험한 충돌을 줄일 수 있다는 면에서도 합리적인 선택이다.
보수 매체 "분노의 망토가 티셔츠로 변해"
추방과는 상반된 조치도 동시에 나왔다. 지난 1월 30일 국토안보부와 노동부는 올해 산업 현장에서 일할 외국인 근로자 비자를 기록적으로 늘렸다. 건설 조경 숙박업 등에서 최대 3년간 일하다 돌아갈 외국인에게 주는 H-2B 비자를 기존 6만6000개에서 올해 약 13만 개로 책정했다. 또 농업 근로자용 H-2A 비자의 발급 절차와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지난해 H-2A 비자를 받은 외국인 농업 근로자는 약 40만 명이다. 올해엔 5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추방된 불체자보다 새로 들어올 외국인 근로자가 더 많아질 수 있다. 대량 추방으로 보수층의 반이민 정서를 달래주는 한편, 기업과 농장주들이 원하는 합법적 일손의 물꼬를 넉넉히 터준 것이다.
드물게도 좌우 진영이 동시에 반대하고 나섰다. 전미농업노조(UFW)는 이를 '임금 차이를 이용한 차익거래'로 깎아내렸다. 값싼 외국인 노동자를 또 다른 값싼 노동력으로 대체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일자리를 보호해달라는 민심과도 배치된다고 했다.
또 보수 매체 내셔널리뷰는 "트럼프의 '분노의 망토'가 어느새 상공회의소 티셔츠로 변했다"고 야유했다. 외국인 근로자의 대량 유입은 추방 정책을 무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파는 공약 위반, 좌파는 노동자 억압의 프레임으로 트럼프를 협공하고 있다. 서로를 증오하는 두 진영이 값싼 노동 앞에선 같은 표정을 짓는다.
1975년 4월 베트남 패망 후 미국 캘리포니아에 처음 도착한 베트남 난민들. [사진 OC레지스터]
대부분의 미국인은 위험한 밀입국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데엔 반대한다. 이게 불체자 추방 정책의 출발점이다. 2월 초 이코노미스트와 유고브(YouGov)의 공동 조사에서 중범죄 불체자의 추방에 "찬성" 응답이 86%나 됐다. "반대"는 6%뿐이었다.
문제는 폭력적인 단속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는 점이다. 지난달 뉴욕타임스와 시에나대 연구소의 조사에서 현 정부의 불체자 단속에 대해 "지나치다"는 응답이 61%에 달했다. "적당하다"는 반응은 26%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질서 있는 단속이다. 눈에 안 보이게 잡아 조용히 내보내라는 주문이다. 이걸 요란하게 사건화해 역풍을 키웠으니, 트럼프 정부로선 자업자득이다.
민주당 집권기에도 그런 민심을 잘 읽던 때가 있었다. 오바마 정부가 대표적이다. 그는 "모든 불체자를 합법화하는 건 현명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신원 확인 없이, 통제도 받지 않고, 외국인을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게 할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트럼프의 국경 차르 톰 호먼이 ICE 부국장이던 2015년, 그 가슴에 고위공무원으로 최고 영예(대통령 표창)을 달아준 이도 오바마였다.
간혹 정파적 일관성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1975년 베트남 패망 직후 공화당 포드 정부가 캘리포니아로 난민을 피난시킬 때였다. 민주당 주지사 제리 브라운(87)이 펄쩍 뛰었다. 당시 백악관 난민 지원TF를 이끌던 줄리아 태프트(1942~2008)가 공영라디오 NPR에 이를 육성으로 남겼다.
"주지사와 복지부 장관인가 하는 사람이 '실업자가 많아 난민은 한 명도 못 받겠다' 하더라. 그렇게 비협조적인 태도는 도덕적인 견지에서 큰 충격이었다."
그 뒤 재선한 브라운은 2011~2019년 임기 중 180도 자세를 바꾼다. 1기 트럼프 정부에 맞서 캘리포니아를 '이민자 피난처'라고 선언했다. 포드가 난민을 받자고 할 땐 반대하더니, 트럼프가 불체자를 쫓아내겠다 하니 또 반대다. 진영 논리에 매몰된 탓 아니겠나.
