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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의 인사이드 아트] 현대미술의 두 얼굴, 허스트와 세갈

중앙일보

2026.05.1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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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미술비평가·부산비엔닐레 집행위원장

이준 미술비평가·부산비엔닐레 집행위원장

같은 도시, 같은 시기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두 개의 현대미술 전시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데미안 허스트, 리움미술관의 티노 세갈. 이 차이는 단순한 스타일의 대비가 아니다. 20세기 미술이 재현과 추상, 물질성과 탈물질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확장되었다면, 오늘의 미술은 또 다른 전환 속에 놓여 있다. 작품은 물질적 대상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아니면 개념과 행위·규칙만으로 성립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스펙터클 극대화하는 허스트
촬영이나 기록 불가능한 세갈
예술 경험 방식을 재편하는 중

데미안 허스트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사진 이준]

데미안 허스트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사진 이준]

두 작가는 이 질문을 서로 다른 전략으로 밀어붙이며, 오늘날 미술이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작동하며,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생산하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데미안 허스트는 삶과 죽음, 욕망이라는 근원적 주제를 압도적 시각성으로 제시한다. 포름알데히드 속 동물 사체, 다이아몬드 해골, 의학적 분류 체계를 연상시키는 진열장과 나비의 날개를 활용한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은 관객의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 시각적 충격은 단순한 자극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비엔날레와 미술관을 넘어 미디어와 미술 시장의 주목을 이끌어내며, 무엇이 가치로 인정되고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보여준다. 갤러리를 거치지 않는 경매 참여, NFT 프로젝트를 위해 원작을 소각하는 행위까지 유통 구조 자체를 흔들며, 동시대 미술이 어떻게 주목받고 가격과 희소성을 생산하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동물 학대와 상업주의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그 비판조차 예술적 서사로 전환하는 데 능숙하다.

반면 티노 세갈은 정반대의 방향에서 미술의 조건을 다시 설정한다. 물질 과잉의 소비사회를 비판하는 그의 전시는 물질적 결과물 없이 행위자들의 몸짓과 발성, 상황의 전개로 구성된다. 관객은 이를 기록하거나 소유할 수 없으며, 작품은 특정한 시간과 관계 속에서 관객의 참여를 통해 성립한다. 고정된 대상 없이도 전시는 지속되며, 정해진 조건과 규칙에 따라 다른 장소와 상황 속에서 반복적으로 실행된다. 작품은 사물이 아니라, 일정한 규칙에 따라 실행되는 하나의 프로토콜이다.

퍼포먼스와 전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은 해체적이면서도 융합적이다. 비물질성과 비기록을 원칙으로 하는 그의 작업은 축적의 논리를 거부한다. 이러한 방식은 미술관의 소장과 보존, 기록의 개념 자체를 다시 묻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의 작업은 기록을 남기지 않는 계약 방식을 통해 소유권이 엄격하게 관리되며, 미술 시장에서 유통된다. 역설적으로 세갈은 시장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규칙을 다른 차원에서 재구성한다.

이처럼 두 작가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쪽은 스펙터클을 극대화하고, 다른 한쪽은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며 본질을 드러낸다. 한쪽에서는 거대한 유리 수조 속에서 죽음을 영원히 보존하려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들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하나는 시각적 확실성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고, 다른 하나는 사라짐을 통해 존재를 성립시킨다. 전자는 반복 가능한 이미지로 남고, 후자는 기억 속에서만 되살아난다. 그러나 이러한 상반된 방향은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두 작가 모두 미술 제도와 관람객의 반응까지 치밀하게 기획하고 설계한다. 인간의 존재에 관해 질문하면서도 하나는 충격과 도발, 소유의 방식을 강화하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몸짓과 관람객의 경험을 극대화한다. 우리는 그 압도적인 이미지 앞에서, 혹은 예기치 않은 상황 속에서, 있는 그대로를 느끼거나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전시 형식 자체가 우리의 시선과 반응을 미리 설계하는 장치처럼 작동한다.

현대미술은 이러한 규칙을 설계하는 작가와 기획자들의 주도 아래 재편되고 있다. 이 변화는 우리가 예술을 경험하는 방식 자체와 맞닿아 있다. 게임의 규칙을 모르면 관객은 소외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 해석하는 관람자인가, 아니면 그들이 만들어낸 장면 속 구경꾼인가. 우리는 그 변화를 비판적으로 읽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설계된 감각의 흐름 속으로 무의식중에 편입되고 있는가.

이준 미술비평가·부산비엔닐레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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