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미국 대학가의 축제이자 낭만이었던 졸업식이 정치·이념 갈등의 새 전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과거 졸업생들을 격려하며 사회 진출을 축하하던 명사들의 축사가 이제는 '정치적 지뢰밭'으로 변모했다고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여부 등을 둘러싼 정치 논쟁이 격화하면서 졸업식 연사들이 잇따라 초청 취소되거나 스스로 물러나고 있으며, 보안 우려도 커지고 있다.
럿거스대 공대는 최근 동문 출신 바이오기업 최고경영자(CEO) 라미 엘간두르의 졸업식 연설을 취소했다.
과거 이스라엘을 비판한 엘간두르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을 문제 삼아 일부 학생들이 졸업식 불참을 선언하면서다.
엘간두르는 대학 측 조치를 "도덕적 비겁함"이라고 비판했다.
조지타운 로스쿨의 초청을 받았던 모턴 샤피로 전 노스웨스턴대 총장은 친(親)이스라엘 논란에 스스로 물러났다.
샤피로는 서한을 통해 "겸손과 감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나의 참석이 축제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 않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졸업식 연설 논란이 학교 재정 문제로 번지기도 했다.
흑인 대학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와 반(反) DEI 입장으로 논란이 된 공화당 소속 팸 에벳 부지사 초청을 철회했다. 이에 부지사는 대학 자금 지원 중단을 거론하며 반발했다.
일부 대학에선 심각한 안전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가 총격으로 사망한 유타 밸리대에선 연사가 졸업식 가운 안에 방탄조끼를 입는 방안까지 검토하다 결국 연설을 취소했다.
역사학자 섀런 맥마흔은 커크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연설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지만, 일부 공화당 의원은 작년 커크 사망 직후 맥마흔이 올린 SNS 발언을 문제 삼아 비난했다.
맥마흔은 경호팀을 고용하고 방탄조끼 착용까지 고려했지만, 위험 부담이 크다고 판단해 연설을 포기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에서도 연사로 나설 예정이었던 듀크 에너지 CEO를 총격하겠다는 온라인 협박이 올라와 보안 우려가 제기됐다.
뉴욕대 일부 단과대는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 졸업 연설을 사전 녹화 영상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심화한 미국 사회의 정치 양극화가 대학 졸업식 문화까지 파고든 결과로 해석된다.
과거에는 논란이 되지 않았던 연사 선정이 이제는 대학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헤테로독스 아카데미의 존 토머시 회장은 일부 대학의 경직된 분위기가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한 관용을 가르치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개인 권리 및 표현의 자유 재단(FIRE)의 로버트 시블리는 백악관 기자단 만찬 총격 사건 등 폭력 사태가 대학들에 안전 문제를 명분으로 한 통제 강화의 구실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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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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