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환원, 박수칠 일 같지만 이유를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투자 뒤에 남은 돈을 돌려주는 것인지, 투자 대신 시장을 달래는 것인지… 같은 숫자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기업에겐 자사주 매입과 특별 배당으로 시장을 달래는 일이 투자보다 훨씬 손쉬울 것이다.”
미국의 기업지배구조 전문가이자 델라웨어주 대법원장을 지낸 레오 스트라인(62)의 말이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월가식 자본시장 문화에 대한 비판이었다. 본격적인 주주환원 시대에 접어든 한국에도 통하는 말이다. 주주환원이 때로는 성과의 분배가 아니라, 주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이벤트로 반복되고 있어서다.
최근 대규모 유상증자안으로 논란을 빚은 한화솔루션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26일 채무 상환과 설비투자를 위해 2조4000억원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주가는 급락했고 소액주주 반발도 거셌다. 한화솔루션은 4월 17일 증자를 1조8000억원으로 줄이고, 5년간 당기순이익의 10%를 주주에게 환원하겠다는 수정안을 냈다. 돈이 모자라 주주에게 청구서를 내밀면서, 동시에 사은품을 약속하는 모순적인 모양새였다. 이 역시 금융감독원의 2차 정정요구에 유상증자 일정을 잠정 연기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실적 둔화에도 주주환원을 발표한 곳도 있다. 올해 빙그레는 주당 3300원의 현금배당과 함께 자사주 28만6672주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롯데웰푸드도 자사주 10만 주를 소각한다고 했다. 두 곳 모두 지난해 영업이익이 30%가량 줄었다. 그런데도 주주환원을 하겠다는 건 주가 방어와 기관투자자 유치를 위한 신호 아니겠나. “자사주 매입은 순간적인 각성 효과”라는 투자 분석회사 PAA리서치의 브래들리 사팔로 대표의 지적은 이런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주주환원 자체가 문제 될 건 없다. 투자자의 돈으로 성장한 상장사는 그 성과를 주가와 배당으로 되돌려주는 게 당연하다. 다만 모든 주주가 같은 이해를 갖는 것은 아니다. 장기 보유 주주는 기업의 투자와 성장에 더 큰 관심을 두지만, 단기 주주는 가격 변동과 환원에 민감하다. 같은 배당을 받더라도 기업에 요구하는 방향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환원은 기업가치를 높이는 자본 배분인지, 당장의 주가를 떠받치려는 이벤트인지로 나뉜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핵심은 얼마나 돌려주느냐보다 어떤 투자를 포기하면서 돌려주느냐”고 말했다.
기준지표는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자기자본이익률(ROE)이다. ROE가 주주의 기대수익률보다 높다면 자본을 내부 유보해 재투자하는 게 합리적이다. 현금은 배당보다 투자에 쓰일 때 더 큰 기업가치를 만들 수 있어서다. 반대로 ROE가 자기자본비용에 못 미친다면, 기업이 현금을 쥐고 있을 이유가 없다. 주주는 배당 등으로 돈을 돌려받아 더 높은 수익을 내는 곳으로 옮기는 게 유리하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과거(2006) 연구에 따르면 젊은 기업(성장 기업)에선 돈이 생기면 투자가 먼저다. 반면 성숙기에 들어선 곳에선 성장 기회가 줄어들수록 남는 현금을 배당으로 돌려주기 시작한다.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주주환원 문화가 뿌리내린 것도 그 결과였다. 철도·전력·에너지 등 인프라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며 안정적 현금흐름을 배당으로 돌렸다.
한국은 출발선이 달랐다. 해외자본과 정부의 압박이 크게 작용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로 압축되듯이 낮은 배당성향, 불투명한 지배구조, 낮은 자본 효율성이 주가 저평가 원인으로 자주 거론됐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2012~23년 한국의 평균 주주환원율(배당금, 자사주 소각 포함)은 29%로 미국(100%)·유럽(88%)에 한참 못 미쳤다. 일본(49%)과 중국(33%)보다도 낮다.
정근영 디자이너
결국 2024년 초 정부가 나섰다. 상장사는 매년 기업가치 개선계획을 세우고,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수익비율(PER) 등 주요지표를 비교 공시하도록 했다. 개선 성과가 뛰어난 곳을 모아 코리아 밸류업 지수도 만들었다. 기업과 시장에게 거스를 수 없는 신호가 전해진 것이다. 이후 2년간 코스피 상장사의 42.5%인 344곳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했다.
