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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버터] 올해의 기부자 50인 찾는다 … ‘2026 더기버스50’ 1차 명단 공개

중앙일보

2026.05.13 13:30 2026.05.13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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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더기버스50’ 1차 명단 공개.

‘2026 더기버스50’ 1차 명단 공개.

2026년도 ‘한국의 기부자들: The Givers 50’(이하 더기버스50) 1차 명단이 오늘(14일) 공개됐다.

‘더기버스50’은 더버터가 주최하는 민간 주도 기부문화 확산 캠페인 ‘파이위크(Pie Week)’와 함께 진행되는 연중 캠페인이다. 파이위크에 참여하는 비영리단체들의 추천으로 우리 주변에서 의미 있는 기부를 실천해 온 기부자들을 매년 50명 발굴해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올해 ‘더기버스50’ 1차 명단에는 김칠성·박대헌·박인성·박재성·서영자·이동준(이적)·이선후·이요셉·이진민·정흥남 등 10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장애·인권·노동·주거·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나눔을 이어온 기부자들이다.

더기버스50은 비영리단체들이 후보자를 추천하면 더버터가 기준에 부합하는 기부자를 가려 최종 명단을 선정한다. 이번에 공개된 10명 외에 남은 40인은 파이위크 캠페인 홈페이지와 중앙일보 공익섹션 더버터 지면을 통해 순차적으로 소개될 예정이다.

선정 과정에서는 ▶지속성▶태도 ▶스토리 ▶영향력 ▶다양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단발성 기부보다 꾸준한 기부를 중요하게 보고, 기부에 대한 태도와 철학, 기부자가 가진 고유의 이야기, 주변에 미친 영향력 등을 함께 살핀다. 연령·성별·직업·기부 분야의 다양성도 고려한다.

올해 진행되는 ‘2026 파이위크’에는 총 23개 비영리단체가 참여한다.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구세군, 국경없는의사회, 국제구조위원회, 국제앰네스티, 굿네이버스, 굿피플, 기아대책, 대한사회복지회,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사랑의달팽이, 세이브더칠드런, 아름다운재단, 열매나눔재단, 월드비전, 초록우산, 컨선월드와이드, 플랜인터내셔널코리아, 한국해비타트, 함께하는사랑밭, 환경재단, 홀트아동복지회, IJM코리아(이상 단체명 가나다순) 등이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파이위크 캠페인에 동참한다.



깨끗한 물이 가장 많은 생명을 살립니다


김칠성 기부자

김칠성 기부자

응급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김칠성 기부자는 생명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을 매일 마주한다. 순천 성가롤로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하는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식수위생지원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2016년부터 굿네이버스를 통해 아프리카 식수위생지원사업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탄자니아, 말라위, 잠비아 등지에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는 우물과 위생시설 조성을 지원했고 현재까지 6700만원을 기부했다.

김씨는 ‘아프리카에 우물 100개를 선물하겠다’는 목표로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식수위생지원시설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7 Star Water’ 현판도 설치했다. 그는 기부를 결정할 때 사업 구조와 예산, 실제 변화 가능성을 꼼꼼히 살핀다고 했다. 의료 현장에서 생명과 안전을 다뤄온 경험이 기부의 기준에도 그대로 이어진 셈이다.



받은 도움을 다시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박대헌 기부자

박대헌 기부자

박대헌 기부자는 어린 시절 월드비전의 도움을 받은 아동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다섯 살부터 여덟 살까지 월드비전이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생활했다. 당시 해외 후원자와 연결돼 도움을 받았던 그는 1995년부터 30년 넘게 국내 아동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기에도 후원을 멈추지 않았다. 한때는 아동 5명까지 후원했고, 정년퇴직 이후 경제적 부담으로 후원 규모를 줄여야 했을 때도 최소한의 후원은 계속 유지했다. 재취업 뒤에는 다시 후원 아동을 늘려 현재 국내 아동 2명을 정기 후원하고 있다. 그는 “더 많이 돕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어릴 때 받았던 도움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며 “누군가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결국 나눔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부를 통해 서로의 인권을 지킵니다

