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카네이션보다 좋은 선물은 결석” 스승의날도 괴로운 교사…55% “이직·사직 고민”

중앙일보

2026.05.13 23:48 2026.05.14 00:4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SNS에서 판매 중인 스승의날 티셔츠 스티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SNS에서 판매 중인 스승의날 티셔츠 스티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교사로 일하며 1년 중 가장 힘든 날은 스승의날.”
“스승의날 최고의 선물은 학생이 결석하는 것.”
15일 스승의날을 앞두고 교사들 사이에서 도는 자조 섞인 농담들이다. 감사받아야 할 날이지만, 현장 교사들에게 스승의날은 선물 거절 공지부터, 학부모 민원, 사진 요청, 청탁금지법 위반 논란까지 신경 써야 하는 고된 날이 됐다.



“선물 받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힘들어”

서울의 한 초등학교의 담임교사 김모씨는 “아이들이 준비해 온 꽃이나 편지를 거절하는 것도, 받는 것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지난해엔 한 학생이 ‘스승의 은혜에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학부모로부터 ‘우리 아이 귀엽지 않았느냐, 왜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지 않느냐’는 취지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감사를 받는 순간조차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며 “차라리 학생이 결석하면 민원도, 사진 요구도, 선물 거절 부담도 없다는 말이 도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스승의날 사진 안 찍기 캠페인 홍보물. 사진 쓰레드 캡쳐

스승의날 사진 안 찍기 캠페인 홍보물. 사진 쓰레드 캡쳐

이런 사진 부담은 어린이집·유치원에서 한층 심하다고 한다. 아이가 특별한 옷을 입거나 꽃을 들고 오면 일부 학부모는 자연스레 사진을 기대하고, 교사는 돌봄 중에도 촬영·업로드에 신경 써야 한다.

일부 어린이집에선 스승의날 하루만이라도 아이 사진을 찍어 학부모에게 보내는 일을 멈추자는 '챌린지'를 할 정도다. 서울의 한 어린이집 교사 이모씨는 “학부모와의 소통 수단이긴 하지만, 보육 중인 교사에선 부담되는 ‘기록 노동’”이라며 “스승의날 하루라도 선생님들을 '사진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게 가장 큰 선물일 것”이라고 했다.

경북교육청이 스승의날을 앞두고 교사 업무 포털에 게시한 ‘헷갈리는 청탁금지법 완벽 정리’ 안내문. 사진 SNS 캡쳐

경북교육청이 스승의날을 앞두고 교사 업무 포털에 게시한 ‘헷갈리는 청탁금지법 완벽 정리’ 안내문. 사진 SNS 캡쳐

교사들의 부정적인 인식은 교육청의 청탁금지법 안내에 관란 논란에서도 드러난다. 경북교육청은 지난 13일 ‘헷갈리는 청탁금지법 완벽 정리’라는 카드뉴스를 올렸다. '스승의날 케이크 파티는 가능하지만, 선생님과 나눠 먹거나 케이크를 드리는 행위는 불가능하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교사들 사이에선 “파티는 선생님과 같이하고, 케이크는 선생님 주지 말라는 게 스승의날 안내할 내용이냐”,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학교를 찾는 발길도 예전 같지 않다. 서울의 경우 교권 침해와 외부인 무단 방문을 막기 위한 ‘학교 방문 사전예약제’가 시행되면서, 졸업생이 학교를 와 인사하는 풍경도 줄었다. 서울의 초등교사 최모씨는 “학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데 공감하지만, 스승의날 학교가 예전만큼 환영의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교사 절반 “자부심 낮아져”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14일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전국 교원 71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55%)이 최근 1년 새 이직이나 사직을 고민한 적 있다고 답했다. 이직·사직을 고민한 이유로는 ‘학부모 등의 악성 민원’(62.8%)이 가장 많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의 설문 결과(8900명 대상)도 비슷하다. 응답자의 절반(49.2%)이 최근 1~2년 사이 '직업적 자부심이 낮아졌다'고 답했고, '자부심이 높아졌다'는 응답은 12.8%에 그쳤다.

김희정 교사노조 대변인은 “공교육의 위기 신호”라며 “교사들이 교직을 떠나려는 주된 이유는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해 줄 시스템이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주호 한국교총 회장은 “폭행과 악성 민원,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두려움 없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실효적인 교권 보호 법제와 행정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스승의날의 의미를 되살리려면 일회성 감사보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고 돌보는 본연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 우선”이라고 했다.



이후연.이보람.이아미([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