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에서 현대캐피탈 잔류를 선택한 허수봉. 올해 연봉 총액 13억원으로 V리그 최고 대접을 받았다. 그는 “팬들이 ‘다른 팀에 가지 말라’고 했다. 구단 스태프와 선수들과 함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종신 현대맨’ 가능성이 크다. 김성태 객원기자
지난달 끝난 프로배구 프리에이전트(FA) 시장 최대어는 허수봉이었다. 28세의 젊은 나이, 국내 최고 수준의 공격력, 주장으로서의 리더십까지 모두가 탐내는 선수였다. 하지만 허수봉의 선택은 잔류였다. 총액 13억원(연봉 9억원+옵션 4억원)에 사인해 V리그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천안에 위치한 현대캐피탈 연습 체육관에서 만난 허수봉은 “현대캐피탈에 남은 첫 번째 이유는 팬들이다. ‘다른 팀에 가지 말라’는 연락이 많이 왔다. 두 번째는 구단 스태프와 선수들이다. 함께 하고 싶었다”고 웃었다. 필립 블랑 감독도 5차전이 끝난 뒤 식사 자리에서 “남아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허수봉은 현대캐피탈을 제외한 팀과는 협상조차 하지 않았다. 대한항공, KB손해보험 등이 관심을 보였지만 만나지 않았다. 액수가 비슷할 거라는 판단도 있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허수봉은 “처음엔 다른 팀에서 새로운 걸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챔피언결정전이 끝난 뒤 남아야겠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문을 닫은 셈인데, 그만큼 마음이 확고했다.
현대캐피탈 주장 허수봉. 천안=김성태 객원기자
계약 기간 3년이 지나면 허수봉은 30대가 된다. 이번 FA 계약을 통해 ‘종신 현대맨’이 될 가능성이 높다. 허수봉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엔 다른 팀으로 가기 어렵다는 걸 나도 안다. 문성민 코치님처럼 원클럽맨이 되고 싶다. 한 팀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사랑받으며 은퇴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시즌 챔프전은 뜨거웠다. 2차전에서 불거진 ‘인/아웃’ 규정 문제로 양 팀 선수단과 팬들이 폭발했다. 승부도 치열했다. 정규시즌 1위 대한항공이 1·2차전을 따냈지만 현대캐피탈이 안방 천안에서 3·4차전을 이기며 최종 5차전까지 끌고 갔다. 대한항공이 통합우승을 차지했지만 현대캐피탈의 투혼도 박수를 받았다.
허수봉은 “프로에서 9시즌을 치렀는데 이번이 가장 힘들었다. 정규시즌 내내 잔부상이 있었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진 경기가 많았다. 챔프전 5차전에서 힘도 못 써보고 진 느낌이라 여운이 오래 갔다”고 했다. 이어 “대한항공과 챔프전에서 여러 번 맞붙었는데, 이번엔 해내지 못했다는 마음이 크다. 통합우승을 한 2024~25시즌처럼 대한항공을 꺾고 싶다”고 했다.
현대캐피탈 주장 허수봉. 천안=김성태 객원기자
비시즌에도 허수봉은 거의 쉬지 못했다. 챔프전을 마친 뒤 2주 정도 쉬고 팀에 합류해 훈련을 재개했다. 13일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기 때문이다. 허수봉과 쌍포를 이룬 레오와 바야르사이한이 불참하는 현대캐피탈은 중국인 선수 2명이 합류했다. 반면 다른 팀들은 수준급 단기 외국인을 영입해 첫 판인 8강 탈락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허수봉은 “좋은 기회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기하는 것만으로도 값진 경험”이라고 했다.
다음 일정은 국가대표 합류다. 대표팀은 올해 4개 대회에 나선다. 특히 8월 아시아선수권과 9월 아시안게임이 중요하다. 아시아선수권 1위를 차지하면 2028 LA 올림픽 출전권을 얻는다. 아시안게임은 2006년 도하 대회 이후 금메달이 없다.
현대캐피탈 주장 허수봉. 천안=김성태 객원기자
허수봉은 “올림픽은 꿈의 무대다. 지금 대표로 발탁된 선수들의 호흡이 매년 좋아지고 있고, 개인 기량도 좋다”며 “아시안게임은 아무래도 일본이 힘든 상대다. 내가 대표를 하는 동안 5번 정도 만나 3번 이겼다. 이번엔 일본에서 대회가 열려 1진이 나서면 객관적으로 밀리겠지만, 한일전 아닌가. 정신력을 발휘하면 충분히 일을 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결국 허수봉의 잔류는 돈 계산이 아니었다. 지난 챔프전 패배의 여운, 지금 이 멤버로 대한항공을 꺾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한 팀에서 끝까지 사랑받고 싶다는 바람이 그를 천안에 붙잡았다. 2020년대 V리그 최고 팀 자리를 놓고 벌이는 대한항공과의 라이벌 구도는, 허수봉이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는 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