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성민엽의 괴짜열전] 완고한 삼장법사, 불통의 사오정…요즘 현실 판박이

중앙일보

2026.05.14 08:1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성민엽 문학평론가

성민엽 문학평론가

동서고금의 이야기 속에는 참으로 많은 괴이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한자문화권에서 괴이 캐릭터의 등장으로 으뜸가는 이야기를 꼽으라면 소설 『서유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오공을 필두로 저팔계와 사오정, 그리고 삼장법사는 우리나라에서도 너무나 유명하죠.

소설 『서유기』는 보통 명나라 후기인 16세기 중국의 오승은이 지었다고들 하지만, 실은 오승은 개인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관여되었습니다. 오승은 이름으로 출판된 판본은 전해지는 게 없고 오승은 사후인 1592년에 출판된 ‘화양동천 주인’ 교열본이 정본으로 인정되는데 교열자가 이 판본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또 오승은 이전으로 눈길을 돌려 보면, 원나라 때의 연행예술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면서 서유기라는 이름을 붙인 『서유기평화』 『서유기잡극』이 있고 송나라 때에도 ‘대당삼장취경시화’라는 제목의 이야기 대본이 있습니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허구 서사가 아닌 기행문으로 당나라 때 삼장법사 현장이 자신의 인도 여행 견문에 대해 구술한 내용을 그 제자가 정리한 책 『대당서역기』가 있습니다.

『서유기』 목판본 첫 페이지. [사진 성민엽]

『서유기』 목판본 첫 페이지. [사진 성민엽]

깨우치라는 법명과 딴판인 손오공
인도의 원숭이 신과 중국 신앙 결합

허영만 ‘날아라 슈퍼보드’의 사오정
가는귀먹은 설정, 사오정 개그 탄생

아시아 신화·전설 흡수, 명 말 집대성
‘드래곤볼’ 등 2차 창작물 계속 나와

중국 베이징 이화원의 회랑을 장식한 『서유기』의 한 장면. [사진 성민엽]

중국 베이징 이화원의 회랑을 장식한 『서유기』의 한 장면. [사진 성민엽]

그래서 우리는 서유기 이야기를 소설 『서유기』에만 국한하지 않고 개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를 향해 보면 이 이야기에는 중국 고유의 것만이 아니라 인도 및 중앙아시아 지역의 설화나 고대 동아시아 지역의 각종 신화와 전설 같은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시간 방향을 반대로 보면 소설 『서유기』 이후에 나온,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2차 창작물들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 속에서 서유기의 괴짜 인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서유기』 한국어판 표지. [사진 성민엽]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서유기』 한국어판 표지. [사진 성민엽]

삼장법사 모델 된 당태종 때 현장
먼저 삼장법사는 삼장, 즉 경·율·논의 3가지로 분류되는 불교 경전을 통달한 승려에게 붙여주는 호칭이고, 역대 삼장법사 중 가장 유명한 분이 서유기 이야기의 모델이 된 당태종 때의 현장입니다. 소설 『서유기』의 삼장법사는 학식이 많고 법력이 뛰어나지만 우유부단하고 유약하며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어리석어서 현실적으로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제자들의 도움으로 겨우 문제를 해결합니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불경을 구하러 인도까지 가는 그의 여행에 해결사 제자들이 필요한 것이죠.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처님의 선택을 받았고 전생에 부처님의 제자였다는 설정입니다.

자음과모음에서 출간한 고우영의 만화 『서유기』 표지. [사진 성민엽]

자음과모음에서 출간한 고우영의 만화 『서유기』 표지. [사진 성민엽]

흥미로운 것은 2차 창작물에서 삼장법사가 점차 여성화된다는 점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아예 여성이 삼장법사 포지션의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대표적인 예가 ‘드래곤볼’의 소녀 부르마입니다. 한국의 고우영 만화 ‘서유기’에서도 여성성이 극대화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일지매로 등장했던 고우영의 대표적 미소년 캐릭터에게 다시 삼장법사 역을 맡긴 것이죠. 특이한 것은 일본이나 한국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이런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손오공은 인도 설화 속의 원숭이 신 하누만(Hanuman)과 유사해서 영향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중국의 원숭이 숭배 신앙이나 전설과 결합된 것이겠죠. 소설 『서유기』에서 손오공은 돌에서 태어난 원숭이 요괴인데 최고의 능력을 가졌으나 오만방자하고 장난기가 심해서 온갖 문제를 일으킵니다. 결국 부처님에게 제압되어 삼장법사를 수행하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손오공은 첫 스승에게서 받은 법명이죠. 공(空)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삼장법사가 붙여준 별칭은 행자(行者)인데, 승려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 밖에도 미후왕·제천대성·투전승불 등의 호칭이 더 있습니다. 그를 상징하는 두 가지 물건은 여의봉과 긴고아입니다. 무게가 8t이 넘고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해서 늘이면 한없이 늘어나고 줄이면 귓속에도 넣을 수 있는 여의봉은 자유로움을 의미하며, 부처님이 마련해서 손오공의 머리에 씌운 긴고아는 삼장법사가 주문을 외면 살 속을 파고들어 엄청난 고통을 주는데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을 의미합니다.

