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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자제·온기…지금 이홍구의 정치가 그립다

중앙일보

2026.05.07 08:01 2026.05.07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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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15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이수성 서울대 총장을 새 국무총리 내정자로 지명했다. 이날 퇴근하며 승용차에 타기 전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이홍구 국무총리의 모습. [중앙포토]

1995년 12월 15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이수성 서울대 총장을 새 국무총리 내정자로 지명했다. 이날 퇴근하며 승용차에 타기 전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이홍구 국무총리의 모습. [중앙포토]

한국의 근현대사는 거듭된 정변에 전쟁 재발의 위험성을 안은 남북대결이 겹친 난세의 연속이었기에 그 틀 안에 살면서 이름을 깨끗이 보존하기 쉽지 않았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예외적이었다. 91년의 삶을 아무런 흠을 남기지 않은 채 마감했을 뿐 아니라 나라와 겨레를 위해 여러 부문에서 역사에 기록될 만한 업적을 보여주었으니 축복받은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기에 충분했다.

“협상보다 협잡 능해” 정치인에 쓴소리
그는 우선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20년 가까이 재직하며 정치의 부활을 제의했다. 제3공화국에서 제5공화국으로 이어진 그 시기는, 그의 표현으로 ‘정치의 비(非)정치화’ 시기였다. 집권자는 정치라는 것 자체를 혐오하고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정치 그 자체를 억제하면서 모든 문제를 행정으로 풀어나가고자 했다. 이 교수는 이에 반발하며 의회정치와 정당정치가 활성화되지 않고는 우리 사회는 ‘퇴행’을 거듭하게 될 것임을 경고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정치체제가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을 때 그 정치체제에는 정통성의 위기가 발생하고 그것은 혁명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경고하면서, 그 정체를 멈추게 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정치 뿐임을 강조했다.

이 시기에 그는 한국의 정치현실을 바라보며 오늘날에도 음미할 만한 몇 가지 명언을 남겼다. 정치의 핵심은 ‘협상’인데, 정치인들이 ‘협잡’에는 능하면서 ‘협상’에는 무능하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 비판에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영달과 치부를 위해 범죄를 서슴지 않는 행태에 대한 엄중한 단죄가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한국의 정치인들은 “정치적 인간은 동물이다” 또는 “인간은 정치를 동물처럼 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오해해 온갖 추태를 벌이고 있다고 조롱했다.

여기서 그는 조선조의 선비정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조선조에서는 학문을 닦은 선비들이 국정을 논하는 가운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왕의 잘못도 주저하지 않고 비판하면서 국정운영의 방향을 제시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바로 ‘배운 사람들’의 변증법적 토론과 대화로써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역설은 평생의 지론인 의원내각제로의 개헌 제의로 이어졌다. 선비는 진퇴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소신을 지닌 그는 유신시대에 주미대사를 제의받고 사양했으며, 5공 때도 외무부 장관을 비롯해 여러 요직을 제의받고 사양했다. 그러나 6·29선언으로 민주화가 진전될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노태우 정부에서 국토통일원 장관으로 입각해 교수 시절부터의 지론인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정부의 통일방안으로 공식화했다. 필자는 노 대통령이 자신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당시 대통령특별보좌관이던 그를 기용했어야 한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그렇게 했더라면 김영삼 정부로의 전이(轉移) 그리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김영삼 정부의 태도는 훨씬 순탄했을 것이다.

대립에서 벗어나 대화로 현안 풀어
이후 그는 김영삼 정부에서 통일부총리로 봉직하며 이 방안을 그대로 유지했고 남북정상회담의 실현을 준비하는 남북회담을 통해 북에 대해 어떠한 대가도 지불함이 없이 여덟 시간만에 합의를 이끌어냈다. 국무총리 시절에는 한국이 세계화 추세에 빠지지 않도록 독려했으며, 국회의원에 이어 여당 대표로 선출되고 본격적으로 정치현실에 참여한 뒤 대화와 협상으로써 현안들을 풀어나갔다. 이때 그는 몽테스키외의 ‘온건국가’론을 제시하며 정치가 과격한 대립과 투쟁에서 벗어나도록 힘썼다.

김대중 정부에서 주미대사로 기용된 그는 클린턴 행정부를 상대로 외환위기, 이른바 IMF사태의 극복을 위해 헌신했다. 직업공무원 출신이 아닌 사람으로 세 정부에서 잇달아 고위직에 기용된 사례는 그가 유일하다.

“힘의 한계 인식해야”…권력의 함정 경고
2000년에 공직에서 물러난 그는 중앙일보사 고문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며 자신의 학문과 경험에 바탕을 둔 지혜를 보여주었다. 그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권력의 함정’에 대한 경고였다. 대통령에 소수의 지지로 겨우 당선되고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약한 현실을 잊어버린 채 마치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했기에 결국 비극적으로 퇴진한 칠레 아옌데 대통령의 사례를 상기시키면서, 대통령은 자신의 힘의 한계를 인식하고 늘 서로 다른 정치·사회세력과 대화하며 협상으로 풀어나갈 것을 역설했다. 돌이켜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불행을 예견한 것과 같은 논설이었다.

‘자제’를 생활의 모토로 삼았기에 그는 공사 생활 모두에서 어떠한 형태의 잡음에도 휘말리지 않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동시에 그는 인간적으로 겸허하고 따뜻했다. 그의 정치학이 ‘인간주의 정치학’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정계가 전쟁터로 바뀌어 너무 살벌해진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에 그의 철학이 부활하기 기대한다.

김학준 전 동아일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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