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우먼을 넘어 인류학자 반열에 올랐다는 개그우먼 이수지. 유튜브 ‘핫이슈지’로 사회 곳곳의 속물근성을 파고들며 130만 명 구독자를 끌어모았다. 병원 진상 환자 황정자로 분한 이수지는 아들을 만나보지 않겠냐며 간호사에게 한 마디 던진다. “우리 아들, 하이닉스 다녀.” 곧이어 병문안을 온 아들은 때아닌 작업 조끼를 입고 있다. 어설프게 로고를 테이프로 덧붙여 만든 최고의 소개팅룩, SK하이닉스 조끼다.
SK하이닉스가 쏘아올린 성과급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고액 자산가로 단숨에 바뀐 SK하이닉스 직원의 위상은 유튜브를 포함한 각종 소셜미디어(SNS)에서 바쁘게 소비되고 있다.
SNS 뒤흔든 로또가 된 직장
흔들리는 한국식 연봉 질서
인재 쟁탈, AI시대 생존 변수
발단은 지난 2월 SK하이닉스가 직원에게 뿌린 초과이익분배금(PS)이다. 성과급 상한을 없애고 전년도 영업이익의 10%를 나눠 주기로 한 게 시작이었다. 인공지능(AI) 열풍이 불러온 반도체 호황 덕에 직원들은 억 소리 나는 성과급을 받았다. 관건은 올해다. 증권가에서 예상하는 올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250조원 이상이다. 10%인 25조원을 약 3만5000명인 SK하이닉스 직원이 나눠 가지면 평균 7억원에 달한다는 산식이 SNS 민심을 들끓게 하는 중이다.
지난주 로또 1등이 가져간 돈이 1인당 18억6000만원이다. SK하이닉스를 2~3년만 다녀도 로또 1등 당첨이나 마찬가지란 얘기다. 바닥부터 출발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라 수억, 수십억 연봉을 받는 ‘월급쟁이 신화’야 흔하지만, 전 직원이 로또를 맞는 건 60여 년 대한민국 산업화 역사에 듣도 보도 못했던 일이다. 물론 지금의 반도체 호황이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SK하이닉스를 뛰어넘는 매출과 영업이익을 낸 삼성전자 직원이 가만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테다. 역시나 총파업을 예고하고 사측과 줄다리기에 들어갔다. 다른 기업으로도 성과급 불만이 번지는 중이다.
사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직원이 연 5억~10억원(약 33만~67만 달러)에 이르는 보상을 챙기는 건 흔한 일이다(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미국에서 자녀가 가졌으면 하는 직업으로 엔지니어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이유다. 대신 단서가 있다. 핵심 인력이어야 한다. 매출이나 이익 증가율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성과, 경쟁사에서 끌어갈 수 있는 인재가 맞는지도 면밀히 따진다. 같은 팀 내에서도 수배의 연봉 차이가 나는 게 실리콘밸리에선 당연하다.
군비 경쟁이란 비유가 나올 정도로 기업의 생사를 걸고 벌어지는 AI 투자 열기에 인재 확보 전쟁은 더 심해졌다. 메타가 오픈AI의 핵심 인재를 빼내 오려고 연 1억 달러의 보상 패키지를 제안했다거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구글 딥마인드 직원 20여 명을 빼오고 이 중 최고 인력에게 연 1000만 달러 보상을 해줬다거나. 최근 실리콘밸리에선 흔한 일화다. 동시에 AI에 뒤처진 인력 수천 명, 수만 명이 한꺼번에 해고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SK하이닉스 논란이 단순히 부러움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현대전자 시절부터 청춘을 바쳐 지금의 하이닉스를 있게 한 후 퇴직한 사람과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 수억 원대의 성과급은 과연 누구의 몫이어야 할까. 거꾸로 대규모 영업손실이 났을 때 SK하이닉스 직원은 이 중 10%를 나눠 갚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그 사람들이 과연 받을 자격이 있나’ ‘나도 받을 자격이 있지 않나’ 등 복잡다단한 물음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더 받고, 덜 받고의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을 이어온 한국의 보상 체계를 바닥부터 뒤엎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회사가 잘 되면 다 같이 잘 벌고, 못 되면 다 같이 못 버는 한국적 방식의 유효 기간이 다하고 있다는 신호다.
안타깝게도 정답은 없다. 논란을 불러온 SK하이닉스나 실리콘밸리의 방식 역시 정답이 아니다. 근로자 인센티브를 포함한 각종 계약의 이론을 연구해 노벨경제학상까지 받은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가 낸 결론도 그랬다. 그는 책 『기업, 계약 그리고 금융구조(Firms, Contracts, and Financial Structure)』에서 “불행히도 완전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건 불가능하다.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상황을 예측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AI 시대가 자리 잡을수록 소수의 인재를 확보하는 경쟁은 더 불붙을 수밖에 없다. 한국 실정에 맞는, 불완전하지만 그나마 인재를 더 붙잡을 만한 성과급 체계를 만드는 기업만 살아남는 시대가 오고 있다. SK하이닉스 사례는 그 한 단면일 뿐이다. 성과급을 둘러싼 ‘쩐의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