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인공지능(AI) 협력 협약(MOU)을 맺은 지난달 27일. 협약식 직후 비공개로 이어진 후속 논의 자리에 석차옥(56) 갤럭스 대표가 한국 측 전문가 자격으로 참석했다.
23년 차 서울대 화학부 교수이자 국가AI전략위원회 과학인재분과장을 맡고 있는 그지만, 이 자리엔 그보다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그는 2018년과 2020년,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국제 단백질 구조 예측 대회(CASP) 심사위원으로 ‘알파폴드’를 직접 평가했다. 2년 전 허사비스에게 노벨화학상을 안겨준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폴드의 등장을 누구보다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다.
국제대회 심사하며 방향 확신
수십 만 개 항체 후보 실험 없이
AI로 암 항체 설계 기술 개발
전 세계 기술 보유사 10곳 안 돼
지난 4일 서울 관악구 갤럭스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인 석차옥 갤럭스 대표. 갤럭스는 AI로 항체를 설계해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한다. 장진영 기자
지난 4일 서울 관악구 갤럭스 본사에서 만난 석 대표는 “2018년 알파폴드1을 심사하고, 2년 뒤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알파폴드2를 봤을 때 굉장히 흥분했다”면서 “데이터와 물리화학적 통찰을 결합하는 방향이 맞다는 확신이 섰다”고 말했다. 알파폴드2를 접하기 한 달 전인 2020년 9월 제자 셋과 창업한 갤럭스는 그 확신을 현실에 실현하는 통로가 됐다. 갤럭스는 항암제 등에 쓰이는 단백질 치료제 항체를 AI로 처음부터 설계해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회사다.
제자들이 제안해 함께 창업
Q : 제자들과 함께 창업했다.
A : “원래 창업 생각이 전혀 없었다. 30년 가까이 단백질 분자 연구를 해왔지만, 산업에서 활용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연구가 성숙해지고, 때가 되면 누군가 창업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제자 셋이 찾아와 창업을 제안했다. 훌륭한 제자들과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Q : 어떤 제자들인가.
A : “공동창업자는 총 4명이다. 먼저 당시 박사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박태용 부사장은 현재 경영과 사업 개발을 맡고 있다. 연구실에 있었던 양진솔·원종훈 전무는 AI 기술 개발을 맡고 있다. 저는 나머지를 맡고 있다고 해야 할까. (웃음) 교수 혼자 창업해서 다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인데, 이들 덕에 지금까지 왔다. 가끔 창업 조언을 구하는 이들이 있는데, 역할 분담이 잘 돼야 하고 사업 모델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Q : 2004년부터 서울대 화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다. 병행은 힘들지 않나.
A : “물론 쉽지 않다. 한때 학생도 안 받고, 휴직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최근엔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 회사는 한 목표에 리소스(자원)를 집중적으로 쏟아붓는 곳이지만, 학교는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훨씬 더 넓은 공간이다. 두 곳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니 병행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또 타 분야 교수들과 새 관점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도 자극이 된다.”
지난 6일 제17회 홍진기창조인상 과학기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도 석 대표의 오랜 제자다. 학부부터 박사까지 서울대 화학과에서 배우고 석 대표 연구실을 거친 뒤, 202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데이비드 베이커 연구실에서 단백질 구조 예측 AI ‘로제타폴드’ 개발에 참여했다. 서울대로 돌아와 현재 석 대표와 함께 서울대 바이오 인공지능 연구센터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석 대표는 “다른 연구자를 무조건 좇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 연구 철학인데, 백 교수도 그런 면에서 생각이 같다”며 “제자이자 좋은 연구 동료”라고 말했다.
알파폴드 충격, 드노보 개발의 초석
Q : 창업 후 자리 잡기까지는 어땠나.
A : “처음엔 기술이 실험실 밖에서 통하는지 증명하는 데 집중했다. 쉽지 않았다. 물리화학자로서 기존에 나온 수식이나 개념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알파폴드2를 보면서 AI와 데이터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2~3년 기술 개발에 집중했고, 2024년부터 드노보(de novo) 항체 설계에서 처음으로 성과를 냈다.”
