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 외교부 대변인이 10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한국 선박 HMM 나무호 폭발 및 화재 사고의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단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외교부는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중이던 HMM 나무호 관련 정부 합동 조사단이 현장 조사를 지난 8일 실시했다"며 "조사 결과 지난 4일 미상의 비행체가 나무호의 선미를 타격한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말했다. 뉴스1
정부가 10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HMM 화물선 나무호의 폭발 원인을 ‘미상의 비행체에 의한 외부 타격’으로 공식화했다. 정부는 타격의 주체는 아직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비행체 엔진 잔해 등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드론 공격에 당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오후 정부합동조사단의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난 4일 미상의 비행체 2기가 약 1분 간격으로 나무호 선미 좌현을 두 차례 타격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타격 지점인 선미 외판은 폭 5m, 깊이 7m가량 훼손됐으며, 파손 위치가 해수면 위 1~1.5m 지점인 점을 고려할 때 기뢰나 어뢰에 의한 피격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조사됐다는 설명이다.
조사단은 비행체가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했고, 현장에서 비행체 엔진 잔해 등을 수거해 정밀 분석에 착수했다. 선박 엔진 등에서는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아 내부 결함에 의한 화재 가능성은 사실상 배제됐다.
앞서 해양안전심판원과 소방청 전문가 등 7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은 지난 4일 사고 발생 후 두바이항으로 사흘 뒤 예인한 나무호를 대상으로 지난 8일 현장 조사를 벌였다.
청와대는 이날 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가 참여한 가운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위원회를 열고 향후 대응 등을 논의했다. 청와대는 지난 5일 원인이 확인되는 대로 “상응하는 후속 조치를 취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밀 조사가 남아 있는 만큼 공격의 주체 등을 특정하는 데는 일단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비행체의 엔진 잔해가 발견된 만큼 분석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비행체인지 파악하는 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CCTV에 찍힌 비행체의 외형 만으로는 기종 특정 등이 쉽지 않다고 한다.
정부는 4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HMM 소속 화물선 ‘나무호’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했으며 미상 비행체의 타격에서 일어났다고 밝혔다. 미국 측은 이란 공격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이란 정부는 개입 의혹을 부인했고 한국 정부는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다. 사진은 미상 비행체의 타격으로 피해 입은 선박 외부의 모습. 뉴스1
전문가들은 이란제 드론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조상근 KAIST 연구교수는 “짧은 간격으로 두 차례 정밀하게 타격하고, 엔진이 발견됐다면 중형 이상의 자폭 드론일 가능성이 크다”며 “피해를 키우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한국 해군이 미국의 군사작전에 합류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이란의 고도의 회색지대 전술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선체의 피해 정도를 볼 때 수십㎏ 폭약의 드론일 가능성이 있다”면서 “낮게 날아오다가 선박 후미에 내리꽂듯 부딪히면 충분히 가능한 공격”이라고 짚었다.
해외 군사 전문가들과 외신들도 이란의 샤헤드-136 자폭 드론 공격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샤헤드는 위성항법장치를 통한 유도로 선박의 기관실 등을 정밀 조준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탄두 중량이 가벼워 선체에 파공(구멍)을 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날 정부가 사진으로 공개한 선박 파손의 형태 역시 가오리 모양의 샤헤드와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반면에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비행체의 엔진이 외부로 노출된 형태의 대함 순항미사일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순항미사일의 위력을 고려할 때 두 발을 맞았다면 선체 훼손이 훨씬 심각했을 것이란 의견도 적지 않다.
8일(현지시간) 벌크 화물선 HMM 나무호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항의 수리조선소 '드라이 독스 월드 두바이'에 접안해 있다. 연합뉴스
앞서 이란 측은 나무호 피해에 대해 다소 엇갈린 메시지를 내놨다. 이란 국영 프레스TV가 지난 6일 “이란이 새로 정의한 해상 규칙을 위반한 한국 선박 1척을 겨냥한 건 이란이 물리적 행동으로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명확한 신호”라고 밝히자, 주한 이란대사관은 즉각 성명을 통해 “이란군(Armed Force)이 연루됐다는 어떤 주장도 단호히 거부한다”고 부인했다.
외교부는 이날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를 불러 조사 결과를 설명했다. 이란이 관련국인 점을 고려한 정보 공유 차원이란 설명이지만, 정부의 향후 후속 조치와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과 면담한 쿠제치 대사는 취재진에 “이번 사고(accident)와 관련한 일반적인 이슈 일부를 논의했다”며 “질문은 (한국) 외교부에 하라”고만 답한 뒤 청사를 떠났다.
실제 여권 일각에선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란 측에 더욱 강력한 안전 보장 조치를 요구할 근거를 확보했단 말이 나온다. 현재 발이 묶인 국적선 26척을 대피시키는 등 이란을 상대로 안전 조치 실행을 강하게 요구할 명분을 얻었단 취지다. 특히 초기에는 사상자가 없다고 알려졌으나 선원 1명이 경미한 부상을 입은 사실도 이날 뒤늦게 확인됐다. 지난 3월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공격으로 선원 3명이 숨진 사고를 당한 태국은 휴전 선언 직후 억류됐던 자국 화물선을 철수시킨 사례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번 조사를 고리로 미국의 군사적 지원 압박도 거세질 수 있다. 일단 종전 협상이 진행되며 미국의 전면적 군사 작전은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트루스소셜과 미국 ABC 방송 인터뷰에서 연달아 사건을 거론하며 “한국 선박이 단독으로 항해하다 타격을 입었다. 한국이 즉각 인력을 파견해 조치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트럼프가 지난 5일 선박 구출 작전(프로젝트 프리덤) 일시 중단을 선언했지만, 휴전 협상 경과에 따라 언제든 파병 압박은 다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관련, 박 대변인은 “금번 사고의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을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비롯하여 가능한 모든 방안을 추진함으로써 우리 국민 안전 확보에 정부는 만전을 기해 나가고자 한다”며 “미국의 해양자유구상(MFC)를 비롯한 미측 구상 참여 문제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10일 오전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과 회담을 위해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워싱턴D.C로 출국 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 장관은 1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과의 회담을 비롯해 미국 해군성장관 대행, 상원 군사위원장 및 간사, 해양력소위원장 등 미측 정부와 의회 인사를 만날 예정이다. 뉴스1
특히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방미길에 오른 가운데 오는 11일(현지시간) 열릴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호르무즈 해협 안정화를 위한 한국의 기여 문제가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주요 관심사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이지만, 미 국방 당국의 관심사는 이란에 쏠려 있다. 앞서 헤그세스 장관은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경색 국면 해소를 위해 “한국이 더 나서 주길 바란다”고 발언했다.
안 장관은 이날 출국길에 기자들과 만나 “작년 SCM(안보협의회의) 때 금년도 연말 한미 SCM에서 전작권 전환의 ‘X 연도(목표연도)’를 확정하자고 말씀 드렸기 때문에 그것도 주요 현안 중 하나”라며 “전작권 전환에 속도를 내는 것은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