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안보 논의' 푸틴이 던진 한마디에 유럽 정가 들썩
메르켈·드라기 등 자천타천 중재자 거론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유럽 측과 안보체제 문제를 논의할 생각이 있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발언에 유럽 정가가 들썩이고 있다. 그동안 배제된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드디어 낄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여러 인사가 자천타천 중재자로 언급되고 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11일(현지시간) 유럽을 향한 푸틴 대통령의 제안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좌절감의 신호일 수 있다고 해석하면서 유럽 측 협상 대표 후보를 제시했다.
슈피겔은 푸틴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양쪽과 개인적 접촉이 있고 유럽 전체에서 신뢰받는 인물이 좋겠다면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현 독일 대통령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메르켈은 2005∼2021년 총리를 지내면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둘러싼 정부군과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의 무력 분쟁을 중재하는 데 여러 차례 관여했다. 그는 2015년 체결한 민스크 협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자 2019년 12월 당시 임기 첫해였던 젤렌스키 대통령, 푸틴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4자 회담을 열기도 했다.
슈타인마이어는 메르켈 내각에서 두 차례 외무장관을 지내고 2017년부터 10년째 대통령으로 있다. 슈피겔은 푸틴 대통령이 지난 9일 협상 의사를 밝힌 뒤 주말 동안 독일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그가 중재자로 거론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까지 러시아산 에너지를 대량 수입하며 밀월 관계를 맺었던 독일 측 인사가 유럽 대표로 협상에 나서는 게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유럽 외교가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대화할 의사가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제안을 한목소리로 거부했다. 그가 퇴임 이후 러시아 에너지업체에서 일하며 푸틴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도 유지했다는 이유에서다. 메르켈 전 총리 역시 에너지 수입으로 푸틴에게 전쟁자금을 대줬다는 결과론적 비판을 받고 있다.
볼프강 이싱거 뮌헨안보회의 의장은 "독일 출신은 유럽 전역, 특히 동유럽과 발트해 연안국의 폭넓은 동의를 얻을 때만 중재자로 나설 수 있다"며 "이 문제에서 독일이 독단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시절 유럽 재정위기를 해결했다고 해서 '슈퍼 마리오'로 불리는 마리오 드라기 전 이탈리아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골프 친구인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도 거론된다. 스투브 대통령은 최근 전쟁 종식을 위해 유럽이 푸틴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슈피겔은 다만 유럽이 독자적으로 우크라이나 종전협상에 나설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무산시킬 위험이 몹시 크다며 트럼프를 배제한 채 일을 추진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앞서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11일 "나는 러시아가 파놓은 함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이 유럽 대표로 나설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에스토니아 총리 출신으로 대표적 대러시아 강경파인 그가 스스로 추천하고 나서자 러시아 측은 "헛된 노력"이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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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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