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 인근 변호사 사무실에 전문 분야로 학교폭력이 기재된 모습. 오삼권 기자
12일 오후 변호사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 들어서니 외벽이나 세움 간판에 ‘학교폭력 전문’이란 안내 문구를 붙인 로펌이 길목마다 1~2개씩 눈에 띄었다. 전직 교사 출신인 전수민 변호사는 “학교폭력 해결 현장이 학교가 아니라 서초동으로 바뀌고 있다”며 “법무법인별로 주요 분야에 학교폭력을 넣을 정도로 하나의 전문 시장으로 자리 잡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교폭력이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면서 법조계는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12일 중앙일보가 확인한 대한변호사협회 전문변호사 통계에 따르면, 2019년 7월 첫 도입 당시 4명이었던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는 지난 3월 기준 68명으로 17배로 늘었다. 주요 로펌에선 전직 교사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위원 출신 변호사를 영입했다고 홍보하며 “사건 초기부터 제대로 대응해야 문제가 없다”고 하는 등 활발하게 영업을 벌이고 있다.
법조계에 학교폭력 시장이 형성되면서 일부 변호사들이 사건을 맡기 위해 의뢰인에게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경미한 사건에서도 “잘못돼 처분 기록이 남으면 평생 꼬리표가 붙는다”는 식으로 변호사 선임을 부추긴 뒤 고액의 비용을 요구하는 형태다.
중앙일보가 학교폭력 상담을 받기 위해 찾은 서초동의 한 로펌에서 행정 직원은 “예체능 계열 등 바닥이 좁은 곳에선 학교폭력으로 처분받은 걸 금방 모두가 알게 돼 평생 발목이 잡힌다”며 “요즘은 피해자들도 변호사를 선임해서 신고하는데, 법적으로 전문적인 대응이 중요하다. 비용은 1000만원 정도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수임료를 더 받기 위해 변호사가 오히려 사건을 키우도록 학부모를 부추기기도 한다. 가해 학생이 “나도 학교폭력을 당했다”며 ‘맞학폭’ 신고를 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피해자의 언행 가운데 사소한 것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게 있다면 맞학폭 신고를 통해 법적 분쟁을 길게 끌고 가면서 변호사는 더 많은 보수를 챙긴다. 실제로 서초동의 또 다른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행정 직원은 “최근엔 학교폭력 신고 들어오면 가해자도 백이면 백 맞학폭 신고를 거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라며 “가해자든 피해자든 변호사를 선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다 동원해야 학교폭력으로 처벌받는 걸 피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해당할 정도로 무분별하게 이어지는 무고성 맞학폭 신고는 되려 더 중한 처분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기도교육청 감사관실에서 근무했던 한아름 변호사는 “일부 변호사들이 ‘무조건 같이 신고하라’며 부추기면서 맞학폭 신고가 마치 매뉴얼처럼 퍼졌다”며 “무고성 맞학폭 신고는 학폭위 등에서 가해자가 반성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줘 더 중한 처분을 받게 될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했다. 다른 변호사는 “최근의 학교폭력 대응 방식은 마치 사교육 시장처럼 학부모의 불안감을 조성하면서 모든 당사자가 계속해서 법적 대응을 하게 만드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학부모들이 이같이 큰돈을 내고 변호사를 찾아가고 있지만, 법률 서비스의 질은 이전보다 떨어지고 있단 지적도 나온다. 대형 ‘네트워크 로펌’(전국 분사무소를 둔 개인사건 전문 로펌)에서 학교폭력 사건을 대량으로 수임한 뒤 상담, 서면 작성, 재판 출석 등 각 업무를 공장처럼 나눠 수행하다 보니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단 평가다. 2019년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 첫 도입 당시부터 활동해온 이지헌 변호사는 “업무별로 변호사가 다르다 보니 비싼 돈 내고 선임한 담당 변호사가 사건 맥락을 전혀 모르는 경우도 많고, 담당자가 수차례씩 교체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학교폭력 대응 방법을 안내하는 사설 컨설팅 업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홍보하는 모습. 사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캡처
변호사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학부모들은 사설 학교폭력 컨설팅 업체를 찾는다. 이들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비대면으로 학교폭력 대응 컨설팅을 진행한다. 행정사 자격증을 갖췄다는 컨설턴트 A씨는 온라인 상담에서 “학교폭력 대응 첫 단계는 보호자 의견서인데, 사실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학폭위 심사 요소에 맞춰 작성하는 게 중요하다”며 “상대방을 쌍방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해 우리가 대응하고 있다는 걸 알리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의견서 작성 비용은 100만원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일부 컨설팅 업체에선 지역별 학폭위원의 성향을 분석해 맞춤형 대응방법을 제시한다고 홍보한다. 컨설턴트 B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 상담에서 “지역에 따라 학폭위 심사 기준이나 위원 성향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맞춤형 대응이 중요하다”며 “15년간 학부모 위원 등 학폭위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교육지원청별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상담사 등 5개 이상 국가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라며 “통화 상담 비용은 1회 10분당 10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관계자들이 2021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학교폭력 대책을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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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에서 문제 해결 방법 찾아야”
전문가들은 교육 현장이 아니라 사법 절차를 통해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학교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수경 변호사는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에게 접근도, 사과도 못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는 순간 평생 갈지도 모르는 중한 처분이 내려지기 때문에 자기방어 차원에서 학교의 선생님이 아니라 외부의 변호사를 찾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선영 한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뉴질랜드·캐나다 등에선 가해 학생의 반성을 토대로 피·가해 학생이 화해하는 회복적 사법체계가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며 “교육현장에서 교사의 지도·감독권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지 못하다면 민간 전문가나 지역사회, 수사기관 등이 힘을 합쳐 대안적인 문제 해결 체계를 도입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