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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의 이집트 문명] 여성도 파라오가 될 수 있었다 ②

중앙일보

2026.05.07 08:02 2026.05.0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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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

메르네이트는 파라오 제르의 딸이자 제르의 왕위를 계승한 제트의 아내였다. 제트는 아들 덴이 성인이 되기 전 사망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로 인해 메르네이트가 대신 파라오직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어린 왕을 대신해 어머니가 섭정을 맡거나 직접 통치를 시도한 사례는 이후에도 나타난다. 신왕국 시대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의 경우에도 그녀의 아들뻘인 투트모스 3세를 대신해 섭정을 시작했다가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다. (투트모스 3세는 하트셉수트의 남편인 투트모스 2세가 다른 왕비에게서 낳은 서자였다.)

메르네이트의 경우는 초기왕조 시대의 한계로 그녀가 섭정을 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여러 고고학적 정황은 그녀가 파라오였거나 그에 준하는 권한을 행사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후대 왕명표에 기록된 상대적으로 긴 덴의 재위 기간(42년)은 그가 매우 어린 나이에 즉위했음을 보여주며, 그가 독자 통치하기 전까지 어머니가 왕권을 대신 행사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고대 이집트 유물 ‘데르세네즈의 부부상’ 뒷면. 베를린 신 박물관. [사진 곽민수]

고대 이집트 유물 ‘데르세네즈의 부부상’ 뒷면. 베를린 신 박물관. [사진 곽민수]

메르네이트처럼 어린 파라오의 어머니가 일시적으로 왕권을 행사하는 상황은 신화로도 그 정당성이 뒷받침된다. 널리 알려진 오시리스 신화 속에서 이시스 여신은 오시리스의 갑작스러운 죽음 속에서 어린 아들 호루스를 훌륭한 왕위 계승자로 키워낸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성에게 어머니의 역할이나 아내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성차별적으로 보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여성에게 이런 전통적인 성 역할을 부여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경우에 따라 여성이 파라오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남성에 비해 특별히 낮지 않았다. 특히 가정과 부부 관계 속에서는 여성이 능동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부부상에서 아내가 남편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자주 표현되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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