박인성 기부자

박인성 기부자


1995년 스물다섯 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박인성 기부자는 돈을 벌게 되면 누군가를 돕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도와야 할지 막연히 고민하던 어느 날, 퇴근길에 ‘국제 인권 포스터전’ 광고를 발견했다. 해운대 리베라백화점에서 열린 전시를 찾아간 그는 그곳에서 처음 국제앰네스티를 알게 됐다. 이후 부산 모임에 참여해 얼떨결에 지역 소모임 대표까지 맡았다. 부산역과 대학가에서 탄원 캠페인을 벌이고, 학생 1000명에게 서명을 받으며 인권 활동을 이어갔다.

지금은 예전만큼 활발하게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기부는 32년째 멈추지 않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인권을 지키는 일이 결국 내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만으로는 모두의 인권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나의 인권을 위해 노력해주고 있잖아요. 기부는 결국 서로를 돕는 일이에요.”



강제노동 피해자의 자유를 꿈꾸는 사업가


박재성 기부자

박재성 기부자

대구에서 철강 제조 기업을 운영하는 박재성 기부자는 어느 날 우연히 사무실 한쪽에 놓여있던 책을 집어 들었다. IJM 설립자 게리 하우겐이 쓴 ‘약탈자들’이었다. 세상에 아직도 강제노동과 인신매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됐다. 어린 시절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환경 차이를 보면서 막연히 느꼈던 ‘빈곤’의 문제도 다시 떠올랐다. IJM코리아를 검색해 기부를 정기 후원을 시작했다. 1년 후에는 기부액을 크게 늘렸다. 뉴스에서 전쟁, 빈곤, 자살 등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일시후원도 보탰다.

할아버지, 아버지를 따라 가업을 이어온 박 기부자는 노동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안다. 사업이 어려울 때도 기부는 줄이지 않고 있다. “저도 힘들지만,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잖아요. 사업을 나 혼자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요. 제 기부가 누군가 다시 자유를 찾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엄마’라 불리는 봉사자, 44년째 이웃 돌보다

서영자 기부자

서영자 기부자


서영자 기부자는 1982년, 정기후원 5000원으로 홀트아동복지회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나눔은 44년째 이어지고 있다. 전국·서울후원회장과 고문으로 활동하며 후원회원들의 활동을 독려했고, 누적 기부금은 1억9000만원을 훌쩍 넘었다.

한 달에 한 번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을 찾아 중증장애인들의 작업을 돕는다. 수십 년을 오가며 만난 이들은 이제 그를 “엄마”라고 부른다. 이 밖에도 서 기부자는 한부모가족, 저소득가정, 자립준비청년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의 사연을 들으면 후원 회원들과 발 벗고 나섰다. 그는 기부와 봉사는 누군가를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성장시킨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기부나 봉사를 더 많이 하지 못해 아쉬울 정도예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지금처럼 계속 활동하고 싶습니다.”



달팽이기금, 청소년들의 보금자리를 만들다

이동준(이적) 기부자

이동준(이적) 기부자


가수 이적 기부자는 2012년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달팽이기금’을 조성한 뒤 10년 넘게 주거 취약 상황에 놓인 아동·청소년과 청년들을 지원해왔다. ‘달팽이’라는 이름은 이 기부자가 활동하던 그룹 패닉의 대표곡에서 따왔다. 달팽이처럼 느리더라도,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길을 꾸준히 가겠다는 의미다.

