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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 칼럼] 미국 기업 쿠팡의 배신, 그리고 결자해지

중앙일보

2026.05.11 08:10 2026.05.1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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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경제선임기자

박현영 경제선임기자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고 친숙한’, ‘국가를 대표할 만한’ 무엇을 일컬을 때 단어 앞에 ‘국민’을 붙인다. 국민 가수, 국민 간식이 한 예다. 이런 기준이면 쿠팡을 국민 기업으로 불러도 손색없다. 지난해 유출된 개인정보가 3370만 명분에 달했으니, 어린이와 고령자를 빼면 국민 대부분이 고객이다. 한국계 미국인 범 킴이 국내에서 창업하고 상장은 뉴욕증시에 했지만, 우리는 창업자를 김범석 의장으로 부르고 쿠팡을 국내 기업으로 대했다. 성 김 현대자동차 사장,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처럼 미국식 이름을 쓰지 않아 더 친근했다.

유출 사고를 계기로 쿠팡은 자신의 정체성은 미국 기업이라고 커밍아웃했다. 사고와 피해가 발생한 한국에서 수사당국·고객과 풀어야 할 문제를 미국 정부에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면서다. 지금까지 쓴 풍성한 로비자금이 JD 밴스 부통령을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 고위급을 움직였다. 미국에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은 아니지만, 지난해 트럼프 취임식에 상한액 100만 달러(약 14억원)를 기부하고, 올 1분기 로비자금으로만 109만 달러(약 16억원)를 지출한 ‘돈의 힘’이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리셉션에 참석한 김범석 쿠팡Inc 의장과 트럼프 주니어. [연합뉴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리셉션에 참석한 김범석 쿠팡Inc 의장과 트럼프 주니어. [연합뉴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쿠팡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김 의장 입국 시 신변 안전을 보장하지 않으면 한·미 외교·안보 고위급 협의는 없다는 입장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이 문제가 한·미 간 안보 협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위성락 국가안보실장)로 확인됐다.

쿠팡은 차별이 아니라 특혜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다. 대형마트에 대한 새벽 배송 규제는 쿠팡이 공룡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길을 터줬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다. 온·오프라인 통틀어서 유통업계 1위다. 차별받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국회의원들이 쿠팡 대표를 앉혀 놓고 고함 지르기 대회를 연듯한 모습을 본 미국인들은 차별과 괴롭힘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쿠팡 사태의 실상을 알면 트럼프 진영조차 마냥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다. 보안 관리 부실을 틈타 중국인 직원이 대규모 정보를 유출하고, 쿠팡이 범행에 사용된 노트북을 확보한 뒤 하천에 버려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는 혐의는 중국으로의 정보 유출을 경계하고 공권력의 권위를 중시하는 미국의 가치관과도 배치된다. 사건 발단의 책임은 전적으로 쿠팡에 있다. 한국 시장에서 사업을 지속해야 할 주체도 쿠팡이다. 일개 기업이 한·미 관계를 흔드는 것은 브랜드 가치에 독이다. 김 의장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박현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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