김영옥 기자
항체 치료제는 바이러스나 암세포 표면의 특정 분자 부위에 정확하게 달라붙어야 제 역할을 한다. 갤럭스는 AI로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항체를 설계하는 드노보 기술을 개발했다. 전 세계에서 이 기술을 보유한 곳은 10곳도 채 안 되며 국내에선 갤럭스가 유일하다.
Q : 드노보 기술은 왜 개발이 어렵나.
A : “드노보는 처음부터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기존엔 동물에 항원을 주입하거나 수십만 개 항체 후보를 하나씩 시험해 잘 붙는 것을 골라냈는데, 드노보는 그 과정 없이 컴퓨터로 처음부터 설계한다. 항체는 암세포만 골라서 공격해야 한다. 암세포와 정상 세포가 공유하는 부위를 건드리면 정상 세포까지 손상된다. 그래서 암세포에만 있는 특정 부위에 딱 맞게 달라붙도록 설계해야 하는데,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Q : 투자 유치가 어려웠을 텐데.
A : “다행히 초기부터 기술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투자자가 먼저 찾아왔다. 경제적으로 크게 흔들리지 않고 기술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그 덕이 크다. 사업 모델은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 연구를 시작해 계약금을 받고, 이후 마일스톤과 로열티로 이어지는 구조인데, 아직 이 시장 자체가 초기 단계다. 그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도 지금 우리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Q : 지금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A : “AI는 실제 실험실과 달리 분자를 일일이 정밀하게 다룰 수 있다. 그래서 잘만 되면 기존 실험실 방식이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정밀도를 가질 수 있다. 신약 개발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현재 폐암·유방암·자가면역질환 등 원인이 되는 표적 단백질 15종 이상에서 드노보 항체 설계를 성공했다. 지난해 글로벌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BI)과 공동 연구 계약을 맺은 것도 그 성과의 연장선이다.”
글로벌 무대를 향해
Q : 한국 스타트업으로서 글로벌 무대에서 넘어야 할 벽이 있다면.
A : “기술력은 자신 있다. 다만 충분한 네트워크 없이 시작하다 보니, 글로벌 제약사 결정권자와 처음부터 만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미국 실리콘밸리 생태계는 최상위 제약사 관계자를 바로 연결해 주는 구조인데, 우리는 아래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야 했다. 그래도 지금은 돌파하고 있는 단계다. BI와 계약 이후 글로벌 제약사들이 먼저 연락해 오는 경우도 생겼다.”
Q : 갤럭스의 궁극적 목표는.
A : “신약 개발은 후보 물질 발굴부터 임상까지 가치 사슬이 다 연결돼 있다. 지금은 신약 개발 초입에 있지만, 전체를 연결하는 사슬에서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 기술 증명은 됐다. 아직 누구도 완성하지 못한 그 사슬을, 갤럭스가 먼저 잇고 싶다.”
허남구 에임드바이오 대표
갤럭스는 AI를 통해 단백질을 예측하는 단계를 넘어 목적에 맞게 설계하는 시대를 열고 있다. 석차옥 대표는 깊이 있는 과학적 통찰과 과감한 도전정신으로 이런 변화를 이끌고 있는 연구자이자 창업가다. 갤럭스는 이미 뛰어난 기술력과 다양한 협업 성과를 통해 높은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한국 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수영 셀트리온 부사장
갤럭스는 항체를 포함한 고난도 단백질을 정밀하게 설계하고, 실제 공동 신약개발과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해 가며 바이오 AI의 산업적 적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석차옥 대표는 연구자로서 깊이와 창업가로서 실행력을 바탕으로 갤럭스를 차세대 바이오 혁신의 중요한 주체로 이끌고 있다. 향후 갤럭스가 국내 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
◆‘혁신창업의 길’에서 소개하는 스타트업은 ‘혁신창업 대한민국(SNK) 포럼’의 추천위원회를 통해 선정합니다. SNK포럼은 중앙일보ㆍ서울대ㆍKAIST를 중심으로 혁신 딥테크(deep-tech) 창업 생태계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단체입니다. 대한민국이 ‘R&D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퍼스트 무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에 기반한 기술사업화(창업 또는 기술 이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