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스물다섯 살에 우리은행에 취업한 뒤 지금까지 단 1년도 쉬지 않고 이어온 나 김일구(60)의 이력서다.
‘화이트칼라’의 대명사인 금융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은행 센터장·지점장을 역임하며 억대 연봉을 받았다. 그리고 57세 때 금융업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지금은 재취업에 성공한 상태다.
" 재직 기간에 퇴직 준비요? 꿈도 못 꿨어요. 다들 그러시겠지만, 현업에 있을 때는 자기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게 제 지론이거든요. 퇴직 후 재취업을 준비할 여력은 전혀 없었습니다. "
우리은행에서 30년간 근무할 때 나는 전형적으로 ‘일에 매몰된 직장인’이었다. 내게 월급을 주는 직장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좌고우면할 틈이 없었다. 조직을 관리하고 성과를 내고 승진하는 것이 내 인생의 최우선 순위였다.
그런 내가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있다. 공교롭게도 이 역시 업무 때문이다.
" 본사에서 ‘100세 연구팀’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제가 우연찮게 그 팀장을 맡게 됐어요. 일본 등 한국보다 일찍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선진국 사례를 집중 분석하고 한국의 실상에 맞춰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기획하는 게 저의 미션이었죠. 일에 열중하면서 자연히 퇴직과 인생 2막에 대한 눈이 뜨인 겁니다. "
선진국들의 고령화 사회 준비 상황을 꼼꼼히 분석해보니, 이들은 퇴직 후 삶을 ‘재무’와 ‘비(非)재무’로 나눠 관리하고 있었다. 재무는 자산 관리 상황을, 비재무는 취미생활·인간관계·건강관리 등을 의미한다. 인생 2막 삶의 질은 탄탄한 재무를 바탕으로 비재무를 얼마나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느냐로 판가름되는 거였다.
한국의 고령화 준비 현황도 살펴봤다. 국민연금 등 노후 보장책이 있긴 하지만, 퇴직 후 삶을 국가나 회사가 온전히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 결국 개인이 직접 퇴직 후 죽을 때까지 먹고살 것을 준비해야 했다.
내 인생 2막에 대한 준비 상황도 돌아봤다. 사실 금융권은 재직자들을 정년보다 일찌감치 명예퇴직시키는 게 일반적인데, 회사에선 상당한 수준의 명예퇴직금을 제공한다. 또 재직 중 맡은 일 자체가 자산 관리이다 보니 일하면서 소소한 투자를 통해 재테크를 이어나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나 역시 이런 방법을 통해 퇴직 후 부동산 임대 소득을 통해 얼마간의 현금 흐름은 마련해둔 상태였다.
관건은 비재무였다. 그런데 난 항상 회사 일이 최우선이다 보니, 이렇다 할 취미생활도 없었다. 취미가 있다한들 이를 제대로 누리려면 돈이 들어가니 재무 상황을 지금보다 훨씬 건실하게 구축해야 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인생 2막을 위한 재무와 비재무 준비가 연결돼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민이 이어졌다.
이때 나는 이를 한꺼번에 해결할 묘안을 찾았다.
바로 ‘재취업’이었다.
" 재무와 비재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 바로 ‘퇴직 후에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것’이더라고요. 직장이 있으면 꾸준한 소득이 생기니 재무 준비는 자연히 해결됩니다. 그리고 직장을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만들어져 인간관계·취미활동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요. 업무를 하면서 사회적 소속감과 효능감이 유지되면 건강관리도 한층 쉬워집니다. "
이때부터 내게 ‘인생 2막의 직업 찾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먼저 퇴직한 선배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만족도가 어떤지 각별한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