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아태) 지역 사모대출, 즉 비은행 기업 대출 시장이 글로벌 자본의 새로운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중산층 확대와 선진국을 웃도는 성장률, 불확실한 시장 환경 속에서 안정적 수익을 추구하는 자금 흐름이 맞물리며,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모색하는 투자자들의 시선이 뉴욕과 런던을 넘어 아태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아태 지역 사모대출 시장은 지난 15년간 약 네 배 성장했으며, 2024년 590억 달러에서 2027년 91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IMF는 이 지역이 향후 수십 년간 글로벌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GDP에서 아태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40%를 넘어섰지만, 글로벌 사모대출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한참 못 미친다. 이 간극 자체가 기회다.
김지윤 기자
성장의 이면에는 구조적 동인이 있다. 첫째, 은행 대출 중심 구조에서 발생하는 신용 공백이다. 기업 대출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은행들이 규제 자본 요건 강화와 보수적 심사 기준으로 대출 여력을 점차 줄이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바젤 III·IV(국제 자기자본 규제)가 자본 부담을 가중시킨 결과, 자본 소모가 큰 중견기업 대출과 특수금융 영역에서 은행의 참여가 위축되고 있다. 아태 지역은 특히 은행 의존도가 높은 금융 구조를 가진 만큼, 이 공백을 사모대출이 메울 여지가 서구보다 크다.
둘째, 인프라와 디지털화에 대한 투자 수요 확대다. 중산층 확대와 소비 성장에 힘입어 인프라, 통신, 교육, 헬스케어, 차세대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본 수요가 늘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전환과 그린 인프라 투자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구조적 복잡성과 자본 효율성 측면에서 전통 금융기관이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유연한 구조 설계와 맞춤형 금융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모대출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셋째, 공모시장과 시장 유동성의 구조적 한계다. 아시아는 서구 대비 채권시장 비중이 작고 공모시장 유동성도 제한적이다. 이러한 환경은 사적 금융의 입지를 넓히는 동시에, 투자자에게 보다 유리한 조건과 가격을 확보할 여지를 준다. 비상장기업 비중이 높은 시장 특성상 사모대출이 효과적인 투자 경로로 자리 잡을 여건도 충분하다.
물론 통화 리스크와 법적 불확실성, 유동성 제약은 여전히 넘어야 할 과제다. 그러나 구조적 기회의 무게가 이를 압도하고 있다. 낮은 시장 침투율, 은행 유동성 축소, 맞춤형 금융 수요 확대가 형성하는 기회는 아직 초기 단계다. 사모대출의 다음 장은 아태 지역에서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