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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의 퍼스펙티브] 전 생애 이민 경로 만들어 ‘제2의 일론 머스크’ 키우자

중앙일보

2026.05.11 08:12 2026.05.1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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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연세대 의대 교수·인구와인재연구원장

김현철 연세대 의대 교수·인구와인재연구원장

세상을 바꾸는 최고 수준의 인재는 특정 국가에서만 태어나지 않는다. 지구촌 곳곳에서 균등한 확률로 태어난다. 세계 각지의 천재들을 우리 사회로 끌어올 수 있다면, 이는 국가 경쟁력 강화의 핵심이 될 수 있다.

압도적 혁신을 자랑하는 미국이 가장 좋은 예다. 미국 7대 빅테크 기업 중 4곳의 최고경영자(CEO)가 이민자 출신이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대만계 1.5세다. 세계를 구한 mRNA 백신을 개발한 독일의 우구르 샤힌 부부 박사 역시 튀르키예 계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지방에 저렴한 국제학교 수십 개 세워
외국 영재 키우고 박사 후 영주권까지
비자·정착 통합하는 컨트롤타워 필요
노동력을 넘어 ‘이웃’을 받는 전략으로

최근 법무부가 발표한 ‘2030 이민정책 미래전략’은 매우 반갑고 고무적이다.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고숙련 우수인재 유치 의지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자 제도를 손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한민국이 살아나는, 가슴 뛰는 시나리오를 상상해야 한다. 예컨대, 15세 우즈베키스탄 영재가 장학금을 받고 포항의 국제학교에 입학해 한국어와 영어를 배운다. 연세대에서 학부를, KAIST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후 한국 시민이 되어 판교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45세에 글로벌 기업을 이끄는 CEO가 된다. 이런 ‘전 생애 경로’가 실재해야 이민자가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동유럽 10대 영재 데려와 키우는 미국
이를 위해 범부처 ‘외국인 인재 마스터플랜’이 가동돼야 한다. 우선 어린 영재를 기숙형 국제학교와 과학고에 받는 게 첫 단추다. 미국의 FLEX(Future Leaders Exchange) 프로그램은 1992년부터 동유럽 10대 영재들을 전액 장학금을 줘 데려온 뒤, 대학과 사회 정착 발판을 마련해주는 방식으로 전 세계 영재들을 자국 자산으로 흡수했다. 이처럼 외국인 인재가 어릴 때부터 한국에서 성장해야 정착 가능성이 커진다.

대학은 최고급 인재를 묶어두는 베이스캠프다. 기업에 취업한 인재는 조건이 안 맞으면 언제든 한국을 떠난다. 하지만 대학은 최고급 인재를 안정적으로 묶어두는 베이스캠프로서 대한민국의 연구개발(R&D) 역량에 직접 기여하고 수많은 후학을 양성한다. 대학 캠퍼스가 글로벌 톱클래스의 외국인 교수로 가득 차야 하는 이유다.

1991년 설립된 홍콩과기대는 북미·유럽의 최상급 인재를 영입하고자 파격적인 전방위 패키지를 구사했다. 압도적 연봉, 탁월한 연구 환경, 캠퍼스 내 주거 시설과 자녀 국제학교 입학까지 모두 책임졌다. 그 결과 단 10여년 만에 아시아 최정상급 대학으로 도약했다. 과연 우리에게 이런 비전과 실행 의지가 있는가.

현실은 참담하다. 내가 연세대에 부임하기로 결정하던 날의 일이다. 당시 나는 홍콩과기대 신임 교수 채용 회의에 참여했었다. 홍콩 측은 신임 조교수에게 연봉 2억원과 거액의 주거비를 제안했다. 반면 한국 대학의 연봉은 그 절반 미만이었고 경직된 호봉제에 묶여 있었다. 이 비대칭이 한국이 최고 인재 유치를 놓치는 뼈아픈 단면이다.

