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태어난 사람 다섯 명이 실험실에 모였습니다. 문제일(62·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과학과) 교수는 이들에게 한 영상을 보여줬습니다. 뻥튀기를 튀기는 장면, 사람들이 달고나를 먹는 모습, 소독차를 따라다니는 아이들 등 1960년대 풍경이 담긴 영상이었는데요. 이후 어떤 생각을 했냐고 묻자, 참가자들은 영상에서 본 것들을 건조하게 말했습니다.
잠시 후 같은 영상을 다시 보여주면서,
뻥튀기와 달고나 향을 실험실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어떤 생각을 했냐”고 물었는데요. 참가자들은 갑자기 추억에 잠겨 어린 시절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한 참가자는 “어릴 때 쌀 대신 옥수수를 튀겨서 먹었다”고 했고, 다른 참가자는 “집에 안 가고 학교 앞에서 달고나를 만들다가 엄마한테 혼났다”고 했죠.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과학과 교수가 손을 들고 향을 맡고 있다. 후각융합연구센터장인 그는 후각과 뇌의 관계를 담은『나는 향기가 보여요』(아르테)를 펴내기도 했다. 장진영 기자
이 실험을 설계한 문 교수는 “향기는 기억 창고를 여는 강력한 열쇠”라며 “후각을 자극하면 뇌 속 기억과 감정을 불러올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만큼 후각과 뇌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뜻인데요. 한국뇌신경과학회장을 역임한 문 교수는 후각이 영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 뇌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다양한 향으로 후각을 자극하면 어릴 땐 기억력 발달에, 성인에겐 전반전인 뇌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하는데요.
반대로, 후각 능력이 떨어지면 뇌에 이상에 생겼다는 신호일 수 있죠. 문 교수는 “후각 기능 저하는 치매 초기 증상 중 하나”라면서 “익숙한 향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면 뇌 건강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Q : 사람이 기억하는 첫 향기가 뭔가요?
사람의 후각은 엄마 배 속에서 발달하기 시작해요. 임신 7주 차에 후각 신경이 형성되고, 14주부터는 어른과 비슷한 구조가 됩니다. 28주부터는 어른과 같은 정도로 성숙하거든요. 이때 태아는 자궁 내 양수를 통해 엄마의 향을 처음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향을 무조건 알아챕니다.
Q : 어릴 때 다양한 향기를 맡으면 뇌 발달에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사람의 뇌는 완성된 채로 태어나지 않거든요. 어릴 때 후각 자극은 ‘뇌 가소성’을 높여줘요. 뇌 가소성은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 뇌가 유연하게 변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특히 영유아기에 후각 발달이 활발하게 이뤄지는데요. 이때 다양한 향을 경험하면 뇌세포의 연결성을 강화해서 정서와 기억력 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죠.
Q : 성인은요?
성인은 일상에서 좋은 향기를 통해 뇌의 활성도를 유지할 수 있어요. 스트레스 감소, 기분 개선 등 전반적인 뇌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노년에 접어들면 후각 기능은 노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감퇴하는데요. 규칙적인 후각 경험은 뇌 기능을 활성화하고요. 노화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는 데 도움이 돼요.
Q : 젊고 건강한데 냄새를 못 맡는 사람도 있나요?
우리는 냄새를 코로 맡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뇌에서 처리해요. 한 가지 예로,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할수록 냄새 맡는 능력이 떨어져요. 후각 신호를 받는 전두엽 부위에 손상이 있기 때문인데요. 전두엽 부위는 충동 억제, 사회 규범을 지키는 기능과 관련이 있거든요. 물론 냄새를 못 맡는다고, 다 사이코패스라는 말은 아닙니다.
Q : 후각 상태를 알 수 있는 자가진단법이 있을까요?
일상에서 친숙한 냄새들을 구별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커피, 비누, 오렌지, 레몬 등을 순서대로 맡아 보면서 각각의 냄새를 정확히 인지하고 식별하는지 스스로 평가해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