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자포자기하여 발광 직전까지도 간 적이 있다. (중략) 내 일생 이토록 치욕스럽고 괴로웠던 적이 없다. 자다가도 숨이 탁 막히며 치밀어 올라 못 견딜 지경이면 일어나 기도함으로써 극복하고 했었다. 이제 그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비로소 얘기한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과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6년 간의 수감 생활을 견딘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이 면회 온 이희호(1922~2019) 여사에게 한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의 이 고백은 이 여사의 손을 통해 메모지로 옮겨졌고,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의 기획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희호 여사. [사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이 내용을 포함해 김 전 대통령의 수감 시절 이 여사가 쓴 친필 기록 20점이 책 『김대중·이희호 옥중기록』(한길사·사진)을 통해 오는 18일 첫 공개된다. 이 여사는 한 달에 한 번 10분이라는 면회 허용 시간 동안 김 전 대통령을 위해 세상의 소식을 전해야 했다. 이를 위해 정치·외교·사법·사회는 물론 경제·산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주요 사안을 압축 메모해 김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국장급 이상 500명 이동/유가 연내 5~6% 인상 예정/폴란드 정부, 노조, 교회대표 난국 타개 삼자회담…”(1981년 11월 16일), “농촌 물가 27% 인상, 추곡 수매 14% 인상, 우울한 농가/유럽 반핵 시위-반미로 번져…” (1981년 12월 19일) 등 이 여사의 메모엔 그 즈음의 뉴스가 빼곡히 담겼다.
출간을 기념해 14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명림 관장은 “김 전 대통령 수감 시기의 기록을 조사할수록 빠지지 않는 이름이 이희호 여사였다. 그래서 김 전 대통령의 옥중 관련 기록을 정리한다면 김대중·이희호 옥중기록이라는 이름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기획 계기를 밝혔다.
이번에 최초로 공개된 옥중 면회 메모와 이 여사의 활동 기록들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이 이미 보유 중이었던 자료로, 지난해 말 기획해 새롭게 선별·판독·검수의 과정을 거쳤다.
2003년 김대중도서관 설립 당시부터 사료 담당 연구원으로 재직해 온 장신기 박사는 “빠르게 흘려 적은 글이다 보니 의미 판독에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글자 판독보다도 당시 보도된 언론 자료를 추적해 해제를 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부분에 많은 공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책에는 새롭게 공개한 이희호 여사의 기록물 외에도 이미 공개된 김 전 대통령의 옥중 메모와 3·1 민주구국선언 재판기록,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재판기록, 구명운동 편지 등도 함께 실렸다.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의 아들인 김홍걸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책 속 기록에 얽힌 기억을 꺼내며 “처음 수감되셨을 때 진주 교도소까지 다니시느라 어머니께서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며 “두 분의 기록이 잊히지 않고 정신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두 분의 유품도 많은 분이 보실 수 있게 전시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