지표도 실망스럽다. 국내 외국인 유학생 85%가 졸업 후 한국을 떠나며, 정착률은 15%에 불과하다. 한국 주요 대학의 외국인 교수 비율도 5~10% 수준으로, 50%를 넘는 홍콩·싱가포르와 대조적이다.

인구 750만 명 홍콩엔 국제학교 80개
자녀 교육 인프라는 더 심각하다. 인구 750만 명의 홍콩에 80개 국제학교가 저렴하게 운영되는 동안, 한국은 5200만 인구에 학교 수가 40여 개며 학비도 비싸다. 세계적 연구중심대학 포스텍이 있는 포항조차 국제학교가 없다. 우리의 민낯이다.

기회는 바로 지금이다. 최근 미국은 자국 내 외국인 인재를 향해 사실상 ‘당신들을 원하지 않는다’는 배타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수많은 인재들이 비자 장벽에 밀려 캐나다·유럽·싱가포르 등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치안, 의료, 첨단 인프라, 매력적인 한류 소프트파워를 가진 한국은 새로운 정착지가 될 폭발적 잠재력을 가졌다. 현실의 장벽을 그대로 두고 이 기회를 놓치면 국가적 손실이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 외국인 인재의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5대 정책을 제시한다.

첫째, K글로벌 스쿨(Global School) 신설이다. 전국 주요 거점, 특히 지방 도시에 양질의 국제학교 20~30개를 지어 저렴하게 운영하자. 이는 내국인 인재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지방 도시로 이동할 강력한 인센티브가 된다. 이와 더불어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의 초·중등 영재를 데려와 기숙형 학교에서 공부하게 한 뒤 국내 주요 대학으로 진학시켜야 한다.

둘째, 박사 졸업 후 자동 영주권 트랙이다. 국내 주요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인재에게 졸업 즉시 거주(F-2) 비자를 준다. 이들이 영주권으로 직행할 수 있게 길을 열어야 한다.

셋째, 글로벌 대학교수 유치다. 대학이 재정 여력을 확보하도록 등록금 동결을 풀고, 정부의 과감한 재정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정상급 대학에 10개의 영어 공용 캠퍼스를 지정하자. 낡은 호봉제를 폐지하고 인재에게 파격적인 소득세 감면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넷째, K글로벌 탑 인재 비자(Top Talent Pass)의 대폭 확대다.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높은 탑티어 비자 문턱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 ‘세계 100위권 대학 석·박사, 글로벌 500대 기업 3년 등 8년 경력,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3배 근로소득’ 같은 요건은 사실상 오지 말라는 뜻이다. 2030년까지 350명을 유치하겠다는 정부의 목표치도 너무 소극적이다. 적어도 그 10배인 3500명은 받아야 한다. 홍콩처럼 세계 100대 대학 졸업생에게는 취업 여부와 무관하게 2년간 체류하며 구직할 기회를 주자.

다섯째, 통합 컨트롤타워 신설이다. 이민청이든 총리실 직속 기구든, 여러 부처로 쪼개진 비자와 정착 정책을 하나로 일원화해야 한다. 나아가 관공서와 은행의 영어 행정을 전국적으로 표준화해야 한다.

모든 이민은 이웃으로 귀결
“모든 이민은 노동력을 찾아 시작되었으나 이웃으로 귀결된다”고 한다. 처음부터 영구 정주를 계획한 나라는 없지만, 들어온 노동력의 일부는 반드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이민자를 단순한 ‘노동력(Labor)’이 아닌 함께 살아갈 ‘이웃(Neighbor)’으로 대하는 철학이 필요한 이유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우리는 이웃을 선택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저출산이 굳어진 지금, 이 이점을 십분 활용한 전략적 이민 정책이 절실하다.

전 세계 천재들이 앞다퉈 찾아와 평생을 기여하도록 전 생애 경로 시스템을 완성하자. 대한민국이 문화 전성기를 누리는 지금이 글로벌 인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김현철 연세대 의대 교수·인구와인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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