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003년 카드대란 때 금융사들이 공동 출자해 만든 민간 배드뱅크(부실채권 처리회사)인 ‘상록수’의 장기연체채권 추심을 두고 “약탈적 금융”이라고 직격하자 금융사들이 일제히 채권 정리에 나섰다.
12일 신한카드는 상록수가 보유한 장기연체채권 중 자사 지분(30%)에 해당하는 채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새도약기금에 매각하기로 했다. 새도약기금은 캠코와 금융위원회가 운영하는 장기연체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이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20년이 넘도록 경제적 어려움 속에 놓인 차주들 상황을 더 일찍 헤아리지 못해 송구하다”고 밝혔다.
이날 장기연체채권 지분을 각각 10%씩 보유한 하나은행과 우리카드도 보유 채권을 새도약기금에 전량 매각하기로 했다. KB국민은행(5.3%)도 매각에 나섰고, 별도 채권 잔액이 없는 KB국민카드 역시 지분 보유사 자격으로 매각에 동의했다.
상록수는 23년 전 카드대란 당시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국내 은행·카드사들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이다. 이날 입장을 낸 제도권 금융사뿐 아니라 대부업체 등이 지분을 보유한 주주로 있다. 상록수 정관에 따르면, 전체 주주가 만장일치로 결의해야 채권을 넘길 수 있다. 장기연체채권이 새도약기금에 넘어가면 차주에 대한 추심이 즉시 중단되고, 채무 조정이나 분할 상환이 추진된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상환 능력이 없는 차주는 1년 이내 채권이 자동으로 소각된다.
금융권이 발 빠르게 나선 건 이날 이재명 대통령이 X(옛 트위터)에 “아직도 이런 원시적 약탈 금융이 버젓이 살아남아 서민의 목줄을 죄고 있는 줄 몰랐다”고 비판하면서다.
금융사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포용금융을 촉구하는 정책 강화로 부담도 커지면서다.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는 2030년까지 5년 동안 포용금융으로 총 70조4000억원을 공급하기로 했다. 1분기에만 이중 5조6993억원을 투입해 연간 목표치의 42.9%를 넘겼다. 취약 차주에 연 10.5% 이내 금리로 최대 3500만원을 빌려주는 무보증 신용대출 상품인 새희망홀씨의 경우 987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3% 증가했다. 중·저신용자를 위한 사잇돌대출도 171억7000만원이 투입돼 전년 동기 대비 11배 넘게 확대됐다.
이는 연체율 등 건전성 관리 부담으로 이어진다. 금융지주들은 올해 1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지만 부실채권 규모 역시 처음으로 13조원대를 돌파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그룹의 3월 말 기준 고정이하여신(NPL·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 규모는 13조620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조51억원(7.97%) 늘었다.
당국은 금융사 평가 지표에 포용금융 이행 정도를 도입하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 중·저신용자 대출로 발생하는 손실 부담이 성실 차주에게 대출 금리 및 수수료 인상 등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관치금융으로 흐르지 않도록 금융의 포용성만큼 지속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