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에서 시인 진만 역을 맡은 박해준. 사진 스튜디오 피닉스, SLL, 스튜디오 플로우
맑은 날이면
데리러 온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아이와 엄마
강아지와 주인
밝아지는 창문
일요일입니다.
사람들 지나갑니다.
데리러 가는 길이면 좋겠습니다.
맞으러 가는 길이어도
좋겠습니다.
두 곳이어서
이곳과 다를 거라서
믿게 됩니다.
임곤택, 데리러 온다는 말
화제의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극본 박해영, 연출 차영훈, 이하 ‘모자무싸’)’에 등장하는 시들의 정체가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모자무싸’의 남자 주인공 황동만(구교환)의 형 진만(박해준)의 과거 직업은 시인입니다. 촉망받는 시인이며 국문학도였던 진만은 몇 가지 충격적인 개인사를 겪으며 심한 우울증과 함께 더는 시를 쓰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학문의 길도 포기하고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갑니다.
'모자무싸' 6회의 한 장면. 사진 스튜디오 피닉스, SLL, 스튜디오 플로우
지금까지 진만의 시로 극 중에 소개된 시는 모두 3편. 그런데 그중 2편이 임곤택 시인의 시였습니다. 6회에는 ‘이런 날은 살기 좋은 날/ 멀리 갔다면/ 돌아오기 좋은 날’이라는 임 시인의 ‘저녁의 신부 5’가 나왔고, 8회에는 기사 앞부분에 전재한 ‘데리러 온다는 말’에 등장했습니다.
이 시들은 모두 진만이 왜 시인의 길을 포기했는가 암시하는 듯한, 진만의 내면이 엿보이는 장면에 소개됐는데, 서정적인 영상과 시의 조화에 대한 좋은 반응과 함께 시청자들 사이에서 ‘너무 아름다운 시인데 누구의 시인지 궁금하다’ ‘(박해영)작가가 직접 쓴 시인가’를 놓고 많은 질문과 잘못된 답이 오가고 있습니다.
'모자무싸' 8회의 한 장면. 사진 스튜디오 피닉스, SLL, 스튜디오 플로우
이 시들은 박해영 작가가 직접 고른 작품들입니다. 박 작가는 “평소 임 시인의 시를 좋아했다. 어려운 단어를 하나도 쓰지 않고, 쉽게 쓴 것 같으면서도 담백한 슬픔이 깊게 느껴지는 시들이라 이 드라마가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부교수로 재직 중인 임 시인은 2004년 불교신문을 통해 등단, 지금까지 3권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입니다. ‘저녁의 신부 5’는 두 번째 시집인 ‘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에, ‘데리러 온다는 말’은 세 번째 시집 ‘죄 없이 다음 없이’에 수록돼 있습니다.
임곤택 시인의 시집 '죄 없이 다음 없이'의 표지. 사진 걷는사람
임 시인은 “박해영 작가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드라마에 시를 인용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 매우 의외라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대중적으로 그리 알려진 시도 아니고, 밝은 분위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 사용되려나 궁금했다”는 임 시인은 “드라마를 보고 나니 왜 그 시들을 원했는지 100% 이해했다. 너무나 장면과 잘 어울려서, 마치 내가 그 장면을 위해 시를 쓴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모자무싸’ 관계자는 “임 시인의 시가 ‘모자무싸’에 인용되는 것은 이 두 편이 전부”라며, “드라마 전반부의 진만이 어렸을 때 썼다는 시를 비롯해 드라마 후반에 등장할 시들은 박해영 작가가 직접 쓴 것들”이라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