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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공 거리 축소 규제, 시행도 전에 뚫렸다

중앙일보

2026.05.15 22:05 2026.05.16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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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머런 영은 지난 3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18번 홀에서 이 홀 역대 최장타인 375야드의 티샷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쓴 볼은 거리 축소를 위해 강화한 기준을 통과한 볼이었다. AP=연합뉴스

캐머런 영은 지난 3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18번 홀에서 이 홀 역대 최장타인 375야드의 티샷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쓴 볼은 거리 축소를 위해 강화한 기준을 통과한 볼이었다. AP=연합뉴스

캐머런 영(미국)을 '우승 없는 최고 선수'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한 숨은 주역은 골프공이었다. 과도한 웨지샷 스핀을 억제하고 탄도를 낮춘 특수 제작 맞춤형 볼이다.

영은 지난 3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 당시 이 볼로 최종 라운드 18번 홀에서 375야드의 장타를 뿜어냈다. TPC 소그래스 18번 홀 역대 최장 드라이브 기록이다. 시장에서는 영이 최첨단 고성능 볼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볼은 USGA(미국골프협회)와 R&A(왕립골프협회)가 비거리 제한을 위해 강화한 새로운 공인구 기준(ODS)을 통과한 일명 '롤백(거리 축소) 볼'이었다.

지난 14일 미국 골프채널의 보도로 알려진 이 사실은 골프계의 비거리 축소 논쟁을 완전히 뒤흔들고 있다.

그동안 USGA는 샷거리가 과도하게 늘어나면서 역사 깊은 골프 코스들이 무력화되고 자연환경이 훼손된다며 비거리 롤백을 강력히 추진해 왔다. USGA가 도입한 새 ODS 테스트 기준은 클럽 헤드 스피드 시속 125마일, 발사각 11도 조건에서 캐리 거리 317야드(허용 오차 3야드)를 넘지 않아야 한다.

프로 대회는 2028년, 아마추어는 2030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USGA는 이 기준이 시행되면 비거리가 최소 15야드 이상 줄어들 것으로 공언해 왔다.

타이틀리스트의 모회사인 아퀴쉬넷은 USGA와 R&A의 이 같은 프로·아마추어 용품 이원화 정책에 가장 격렬히 반대해 온 제조사다. 데이비드 마허 CEO는 "골프를 엘리트와 아마추어로 갈라치기 하고, 골프의 근간을 이루는 연결고리를 끊어놓을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규제 시행을 2년 앞두고 아퀴쉬넷은 강화된 기준을 충족하면서도 비거리 손실이 거의 없는 볼을 소리 없이 시장에 선보였다. 사실상 규제 당국의 빗장을 무력화한 셈이다.

왼쪽부터 프로V1x ‘레프트 대시(Left Dash)’, 프로V1 ‘레프트 닷(Left Dot)’, 프로V1x ‘레프트 더블닷(Left Double Dot)'. 중앙포토

왼쪽부터 프로V1x ‘레프트 대시(Left Dash)’, 프로V1 ‘레프트 닷(Left Dot)’, 프로V1x ‘레프트 더블닷(Left Double Dot)'. 중앙포토

영이 사용한 볼은 로고 왼쪽에 점 두 개가 찍힌 '타이틀리스트 프로V1x 레프트 더블닷(Double Dot)'이다. 선수의 개별 요구에 맞춰 스핀량, 탄도, 타구감 등을 커스텀 제작하는 타이틀리스트의 CPO(커스텀 퍼포먼스 옵션) 모델이다. 영은 지난해 8월 윈덤 챔피언십에서 이 볼을 처음 들고 나와 PGA 투어 생애 첫 우승을 신고한 이후, 단숨에 2승을 더 추가했다.

■ 거리 손실은 단 3야드, 정확도는 수직 상승

이 볼이 새로운 규제 기준을 통과한 공인구라는 사실에 투어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데이터골프 분석에 따르면, 영이 더블닷으로 교체한 이후 드라이버 비거리 손실은 약 3야드에 불과했다.

반면 페어웨이 적중률은 전년 대비 무려 121계단 상승한 46위(61% 이상)까지 치솟았다. 이에 따라 티샷 지표인 'SG:오프 더 티(Off the Tee)' 순위 역시 31위에서 6위로 급등했다. 비거리는 유지하면서도 정확도를 완벽하게 잡은 것이다. 베테랑 아담 스콧 역시 해당 볼의 거리 손실이 2야드 안팎에 불과하다고 증언했다.

더블닷은 일반 프로V1x 모델보다 스핀량이 적고 탄도가 낮은 것이 특징이다. 영처럼 헤드 스피드가 빨라 스핀이 과도하게 걸리는 선수들의 웨지샷 회전율을 낮추고 탄도를 안정시켜, 아이언 거리 컨트롤을 용이하게 만든다.

영은 덜 뜨는 이 볼의 롱게임 탄도를 높이기 위해 드라이버 로프트를 9도에서 11도로 높이고, 고탄도 3번 우드와 7번 우드를 배치하는 등 클럽 셋업을 최적화했다.

영은 인터뷰에서 “이 볼이 강화된 규제 기준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나도 몇 주 전에야 알았다”며 “골프볼 규정이 예정대로 시행되든 아니든, 나에게는 더블닷이 가장 완벽한 공이다. 이 공이 골프를 훨씬 쉽게 만들어준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브라이슨 디섐보는 캐머런 영처럼 타이틀리스트 프로V1 레프트 더블닷을 쓴다. AP=연합뉴스

브라이슨 디섐보는 캐머런 영처럼 타이틀리스트 프로V1 레프트 더블닷을 쓴다. AP=연합뉴스


현재 PGA 투어에서는 캐머런 영을 비롯해 닐 영, 닐 십리, 리코 호이 등 6명의 선수가 더블닷을 실전에 투입하고 있다. 2024년 US오픈 우승 당시 프로V1x 레프트 대시를 사용했던 브라이슨 디섐보 역시 2025년 7월 LIV 골프 시카고 대회부터 더블닷으로 전격 교체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수들 사이에서는 이미 규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쏟아지고 있다. 2022년 디 오픈 챔피언 브라이언 하먼은 “강화된 기준의 볼을 테스트해 본 결과, 장타자들은 거리 손실이 거의 없는 반면 단타자들은 타격이 컸다”며 “규제 취지와 달리 결국 장타자에게만 유리한 구조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용품사들이 이처럼 규제를 우회하는 첨단 볼을 잇따라 내놓을 경우, 기술력과 전문 피팅 접근성이 떨어지는 아마추어 골퍼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규제의 칼날을 갈아온 USGA와 R&A는 머쓱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제조사의 고도화된 기술력이 규제 당국의 압박을 정면으로 받아친 가운데, 두 기관이 향후 어떤 대응 카드를 꺼내 들지 전 세계 골프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성호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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