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HMM 나무호를 타격한 비행체 잔해를 국내로 들여와 정밀 분석하기로 했다. 당초 수일 내 원인을 규명하겠다던 청와대가 지난 11일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쪽으로 기류를 바꾸면서 감식에 장기간이 소요될 경우 정치·외교적 파장이 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조현 외교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잔해는 한국에 들여와)국방부 등에서 조사할 것이다. 전문성이 있는 연구소 등에서 (감식에)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타격에 사용된 무기의 잔해를 조사할 만한 연구소로는 국방과학연구소(ADD) 등이 거론된다. 조 장관은 이란제 드론 ‘샤헤드-136’이 한국 선박 타격에 사용됐다는 관측과 관련해선 “섣불리 (초기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아직 잔해는 현지에서 출발하지 않은 상태다. 통관 등의 행정 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외교행낭이나 군 수송기, 전세기 등 다양한 수송 방안이 거론된다. 외교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두바이 총영사관을 통해 현지 반출 절차 등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며 “(이번주 내 반입이 가능할지는)단정적으로 말씀 못 드린다”고 말했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가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날 외교부는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중이던 HMM 나무호 관련 정부 합동 조사단이 현장 조사를 지난 8일 실시했다"며 "조사 결과 지난 4일 미상의 비행체가 나무호의 선미를 타격한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말했다. 뉴스1
관건은 정밀 분석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다. 지난 10일 정부는 합동조사단의 1차 현장조사를 토대로 지난 4일 발생한 나무호 화재의 원인을 “미상 비행체 2발의 연속 타격에 의한 것”으로 규정했지만, 공격 수단이나 주체는 아직 특정하지 못했다. 청와대는 사고 직후인 지난 5일 “원인 분석에는 수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사고 원인을 파악해 국민께 투명하게 보고드릴 것”(강유정 수석대변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엿새 뒤인 지난 11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공격 주체 특정에 얼마나 걸릴지는)모른다”고 말했다. 또 “필요한 잔해를 수거했고, 좀 더 전문적으로 보려면 잔해를 분해하고 물리·화학적 검사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엔진에 잔류한 연료의 종류, 폭약의 양과 종류 등을 정밀히 파악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는 상당한 시일이 추가로 걸릴 수 있단 뜻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여권 고위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현재로선 조사에 수주 넘게 소요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정부의 정확한 원인 규명에 시간이 걸릴수록 국내외적 위험 요소도 커질 수 있단 점이다. 초유의 전쟁 중 피격 사건을 두고 여론은 벌써 분열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청와대가 사고 직후 나무호 피격을 선박 화재라고 규정했던 점을 들어 “나무호를 미제 사건으로 만드나”(김건 의원)라며 은폐·의혹을 부각했다.
휴전에 집중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선박 호위 작전인 ‘프리덤 프로젝트’의 재개를 언급하며 기류 변화를 시사한 점도 정부에 외교적 부담이 될 수 있다. 트럼프가 또다시 이란을 공격 주체로 규정하며 한국에 호르무즈해협 정상화를 위한 군사적 지원을 압박할 수 있다. 앞서 지난 4일 프리덤 프로젝트에 착수한 미국은 한국 정부의 참여를 압박하다가, 이란과의 종전 협상 진전을 이유로 하루 만에 보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연합뉴스
정밀 분석의 ‘난도’를 둘러싼 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은 엇갈린다. 우선 파편이 샤헤드 드론의 피스톤식 엔진인지, 지대함·함대함 등 대함 순항미사일이 쓰는 제트엔진인지 들여다보면 된다는 의견이 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엔진의 종류는 쉽게 식별이 가능하다”며 “만약 피스톤이라면 무기 특정 시간은 확 단축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란의 중형 자폭 드론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게 대체적인 전문가 의견이다.
반면 공격 주체 특정은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상근 카이스트 국가미래전략기술정책연구소 교수는 “잔해만으로 이란이 보유해 쏘아 올린 드론인 걸 특정하기란 상당히 까다롭다”며 “비행체 엔진 안에 기름이 있을 텐데 화학 조사를 통해 이게 어느 나라 산인지를 밝혀내는 것도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문제는 이란산 오일일지라도 이를 수입하는 국가들은 여럿이라 그게 반드시 이란 발 무기로 특정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엔진 파편만 볼 것이 아니라, 발진 기지를 추적할 수 있는 다각적인 정보가 결합돼야 주체 규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은 위성 정보나 비행체의 항적, 신호 정보 등을 확보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잔해가 이란제로 확정돼도 한국을 고의로 노렸는지 밝혀내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의도 규명이 쉽지 않은 ‘회색지대 도발’을 주로 해온 이란은 전쟁 중에도 줄곧 책임을 회피해왔다. 공식적인 책임 인정이나 사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