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국내 최대의 중고차 수출 거점 인천송도중고차수출단지에 약 2만대의 차량이 수출을 기다리고 있다. 인천=고석현 기자
" 중동이 가장 큰 중고차 수출시장이었는데, 물류비가 감당 안 돼 두달째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지금은 매출이 완전히 ‘제로’에요. "
최근 국내 최대 중고차 수출 거점 인천송도중고차수출단지에서 만난 A중고차수출업체 김모 대표는 이렇게 말하며 착잡해했다.
김 대표는 “통상 중고차 한 대를 판매하면 손에 쥐는 돈이 수십만원 수준”이라며 “중동행 화물선적을 할 수는 있지만, 이미 물류비가 중동전쟁 전보다 5.5배 올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해운사 측에서 이미 실어보낸 화물까지 컨테이너당 7250달러(약 1070만원)씩 추가비용을 부과했다”며 “컨테이너 하나에 평균 3대씩 싣는 것을 감안하면 비용이 350만원 넘게 더 드는 셈이라 이미 보낸 차도 손해가 막심하다”고 말했다.
9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대(對)중동 중고승용차 수출 금액은 6563만9377달러(약 970억1500만원), 수출 수량은 6636대로 지난해 월평균 수출 금액 1억2827만9371달러, 수출 수량 2만3491대보다 각각 48.8%, 71.8% 감소했다. 3월 들어 카타르·바레인·이스라엘 등에는 차량을 한 대도 수출하지 못했다.
실제 인천송도중고차수출단지에 가지런히 늘어선 차량들은 햇볕에 달궈져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고, 차체 곳곳이 ‘중고’가 돼 가는 흔적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따금 트레일러가 들어와 또 다른 차량을 내려놓고 다시 빠져나갈 뿐이었다.
인천 송도 중고차수출단지에 약 2만 대의 중고차가 빼곡히 주차돼 있다. 인천항을 통해 수출하기 위해 화물선 선적을 기다리는 중이다. 중앙포토
지난달 27일 국내 최대의 중고차 수출 거점 인천송도중고차수출단지에 약 2만대의 차량이 수출을 기다리고 있다. 인천=고석현 기자
중동전쟁 이후 호르무즈해협 봉쇄 여파로 중동 중고차 수출이 사실상 두 달째 마비상태다. 한국의 연간 중고차 수출 규모는 약 12조8600억원(수량기준 약 88만 대)으로, 이 중 70%가량이 인천항을 통해 중동으로 향한다. 수출업자들은 이미 매입해 놓은 차량의 발이 묶인 데다 대체시장 발굴에도 한계가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업계는 현재 인천송도중고차수출단지에만 1600여 개 업체, 2만여 대 수출 차량의 발이 묶여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팔 중고차를 물색하기 위해 인천을 찾았다는 수출업자 고려인 김주씨는 “월 500대가량 수출하는데 대당 20만원 정도씩 남는 셈”이라며 “예전에는 중동 바이어들도 이곳에 많이 왔었는데, 이란 전쟁이 터진 뒤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에 주로 수출한다는 B중고차 수출업체 전모씨는 “전쟁 전에는 중동 바이어가 하루 10~20명씩 찾아왔는데 지금은 서너명 수준으로 급감했다”며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일부 지역만 수출이 이어지고 사실상 일감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인천 송도 중고차수출단지 인근에서 트레일러가 중고차를 실어나르고 있다. 인천=고석현 기자
인천 송도 중고차수출단지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중고차들. 중앙포토
중동 중고차 시장은 2023년 팔레스타인 전쟁 이후 한 차례 수요가 위축됐고, 최근 2년 새 이집트·시리아 등이 중고차 수입규제를 강화하며 수출길이 좁아진 상황이다. 여기에 중동전쟁까지 덮치며 업계의 타격이 한층 커졌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는 중동 수출 물량만 10만대 넘게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고차 수출업자들은 이미 매입한 차량도 선적이 지연되며 자금 경색이 심화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C중고차 수출업체 김모 대표는 “이미 사놓은 중고차량을 선적할 수 없어 운전 자금이 묶였고, 현지에 차량을 인도하지 못해 수금도 묶인 상황”이라며 “크게 올라버린 물류비를 감당하고 숨통이 트일 수 있도록 정부가 운전자금에 대한 단기 대출 지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3월 중동지역 중고차 수출 추이
업계에선 신시장 개척 등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영화 한국중고차수출조합 회장은 “업계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삼아 남미·중미·독립국가연합(CIS) 바이어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아프리카·동유럽 등 미개척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며 “수출업계가 자체적으로 신시장을 개척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에서 중고차 수출 무역사절단을 꾸릴 수 있도록 외교적 지원을 해줬으면 한다. 중고차뿐 아니라 부품과 다른 제품까지 판로를 확대할 수 있도록 아프리카 등에 거점시장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