달팽이기금은 곧 시민과 팬들이 함께 참여하는 커뮤니티 기금으로 확장됐다. 그동안 400명 넘는 팬이 뜻을 보탰다. 누적 기부금은 7억7000만원에 이른다. 지원 대상도 제도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로 꾸준히 넓혀왔다. 보호자 없이 홀로 생계를 꾸리는 아동·청소년 주거 지원에서 출발해 최근에는 청소년 부모까지 돕고 있다. 이 기부자는 “주거는 삶의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자립의 출발점”이라며 “시대적 변화에 맞춰 실질적인 방식으로 나눔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유산기부를 결심한 30대 간호사

이선후 기부자

이선후 기부자


간호학과에 진학한 이선후 기부자는 줄곧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떤 직업의식을 가진 사람이 돼야 할까’. 그러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을 알게 됐다. 스물세 살, 첫 아르바이트와 함께 기부도 시작했다. “그동안은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아왔어요. 그것만으로 ‘내가 잘살고 있다’는 답을 얻을 수는 없었어요. 제 나름의 답을 찾다가 제가 가진 돈이 좀 더 의미있게 사용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간호사로 취업한 뒤 일에 적응해 조금의 여유가 생겼을 때, 그는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할까’는 질문을 떠올렸다. 이번에도 답은 기부였다. 보험과 유언대용신탁을 통한 유산기부를 추가로 결정했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힘들다고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대한민국은 참 부유한 나라잖아요. 다른 나라에는 더 힘들게 사는 청년이 많아요. 그런 친구들을 도와 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진 한 장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이요셉 기부자

이요셉 기부자

사진작가인 이요셉 기부자는 2007년부터 굿네이버스와 함께 아프리카와 아시아 여러 국가를 방문하며 사진 재능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케냐, 에티오피아, 차드, 탄자니아, 인도, 네팔 등 세계 곳곳에서 빈곤과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왔다.

특히 2009년 차드를 방문한 경험은 그의 삶을 크게 바꿨다. 깨끗한 물이 없어 수인성 질병에 고통받는 아이들의 모습을 직접 본 뒤 식수위생지원사업 후원을 시작했다. 이후 책 인세와 사진전·그림전 수익금을 꾸준히 기부했고, 지금까지 보낸 기부금은 1억1000만원 규모다. 기부금으로 차드와 니제르, 르완다 등지에는 식수시설이 설치됐고, 수천 명의 주민이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사진은 결국 사람의 삶을 바라보게 만드는 일”이라며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보고 공감하는 순간 세상은 조금씩 바뀐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착한 돈은 결국 사람에게 갑니다


이진민 기부자

이진민 기부자

개인 수입의 ‘50% 기부’를 원칙처럼 지키는 이진민 기부자는 “기부를 하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한다. 월급과 임대수익 등이 생길 때마다 기부처를 찾아 즉시 이체한다. 그의 기부 인생은 2001년부터 시작됐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손길을 내밀었다. 2010년부터는 기아대책과 인연을 맺고 꾸준히 기부했다. 2018년에는 1억원 이상 기부한 고액후원자 모임인 ‘필란트로피클럽’ 86호로 위촉되기도 했다.

그의 기부 철학은 베트남 현지 방문 이후 더 분명해졌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가는 아이들과 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온 뒤 단순한 일회성 후원에 머물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진민 기부자는 “누군가는 태어난 환경만으로 너무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걸 직접 보게 됐다”며 “내가 가진 것이 결국 누군가에게 다시 연결돼야 한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갖게 됐다”고 말했다.



가난했던 시간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정흥남 기부자

정흥남 기부자

정흥남 기부자는 1995년부터 30년 넘게 월드비전을 통해 국내 아동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처음 기부한 건 사회 초년생 시절이다. 출판사에서 월급 30만원을 받던 때였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그는 “나보다 더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부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한부모 가족 지원 시설의 아이와 인연을 맺었다. 기부금만 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책을 선물하고 가족들과도 교류를 이어갔다. 세월이 흐른 뒤, 후원하던 아동이 성장해 국립의료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후 국립의료원에 입원하게 된 적이 있지만, 부담이 될까 봐 끝내 후원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잘 성장한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깊은 보람을 느꼈다.

정 기부자는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삶의 기쁨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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