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사장단이 총파업 위기와 관련해 “국민과 정부에 큰 부담과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공개 사과했다. 창사 이후 처음으로 사장단 명의의 대국민 메시지까지 내놨지만, 노조는 정부 중재 회의 녹취를 조합원들에게 공개했고 내부에서는 ‘노노 갈등’과 가처분 신청 움직임까지 이어지며 노사 갈등이 내부 분열과 법적 공방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15일 삼성전자 사장단은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회사 내부 문제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며 “노조를 한 가족이자 운명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조건 없이 열린 자세로 대화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겸 DS부문장이 지난 3월 경기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어 “노조도 국민들의 우려와 국가 경제를 생각해 조속히 대화에 나서줄 것을 거듭 요청드린다”며 “지금보다 내실 있는 경영과 끊임없는 기술 혁신, 과감한 미래 투자로 국가 경제의 흔들림 없는 버팀목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입장문에는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의 전영현 대표이사 부회장과 스마트폰·가전 등 완제품 사업을 맡고 있는 DX(디바이스경험)부문의 노태문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해 주요 사장단이 모두 이름을 올렸다. 업계에서는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반도체 공급망과 국가 경제에 미칠 파장이 큰 만큼 경영진이 이례적으로 집단 사과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 DS부문 사장단은 이날 오후 경기 평택캠퍼스 내 노동조합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와 만났다. 이 자리에는 전영현 부회장과 김용관·한진만·박용인 사장 등이 참석했고, 노조 측에서는 최승호 위원장과 이송이 부위원장 등이 자리했다. 전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열린 자세로 대화하겠다”며 교섭을 이어가자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에서도 중재 움직임에 나섰다. 노조는 이날 공지를 통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조 사무실을 방문해 교섭 현황과 핵심 쟁점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노조는 교섭 재개를 위해 사측 대표교섭위원 교체와 실질적인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노사 갈등은 오히려 격화하는 양상이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초기업노조)는 이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사후조정 회의 녹취 내용을 조합원들에게 공개했다.
업계에 따르면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이날 익명 소통방에 중노위 사후조정 과정에서 녹음한 음원 파일을 공유했다. 초기업노조와 삼성전자는 지난 11~12일 중노위 중재 아래 임금협약 관련 사후조정을 진행했지만 결국 결렬됐다.
공개된 녹취에는 최 위원장이 사측 교섭대표인 김형로 삼성전자 부사장을 향해 “올해 연간 영업이익은 300조원인데 200조원도 안 될 것처럼 말하는 게 정상적이냐”며 반발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이어 김 부사장을 겨냥해 “반도체를 하나도 모르고 실적 규모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13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조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2차 심문을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최 위원장은 중노위 측 중재 시도에도 “더 이상 회사와 이야기할 생각이 없으니 조정안을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노조는 조정 결렬을 선언했고,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 강행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중노위는 16일 사후조정 재개를 공식 요청했고 삼성전자도 이날 노조 측에 쟁점별 입장을 담은 공문을 보내 추가 대화를 제안했다. 하지만 최 위원장은 “6월 7일 이후 협의할 것”이라며 사실상 거부 입장을 밝혔다.
노사 갈등은 이제 노조 내부 분열 양상으로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삼성전자 DX부문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초기업노조의 교섭 대표성을 문제 삼는 가처분 신청 추진 움직임도 커지는 분위기다.
현재 삼성전자 사내 커뮤니티에는 “DS(반도체) 중심 노조가 DX 구성원 의견은 외면하고 있다”며 초기업노조의 임금협상 체결과 파업 추진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일부 조합원들은 소송비 모금에 나섰고 법무법인 선임 작업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DX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초기업노조가 반도체 성과급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불만도 커지는 분위기다. 실제 일부 조합원들은 파업 기간 조합비 인상에 반발해 탈퇴 의사를 밝히며 “조합비 대신 소송비를 내겠다”는 반응까지 내놓고 있다.
가처분 신청이 실제 제기될 경우 초기업노조는 사측이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에 더해 추가 법적 리스크까지 떠안게 된다. 특히 이번 가처분은 단순 쟁의행위 제한이 아니라 노조의 대표성과 교섭권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어서 파장이 더 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라인 보호와 웨이퍼 변질 방지, 사업장 시설 점거 차단 등을 이유로 노조를 상대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상태다. 수원지방법원은 파업 예정일 하루 전인 오는 20일까지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