홍콩의 허무 담긴 영화 ‘서유기’
홍콩 영화 ‘서유기: 선리기연’의 포스터. [사진 성민엽]

홍콩 영화 ‘서유기: 선리기연’의 포스터. [사진 성민엽]

물론 서유기 이야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는 손오공입니다. 무수히 많은 2차 창작물에서 주인공이 되고 있으며 언제나 최강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중 천진난만 쪽으로 특화된 경우가 일본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이고, 홍콩 영화 ‘서유기: 선리기연’에서는 ‘사랑을 배우고 운명을 받아들이며 인간적인 성장통을 겪는 가장 로맨틱하고도 슬픈 손오공’으로 등장합니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대사가 유명하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적 감정과 손오공으로서의 운명이 충돌하면서 결국 운명의 길로 귀결되는 주인공의 모습은 1990년대 당시 홍콩의 상실과 허무의 정서를 진하게 담아냅니다.

삼장법사의 세 제자 중 둘째인 저팔계는 원래 천계의 무관이었는데 월궁의 항아를 성희롱한 죄로 지상으로 추방되어 멧돼지 머리의 수인 요괴가 되었다는 설정입니다. 팔계는 삼장법사가 붙여준 별칭으로 계율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특히 식욕과 색욕이 엄청나게 강하여 거의 욕망의 화신이라고 할 정도인 그는 팔계라는 이름과 다르게 계속해서 식욕과 색욕을 탐하다가 사고를 치곤 합니다. 관세음보살이 주신 법명은 능력을 깨닫는다는 뜻의 오능이지만, 이름과 달리 그의 능력은 어중간해서 보스급 요괴를 만나면 패퇴하기 일쑤입니다. 그 밖에도 겁쟁이에 게으름뱅이에 미련하기까지 한 데다가 시기심과 질투심 때문에 손오공을 모함하는 등 온갖 말썽을 일으킵니다.

‘날아라 슈퍼보드’의 허영만 작가와 사오정 캐릭터. [중앙포토]

‘날아라 슈퍼보드’의 허영만 작가와 사오정 캐릭터. [중앙포토]

하지만 이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인지 서유기 이야기에서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는 바로 저팔계입니다. 한국의 허영만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의, 두건을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바주카포를 메고 다니는 저팔계가 이런 점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막내 제자 사오정도 원래 천계의 무관이었는데, 죄를 짓고 지상으로 추방되어 유사하라는 강에서 강을 건너려는 사람을 잡아먹으며 살다가 관세음보살을 만난다는 설정입니다. 이때 받은 법명이 오정(悟淨)으로 ‘마음의 청정함’을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성씨의 ‘사(沙)’는 유사하에서 따왔습니다(저팔계의 성씨 저는 돼지 요괴를 뜻합니다).

소설 『서유기』에서 사오정은 특정한 동물의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봉두난발의 붉은 머리, 부릅뜬 눈, 검푸른 얼굴, 길게 째진 입과 튀어나온 송곳니, 해골 9개를 엮은 목걸이 등의 외모상 특징이 언급되지만 머리를 깎고 삼장법사를 따라나선 뒤의 모습은 보통의 승려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 모습에서 사화상이라는 별명이 나옵니다. 화상(和尙)은 승려라는 뜻이죠. 사승(沙僧)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오정은 여러모로 저팔계와 대조적인 캐릭터입니다. 무력은 저팔계와 비슷하지만 조용하고 우직한 성격으로 신중하고 생각이 깊어서 손오공과 삼장법사에게 신뢰를 받습니다. 대신 손오공·저팔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떨어지는 면이 있죠.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이 허영만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오는 사오정의 너무나 개성적인 모습입니다.

허영만의 사오정은 소설 원작과는 거의 공통점이 없는,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원작의 사오정이 정상인에 가까운 데 반해 허영만의 사오정은 괴짜 작중 인물 중에서도 가장 괴짜입니다. 그는 입에서 독나방을 발사하며 몸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뿅망치로 적들을 물리칩니다. 이 뿅망치는 10번 두들겨야 폭발하는데 사오정이 머리가 나빠서 몇 번 두들겼는지 기억을 못 하고, 그래서 일일이 두들기는 숫자를 셉니다. 그러니 적들이 피하거나 반격하죠.

동문서답 난무하는 세상
하지만 이 사오정의 가장 큰 특징은 가는귀가 먹었다는 점입니다. 외형상으로는 머릿살의 늘어난 주름이 귀를 덮은 모습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지를 못해서 제멋대로 오해를 하고, 그래서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완전 동문서답입니다. 이 특징이 20세기 말 한국에서 큰 유행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른바 사오정 개그, 사오정 시리즈입니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답답한 사람을 향해 “사오정 같다”고 부르는 관용어까지 생겼죠. 이는 단지 사오정 개그가 재미있어서만이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의 어느 측면과 이 개그가 풍자적으로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제가 ‘서유기’를 소재로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날아라 슈퍼보드’의 사오정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국내나 국외를 막론하고 동문서답이 너무나 심해서, 이미 25년이나 지난 개그가 요즘에 더 많이 부합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개그는 괴짜를 통해 진실이 더 잘 드러난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상기해 줍니다.

성민엽 문학평론가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