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교무가 된 지 몇 해 안 되었을 무렵, 신앙심이 깊으신 교도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할머니 교도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교도님의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모녀의 다정한 통화가 한동안 이어졌다. 기업인의 배우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딸이지만, 국내외 어디에 있던지 어머니의 시간에 맞춰 하루도 빠짐없이 안부 전화를 챙긴다고 했다. ‘본받을 만하다, 전화 정도는 나도 해볼 수 있겠다’ 싶어, 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오랜만에 전화한 딸의 목소리에 어머니께서는 반가워하셨다. 다음 날은 시간을 맞추지 못했지만 잊지 않고 전화를 드렸다. 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하루 사이에 얼마나 이야깃거리가 생겼겠는가. 사흘째 되던 날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야 생각이 났다. ‘전화 정도야’라고 쉽게 생각했던 것인데 시간을 맞추는 것은 고사하고, 매일 전화를 드린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꽃 같은 출가 발심 난 딸에게
꾹꾹 사랑 담아 쓴 어머니 편지
우뚝 선 큰 산에 큰 부처 되라는
김지윤 기자
그런데 내 마음을 챙기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전화를 받으시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나는 ‘공인으로 내 몫을 다하는 것이 효도’라는 생각으로, 다정한 딸 대신 멀리서 소식으로만 전해 듣는 교무 딸로 지내 왔다. 그런 딸에게 갑자기 사흘 연속으로 전화가 오니, 어머니께서는 반가움보다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이 앞서셨나 보다. 별일 없다고, 이제 철이 들어서 효도 좀 하려는 것이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어머니의 걱정은 좀처럼 가시지 않으신 모양이다. 언니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하셨단다. 효도를 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어머니께 괜한 걱정을 드리고 만 것이다. 결국 효도는 못 할망정 걱정을 드리지는 말자는 생각에, 매일 전화 드리기는 사흘간의 에피소드로 끝나고 말았다.
이 짧은 경험은 효도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원불교에서는 모든 존재는 은혜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이라도 천지(天地)·부모(父母)·동포(同胞)·법률(法律)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네 가지를 ‘없어서는 살지 못할 근본적인 은혜’, 곧 사은(四恩)이라 한다. 사은 가운데 부모의 은혜를 헤아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부모님이 계셨기에 이 몸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고, 자력(自力) 없는 몸을 양육하고 사람의 의무와 책임을 가르쳐 인류 사회로 이끌어 주신 것 또한 부모님 은혜다. 그러니 힘닿는 대로 심지(心志)의 안락과 육신의 봉양으로 보은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나아가 내가 자력이 없을 때 부모님께 은혜 입은 것을 알아서 힘이 미치는 대로 자력 없는 이를 보호하고 타인의 부모라도 내 부모처럼 보살피는 것이 부모 보은의 길이라고 한다. 또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 부모의 이름까지 빛나게 하는 것, 그것이 효도의 온전한 완성이라 한다.
나는 얼마나 보은하며 사는가를 돌아보다가, 문득 어머니께서 주셨던 편지가 떠올랐다. 처음 출가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을 ‘꽃발신심’이라고 표현한다. 꽃이 피어나는 순수하고 고운 마음을 출가의 발심(發心)에 빗댄 말이다. 어머니께서는 꽃발신심이 난 딸에게 한 글자 한 글자에 사랑을 담아 편지를 써 주셨다.
“원래, 진경이는 내 딸이 아니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를 피하려고 내 품 안에 의지하였지만 어느새 쏟아지던 소낙비는 그치고 밝은 햇살이 환하게 비추니 진경이는 떠나거라. 가야 할 부처의 길을 즐겁게 가거라. 사랑하는 우리 막내딸.” “진경이는 큰 산이 되옵소서. 크고 높고 넓은 큰 산에 골짜기 깊은 명산이 되어 온 세계 중생들을 한 품에 안으소서. 혼자만 부처 되지 말고 온 세계 중생들과 다 함께 큰 부처가 되옵소서. 우뚝 선 큰 산 명산에 큰 부처 되옵소서. 나는 크고 높은 산 큰 골짜기에 흐르는 깨끗하고 맑은 물이 되어 크고 아름다운 명산을 항상 촉촉하게 해주리라. 사랑하는 우리 막내딸.”
어머니의 편지를 떠올릴 때마다, 출가할 때의 초발심을 챙기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내게 바라신 것이 당신을 향한 효도가 아니라 진정한 출가자로서 살아가는 것임을 되새기고, 그렇게 살고 있는지 성찰하게 된다. 실버타운에 계신 어르신들을 모시며 부모 보은의 도리를 다하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오랜만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