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대박을 터뜨렸다. 하이닉스 구성원들은 물론 반도체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한 천상의 선물이다. 인수 후 10년 동안 한 번의 반짝 경기를 제외하고 불황에 헤맸다. CEO가 주가 총액 100조원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결의한 때가 2019년이니 7년 만에 1000조원 기업이 됐다. 당시 10년 고투에 대한 보상과 격려가 필요했다. 약간의 성과급과 주식 지급으로 사기가 올랐다. 매출액이 급증했던 2024년에는 영업이익 10조원을 기준으로 10% 성과급이 채택됐다. 영업이익 수십조원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2026년도 예상 영업이익은 200조원. 재조정이 없다면 성과급은 20조원, 직원이 3만4000명이니 연봉 제외하고 1인당 5.8억원에 달한다.
AI와 HBM 궁합은 천상의 선물
자본과 과학기술자 고난의 행군
명마는 언제든 대체될 위험 직면
돈잔치는 실직과 기업 파산 초래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노조원들이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투쟁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 인당 5.8억원. 부러움도 잠시, 배가 아프다. 하이닉스는 취업 시장 최고 명품관에 들었다. 일등기업 삼성이 가만있을 리 없다. 삼성전자 노조원 7만6000명이 하이닉스 정도의 성과급을 받으려면 예상 영업이익의 15%, 40조원을 웃돈다. 노조는 파업을 선언하고 내부 단속에 들어갔는데, 오늘까지 정부가 중재하는 ‘사후조정’에서 어떤 합의가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대박과 성과급은 신나는 일이다. 그런데 영업이익의 15%가 맞는가? 이건 대박의 주역 HBM(고대역폭메모리)을 향한 고난의 집념을 살펴야 한다. 하이닉스 이사회에서 HBM의 존재가 의제에 오른 것은 고작 2022년 말이었다. HBM 혁신을 담당하던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다가 회사를 떠나기도 했지만 하이닉스는 과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반면 삼성은 1% 파생상품에 불과했던 HBM 공정을 파기했다.
HBM은 기술혁신의 총아다. 현미경으로 겨우 보이는 8Gb(기가비트) 반도체(DRAM) 12개를 쌓아 집적 기둥을 만들고, 그 반도체 기둥을 2048개 세워 만든 것이 HBM이다. 두께는 950㎛, 넓이는 126㎟크기다. 이것이 엔비디아 프로젝트를 가능케 했고 AI 고용량 데이터 연관기능을 활성화했다. 삼성은 포기했던 공정을 재가동해 HBM4E를 제조하는 데에 성공했다. 단가가 조금 비싸기는 하다. 두 기업의 HBM 시장점유율은 70% 수준, 한국은 HBM 제조왕국이 됐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왜 일본이 아닌가? 한국은 AI 시대 최고의 군마를 조달하는 갑마장(甲馬場)이다. 갑마장 주인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감옥을 들락거려야 했던 재벌. 일본의 자이바쓰(財閥) 중심에는 은행이 있다. 은행 경영자의 결재를 받아야 천문학적 자금을 투자할 수 있지만, 한국은 재벌 일가의 결기와 무한 책임이 자금 조달과 투입의 최종 결재자다. 반도체는 엄청난 규모의 설비산업이자 첨단 인력산업이다. 재벌이 없다면 용인, 평택 클러스터 같은 것은 꿈도 못 꾼다. 100만 평에 달하는 용인 클러스터에는 팹(제조공장) 4개가 건설 중인데 팹 한 개에 120조원, 2035년까지 약 600조원을 쏟아야 한다.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노광장비(EUV) 한 대가 5000억원, 팹 한 곳에 수십 대가 설치돼야 공정이 가동된다. 용인과 평택 클러스터 구축 비용은 우리의 2년 치 국가 예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여기에 첨단 인력이 운집한다. 기술연구소와 공정 혁신에 수천 명의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인생을 쏟아붓고, 주요 대학과 MOU를 통해 반도체 미래 인력이 배양된다.
지난해 10월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조성중인 반도체클러스터 단지. 우상조 기자
HBM 흥행 시점에서 가장 먼저 고민할 사안은 이런 것들이다. 2035년까지 클러스터와 팹 구축에 필요한 자금은 충분한가? 기술 인력과 과학자 양성에 전력하고 있는가? 생산 공정을 묵묵히 지키는 노조원들의 복지와 안전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시황은 어떤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HBM 수요 폭증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혹시 HBM을 대체하는 혁신제품이 출현해 하이닉스와 삼성의 운명을 뒤바꿔 놓지 않을까? 최고의 명마(名馬)도 언제든지 낙타, 코끼리, 혹은 하마로 대체될 수 있다. 그러면 용인, 평택 클러스터는 일시에 쪼그라든다. 일자리가 날아갈 뿐 아니라 수만 개 협력기업과 일반 주주들도 파산에 직면한다. 영업이익은 법인세, 자본비용, 연구개발(R&D), 판관비, 장비, Opex, 인건비와 인력 수급, 사원들의 복지와 안전, 무엇보다 전략적 미래투자에 쓰인다. 법인세만 해도 24%다. 다시 묻는다. 영업이익 15%가 맞는가?
그것은 미래를 파괴하는 돈 잔치다. 공익에 조금이라도 눈을 뜬 노조라면 이렇게 요구하겠다. 향후 10년 클러스터 구축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라, 그게 우리의 일자리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우리의 연봉은 최상급이니 사원 복지와 협력업체를 돌봐라. 남는 여력이 있다면 성과급을 지급해 달라. 다른 국가처럼 영업이익의 1~3%에 불과할지라도 진심 어린 보상에 최고의 노동을 제공하겠다고. 스웨덴 노조가 그랬다. 당신들의 돈 잔치 요구는 자식들의 미래를 해치고 타인의 피땀을 독점하겠다는 망국 행위다. 한국인 모두가 뿔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