전통 좌파와 노동계는 이민의 대량 유입을 반기지 않았다. 임금이 하락하고 노조의 교섭력도 약해지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계의 전설적 리더 새뮤얼 곰퍼스(1850~1924)는 1896년 노조 대회에서 "제한 없는 이민이 국민에게 큰 피해를 준다"고 했다. "파업이 없는 나라를 보여달라. 자유가 없는 나라를 보여주겠다"는 말로 유명한 그 곰퍼스다. 그에겐 노조의 이익에 장애물이 될 이민 노동자를 막는 게 중요했다. 본인도 이민자였는데 말이다.
좌파의 우상이자 노동자의 대부 세자르 차베스(1927~1993)도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이민 후손이었으나 파업에 방해가 된다며 불법이민을 혐오했다. 1969년 국경 통제와 불법이민 단속을 강화하라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나중에 카터 정부의 부통령이 된 월터 먼데일(1928~2021)이 함께 구호를 외쳤다. 차베스의 생일인 3월 31일을 '국경 감시의 날(National Border Control Day)'로 지정하는 2019년 의회 결의안에 이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좌파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차베스가 국경 통제의 상징으로 남을 판이니, 이런 부조리극이 따로 없다.
이에 비해 지금의 좌파는 퀀텀 점프라도 한 듯하다. 누구나 미국에 와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 국경은 비윤리적 개념이다, ICE를 폐지하자, 하는 주장을 태연히 한다. 이걸 신성한 대의이자 헌법적 권리로 포장하기도 한다. 민주사회주의연맹(DSA) 계열 정치인과 활동가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국경을 봉건적 특권으로 간주해 '열린 국경'을 주창한 정치학자 조셉 캐런스(81)의 영향이 크다. 그러한 극단적 시각에 대해 브루킹스연구소는 이미 2018년 '이민에 엄격해도 자유주의자일 수 있다'는 글로 비판한 바 있다.
민주당은 좌파에 끌려다니는 양상이다. 2020년 대선 경선 토론에서 밀입국을 형사범죄에서 제외하자는 데 명확히 반대한 후보는 마이클 베넷 상원의원 한 명뿐이었다. 곰퍼스도, 차베스도 울고 갈 판 아닌가.
미국인 10명 중 4명 "이민자 규모 현상유지"
일반적 인식은 그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갤럽의 연례조사를 보면 안다. 2025년 조사에서 '이민 규모를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현상 유지"가 가장 높은 38%로 나왔다. "줄여야"가 30%, "늘려야"는 26%였다. 밀입국자가 쏟아져 들어오던 바이든 정부 4년 동안엔 "늘려야"가 33%에서 16%로 반 토막 났다. 반대로 "줄여야"는 30%에서 54%로 급등했다. 바이든은 인도적 차원에서 국경을 열었다지만, 반이민 여론을 키워놓은 꼴이 됐다. 반대로 트럼프는 이에 역회전을 걸었다.
여론을 정책으로 구현시키는 경로가 투표다. 미국에선 매일 약 1만 명이 18세 생일을 축하받고, 성인 9000명 정도가 눈을 감는다. 하루 평균 1000명의 새 유권자가 추가되는 셈이다. 이 가운데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인종이 히스패닉, 즉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이다. 민주당은 과거 이들을 집토끼로 여겼으나, 이젠 그렇지도 않다. CNN 출구조사에서 트럼프의 히스패닉 득표율은 2016년 29%였으나, 2020년 32%, 이어 2024년엔 45%로 상승했다. 이민을 보는 시선이 트럼프와 더 가까워졌다는 뜻 아닐까. 그렇다면 다음 정부가 바이든 때처럼 국경을 다시 열어젖히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민정책은 인도주의라는 향수로 치장하곤 해도, 실제론 냉정한 경제와 질서의 문제다. 정치가 서로 다른 구호로 충돌할 때 경제는 조용히 계산서를 들이민다. 누구도 이를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어제도, 내일도 해결하기보다 비틀거리며 관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