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나 유류세 인하 등 고강도 유가 안정 대책을 펴지 않는다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를 웃돌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에너지 운송 불확실성이 1970년대 오일쇼크 수준에 육박하는 등 물가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어서다.
11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간한 ‘최근 국제유가 상승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중동 전쟁 이후 에너지 운송 불확실성에 따른 유가 상승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1.6%포인트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바이유를 기준으로 국제유가가 올해 2분기 95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연말에는 80달러 수준으로 안정되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소비자물가가 최소한 1%포인트는 오를 거라는 의미다. 만약 국제유가가 2~4분기 내내 4월 평균인 105달러 수준을 유지한다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6%포인트, 내년 1.8%포인트 더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정부와 한국은행의 올해 소비자물가 전망치는 각각 2.1%, 2.2%다.
KDI가 전 세계 주요 신문사 기사 중 에너지 공급망, 물류 차질과 연관된 키워드 출현 빈도를 이용해 계산한 ‘에너지 운송 불확실성 지수는’ 지난 3월 850 수준으로 기존 평균(100)의 8.5배까지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70~80년대 오일 쇼크 수준에 근접한 것이다.
게다가 국내 석유류 가격은 에너지 운송 불확실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 정도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KDI 분석 결과 지난 2000~2025년 두바이유가 10%포인트 상승할 때 에너지 운송 불확실성에 기인한 경우 국내 석유류 가격 상승률은 2.69%포인트였다. 석유 수요 증가 등 그 외 요인에 기이한 상승 폭(2%포인트)보다 30% 정도 높았다. 마창석 KDI 경제전망실 연구위원은 “운송 불확실성에 기인한 경우 글로벌 정제기업들이 예비적으로 재고를 확보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에 석유제품 가격이 실제 수급 여건보다 과도하게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석유류를 포함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 폭은 0.2%포인트로, 그 외 요인(0.11%포인트)에 의한 경우보다 2배 정도 영향이 컸다. 또한 운송 불확실성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은 기조적인 물가 흐름을 나타내는 근원물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적인 국제유가 상승과 달리 근원물가 상승률을 0.1%포인트 정도 확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송 차질로 국제유가가 오르면 석유류뿐만 아니라 공업제품, 서비스 등 비석유류 품목 가격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이는 분석의 안정성을 위해 석유 최고가격제나 유류세 인하 폭 확대 등 정부 정책의 영향을 배제한 것이다. 재정경제부는 이런 정책이 3월 물가를 -0.6%포인트 4월엔 -1.2%포인트 하락시킨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4월 소비자물가만 하더라도 2.6%가 아닌 3.8%에 육박했을 거란 얘기다. 문제는 고유가가 장기화할수록 정유업계의 경영 부담은 물론 이를 보전해야 하는 정부의 재정 소요도 커진다는 점이다. 마 연구위원은 “국제유가 상승이 장기화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며 “석유 최고가격제는 이점과 비용을 면밀히 따져봐야 하는 만큼,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지 않도록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