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충격으로 17년 만에 원-달러 환율이 1530원 선을 뚫었던 외환시장이 다시 숨통을 틔우고 있다. 종전 협상 기대가 커지면서 7일 환율이 장중 1440원대로 내렸기 때문이다.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 주간 종가(1455.1원)보다 6.5원 하락한(원화값 상승) 1448.6원으로 출발했다. 중동사태 직전인 지난 2월 27일 이후 처음으로 장중 1440원대로 밀렸다. 이후 외국인의 코스피 차익실현 매도세에 하락 폭을 줄여 1.1원 내린 1454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전쟁 여파로 17년 만에 1530원 선을 뚫은 지난 3월 말(1530.1원)과 비교하면 원화가치는 한 달여 만에 80원 가까이 오른 셈이다.
차준홍 기자
이날 원화뿐 아니라 중국 위안화, 일본 엔화 등 아시아 통화도 일제히 달러 대비 강세를 띠었다.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한국시간 7일 오후 4시30분 기준 97.9까지 하락했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국제유가도 즉각 반응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은 6일(현지시간) 배럴당 95.08달러로 하루 만에 7.03% 급락했다. 지난달 24일 이후 가장 낮다. 한국시간으로 7일 오후 4시30분엔 배럴당 92.74달러까지 급락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달러로 결제하는 수입 부담이 줄어 원화 강세 요인이 된다.
다시 들썩이는 엔화값도 원화가치를 끌어올렸다. 지난 6일 달러-엔 환율은 한때 155.03엔까지 하락했다(엔화값 상승). 지난달 말 엔화값이 달러당 161엔 코앞까지 급락하자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한 영향이다. 로이터통신은 일본은행(BOJ)이 환율 방어를 위해 이날 약 5조4800억엔 규모의 엔화를 매입한 것으로 추정했다. 엔화값이 두 달 만에 최고치로 뛰자 동조성이 강한 원화에도 강세 압력이 가해졌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중 정상회담 전까지 미국과 이란이 타협점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라며 “당분간 달러 약세 흐름 속에 원화값도 안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미국과 이란이 실제 종전까지 최종 합의에 이를지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아직까지 종전 확률은 50% 수준으로, 최종 합의까지 지켜봐야 한다”며 “종전이 현실화하면 인플레이션 우려가 완화되면서 달러 약세 압력이 커져 원-달러 환율도 1390원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증시 흐름도 환율 향방을 가를 변수 중 하나다. 코스피는 극심한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105.49포인트(1.43%) 오른 7490.05에 장을 마쳤다. 장 초반에는 매수세가 몰리며 사상 처음으로 7500선을 넘어섰지만, 이후 매도세가 쏟아지며 7200선까지 밀리기도 했다. 이날 장중 지수가 전날 종가를 기준으로 상승·하락 방향이 바뀐 횟수만 6차례에 달했다. 장중 최고점과 최저점의 변동폭도 273.99포인트나 됐다.
외국인 수급이 급변한 영향이 컸다. 전날 약 3조원 규모의 역대급 순매수에 나섰던 외국인은 하루 만에 ‘팔자’로 돌아섰다. 이날 외국인은 7조1694억원어치를 팔아치우며 역대 최대 순매도액을 기록했다. 반면 개인은 5조9913억원가량을 순매수했다. 역대 네 번째 규모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변동성이 커지면 이를 추종하는 매매가 위아래 움직임을 다시 증폭시켜 주식의 위험 프리미엄도 높아진다”며 “이는 금융시장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중동전쟁 종전 기대, 코스피 상승 등에 힘입어 안정세를 찾았던 환율이 언제든지 다시 급등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