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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일 냄새 못맡으면 위험” 초기 치매 아는 뜻밖의 증상

중앙일보

2026.05.16 14:00 2026.05.1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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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60년대 태어난 사람 다섯 명이 실험실에 모였습니다. 문제일(62·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과학과) 교수는 이들에게 한 영상을 보여줬습니다. 뻥튀기를 튀기는 장면, 사람들이 달고나를 먹는 모습, 소독차를 따라다니는 아이들 등 1960년대 풍경이 담긴 영상이었는데요. 이후 어떤 생각을 했냐고 묻자, 참가자들은 영상에서 본 것들을 건조하게 말했습니다.

잠시 후 같은 영상을 다시 보여주면서, 뻥튀기와 달고나 향을 실험실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어떤 생각을 했냐”고 물었는데요. 참가자들은 갑자기 추억에 잠겨 어린 시절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한 참가자는 “어릴 때 쌀 대신 옥수수를 튀겨서 먹었다”고 했고, 다른 참가자는 “집에 안 가고 학교 앞에서 달고나를 만들다가 엄마한테 혼났다”고 했죠.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과학과 교수가 손을 들고 향을 맡고 있다. 후각융합연구센터장인 그는 후각과 뇌의 관계를 담은『나는 향기가 보여요』(아르테)를 펴내기도 했다. 장진영 기자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과학과 교수가 손을 들고 향을 맡고 있다. 후각융합연구센터장인 그는 후각과 뇌의 관계를 담은『나는 향기가 보여요』(아르테)를 펴내기도 했다. 장진영 기자


이 실험을 설계한 문 교수는 “향기는 기억 창고를 여는 강력한 열쇠”라며 “후각을 자극하면 뇌 속 기억과 감정을 불러올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만큼 후각과 뇌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뜻인데요. 한국뇌신경과학회장을 역임한 문 교수는 후각이 영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 뇌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다양한 향으로 후각을 자극하면 어릴 땐 기억력 발달에, 성인에겐 전반전인 뇌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하는데요.

반대로, 후각 능력이 떨어지면 뇌에 이상에 생겼다는 신호일 수 있죠. 문 교수는 “후각 기능 저하는 치매 초기 증상 중 하나”라면서 “익숙한 향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면 뇌 건강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Q : 사람이 기억하는 첫 향기가 뭔가요?
사람의 후각은 엄마 배 속에서 발달하기 시작해요. 임신 7주 차에 후각 신경이 형성되고, 14주부터는 어른과 비슷한 구조가 됩니다. 28주부터는 어른과 같은 정도로 성숙하거든요. 이때 태아는 자궁 내 양수를 통해 엄마의 향을 처음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향을 무조건 알아챕니다.


Q : 어릴 때 다양한 향기를 맡으면 뇌 발달에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사람의 뇌는 완성된 채로 태어나지 않거든요. 어릴 때 후각 자극은 ‘뇌 가소성’을 높여줘요. 뇌 가소성은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 뇌가 유연하게 변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특히 영유아기에 후각 발달이 활발하게 이뤄지는데요. 이때 다양한 향을 경험하면 뇌세포의 연결성을 강화해서 정서와 기억력 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죠.


Q : 성인은요?
성인은 일상에서 좋은 향기를 통해 뇌의 활성도를 유지할 수 있어요. 스트레스 감소, 기분 개선 등 전반적인 뇌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노년에 접어들면 후각 기능은 노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감퇴하는데요. 규칙적인 후각 경험은 뇌 기능을 활성화하고요. 노화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는 데 도움이 돼요.


Q : 젊고 건강한데 냄새를 못 맡는 사람도 있나요?
우리는 냄새를 코로 맡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뇌에서 처리해요. 한 가지 예로,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할수록 냄새 맡는 능력이 떨어져요. 후각 신호를 받는 전두엽 부위에 손상이 있기 때문인데요. 전두엽 부위는 충동 억제, 사회 규범을 지키는 기능과 관련이 있거든요. 물론 냄새를 못 맡는다고, 다 사이코패스라는 말은 아닙니다.


Q : 후각 상태를 알 수 있는 자가진단법이 있을까요?
일상에서 친숙한 냄새들을 구별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커피, 비누, 오렌지, 레몬 등을 순서대로 맡아 보면서 각각의 냄새를 정확히 인지하고 식별하는지 스스로 평가해 볼 수 있어요.

“이 과일 냄새가 안 느껴지면, 뇌가 보내는 경고일 수 있다.”


뇌과학자들은 후각을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뇌 건강의 신호등’으로 본다. 실제로 특정 향을 구별하지 못하는 증상이 치매 초기 신호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후각을 꾸준히 깨우는 것만으로도 뇌를 자극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계속)

“매일 아침·저녁 5분씩 4개월만 맡아도 뇌가 달라진다.”
기억력과 집중력을 깨운다는 ‘뇌 운동 향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뇌과학자가 실제 치매 의심 환자들에게 쓰는 ‘땅콩버터 테스트’와 후각 자가진단법도 아래 링크에 담았습니다.

“이 과일 냄새 못맡으면 위험” 초기 치매 아는 후각 진단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60688


이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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