그러는 동안, 미국은 거꾸로 과도한 주주환원을 걱정하는 단계에 와 있다. 물론 주주환원 규모 자체는 증가세다. 2024년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편입 기업들의 전체 주주환원액은 1조572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럼 이게 정답일까. 미국에선 10여 년 전부터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 윌리엄 라조닉(81) 교수는 2014년 “미국 기업들이 순이익의 91%를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쏟아부어 장기 혁신을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과도한 자사주 매입은 “투자를 가로막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독”이라고도 했다.
자사주 매입에 치중하다 재투자 기회를 놓친 사례들이 그 배경이다. IBM이 클라우드 시장에서 밀린 것이나, 보잉이 잇따른 기체 결함을 일으킨 것을 주주환원에 밀린 투자 탓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혁신기업마저 금융사처럼 움직인다. 애플은 2024년 미국 증시 사상 최대인 1100억 달러의 자사주 매입을 승인했다. 지난해와 올해에도 각각 1000억 달러의 자사주 매입을 이어갔다. 현금이 풍부했음에도 저금리 회사채로 재원을 마련했다. 금융사 뺨치는 자본정책으로 주목받은 사례다.
그 외에도 미국 증시에선 막대한 환원으로 자기자본이 마이너스가 된 우량기업도 적지 않다. 기관투자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일부 기업은 투자보다 주가 부양에 무게를 싣는다. 경영진 보상체계 역시 주가와 연동되는 흐름이 강해졌다.
가치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은 “자사주 매입은 주가가 내재가치보다 낮을 때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24년 5월부터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가 장부가 대비 60~80% 고평가 구간에 진입하자 자사주 매입을 중단했다.
우리의 경우 정책적으로 밸류업을 서두르다 보니 서로 다른 방향의 힘이 동시에 작용한다. 정부는 반도체·배터리·AI 산업에 수십조원의 투자를 주문하면서, 동시에 배당 확대를 유도한다. 미래에 쓰라는 돈과 지금 돌려주라는 돈은 같은 주머니에서 나오는데, 그걸 꺼내려는 손은 두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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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세제는 모순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최근 도입된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과거보다 세 부담을 낮췄지만, 최고세율(30%)이 대주주의 양도소득세 최고세율(25%)보다 여전히 높다. 이중과세라는 기본적인 문제점에 더해, 이 세율 격차는 대주주가 배당 확대에 반대하게 만드는 유인이다.
분리과세 혜택을 받는 기업의 요건도 까다롭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배당성향 40% 이상’으로 정해진 수혜조건을 충족하는 곳은 2024년 전체 배당사의 32.3%에 불과했다. 대다수 기업은 수혜권 밖이다. 또 배당금의 액수를 수혜기준 지표로 삼기 때문에 자사주 소각을 통해 배당 대상을 줄인 기업은 외려 불이익을 받는다. 밸류업을 위해 주주에게 돌려주라는 신호는 분명하지만, 제도는 끝까지 열려 있지 않다.
사회적 제도의 경직성 역시 밸류업의 방향성을 가로막는다. 노동시장이 대표적이다. 해고를 어렵게 하고, 노조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정책은 조직화된 근로자 집단을 기업의 강력한 이해관계자로 끌어올린다. 주주환원을 채근하는 신호와 비용 구조를 경직시키는 힘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책과 규제 리스크가 클 경우 현금을 쌓아두는 게 기업에겐 합리적 선택이다. 그럼에도 환원을 늘리라는 요구가 겹치면, 기업은 안전판을 줄인 채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
금융권에선 관치가 밸류업과 부딪친다. 금융사가 오로지 주주환원을 강화하자면 위험자산을 줄여야 한다. 자본건전성 지표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표는 위험자산이 늘어날수록 악화된다. 그렇다면 정부가 요구하는 저신용자 대출을 하지 말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나 금융사들은 당국의 서슬에 눌려 따르고 있다. 한쪽에선 밸류업을 하라 하고, 다른 한쪽에선 위험자산도 떠안으라 한다. 선의로 포장한 관치는 모순을 만든다. 이사회 결정에 따른다지만, 실제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건 금융당국이다. 한국식 금융 지배구조의 실상이다.
기업의 밸류업을 위한 논리는 단순명료하다. 이익을 어디에 투입할 때 기업가치를 가장 높일 수 있는지 냉정하게 따지면 된다. 그 외에 끼어드는 건 압력이다. 압력이 커지는 순간, 기업은 그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논리는 뒷전이다. 자본시장의 기본 작동원리가 흔들리는 임계점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