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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저출산 위기는 초등교육 개혁 골든타임

중앙일보

2026.05.11 08:16 2026.05.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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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숙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초대 사무처장

장윤숙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초대 사무처장

이재명 대통령이 교사들의 현장 수업 기피 현상을 지적하면서 “사고 책임을 안 지려고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교사들은 열악한 현장 실무와 무거운 법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불합리한 점은 개선하고, 각계 여론을 수렴해 필요한 정책을 추진하라는 취지로 재차 지시했다. 이 논란의 이면에는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공교육 체계의 문제가 있다.

선진국 중 유일한 반일제 수업
초등교육의 국가 책임 강화하고
교육 내용·방식·과정 재설계해야

한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초등학교에서 ‘반일제 수업’을 한다. 초등학생의 연간 수업 시간은 655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05시간보다 150시간이나 적고, 순위도 최하위다. 이렇게 적은 수업 시간을 메우는 것은 ‘학원 뺑뺑이’다. 90% 이상의 초등학생이 정규수업 후에 사교육 시장을 헤매는 현실은 비정상적인 한국 교육의 자화상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한 원동력은 인적자본이었고, 그 중심에는 교육이 있다. 초등학교 의무교육 도입 당시 가난했던 정부는 모든 학생에게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저비용·고효율을 선택했다. 2년제 교육대학을 만들어 교사를 단기간에 양성했고, 공교육 시간은 최소화했다. 교사는 교육을 책임졌고, 학부모는 행사에 동원됐다. 이것은 산업화 시대와 부합하며 세계적인 성공 사례로 꼽혔다.

2000년대로 접어들며 맞벌이 가정이 보편화했고, 정보화 시대로 변화했다. 변화를 빠르게 느낀 곳은 초등학교다. 학부모는 안전한 학교가 많은 책임을 져주길 원했다. 정보화 시대로 교육 수요도 다양해졌다. 맞벌이 가정을 위해 ‘돌봄교실’이 만들어졌고, 다양한 교육 수요는 사교육이 대신했다. 학교는 오히려 공교육 시간을 줄이며 학생들을 밖으로 밀어내기 바빴다. 심지어 안전사고 책임을 이유로 현장학습마저 기피하며 공교육의 기능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지금 초등교육의 시계는 고장 난 채 멈춰 있다. 올해 초등학교 신입생은 30만 명 선이 무너졌다. 아이들 숫자가 감소하는 속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낡은 시스템을 방치하며 문제의식조차 없는 현실이다. OECD 평균을 훨씬 웃도는 교육 예산을 자랑하면서도, 의무교육 도입 시절의 유산인 반일제에 갇혀 있다. 획일화·정형화한 수업방식과 교육과정도 여전하다.

초저출산 현상은 역설적으로 초등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회다. 학생 수 감소로 2030년 6만 명가량의 교사 과잉이 발생할 전망이다. 교육 재정과 교사 수를 줄이자는 하책이 아니라 저출산을 계기로 공교육 시간을 정상화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맞게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수업방식과 교육과정도 바꿔야 한다.

시대 변화에 맞춰 공교육이 아이들의 삶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는 세계적 흐름이다. 주요 국가들도 초등교육의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반일제의 원조인 독일조차 올해부터 전 학년 오후 4시까지 수업 시간을 늘렸고, 학교가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도록 했다. 덴마크는 2014년부터 초등학교 수업 시간과 체험 학습을 대폭 늘렸다.

한국도 초등교육 시간을 정상화하기 위해 전일제 도입을 시도했으나 교육계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 대신 손쉽게 돌봄만 늘려왔다. 행정 부담과 학생 피로를 이유로 학생을 학교 밖으로 밀어낸 교육계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사교육의 무한경쟁 시장에서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 다양한 교육 수요를 공교육의 울타리 안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 개혁이고, 이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그동안 교육개혁은 대학입시 제도를 바꾸는 것과 동일시했다. 초등교육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었다.

초등교육부터 공교육의 역할을 다시 세워야 한다. 단순히 수업의 양을 늘리는 게 교육개혁의 전부는 아니다. 시대 변화에 따른 다양한 교육 내용·방식·과정을 전면 재설계하는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계 눈치만 보던 과거 정부들과 달리 이재명 정부에서는 시대 요구에 부응하는 담대한 개혁을 추진하길 바란다. 교사는 가르치는 즐거움을 회복하고, 아이들은 꿈을 키우며, 부모는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학교다운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윤숙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초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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