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사이클(초호황기)’을 맞은 조선업계에서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배분하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17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전국금속노동조합 HD현대중공업지부는 최근 ‘2026 단체교섭 통합요구안’을 확정하고 ‘영업이익 최소 30% 성과 분배’를 요구했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올해 영업이익이 3조628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30%인 1조884억원이 성과 분배 재원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노조 측은 “조선업은 노동자 숙련과 노동력이 실적을 만든다”며 “불황기 동안 임금을 동결하고 버텨온 만큼 이제는 성과를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화오션 노조는 올해 회사와 성과급 기준 및 제도 개편을 두고 실무 논의를 진행 중이다. 단체교섭 노조안에는 성과급 지급 기준 변경 내용을 포함했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위원장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K조선 간담회’에서 “성과와 이익을 노동자에게 투명하고 공정하게 배분하라는 목소리가 거세고, 저도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 전반이 이른바 ‘N% 성과급’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과급은 기업이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 계획과 연구개발(R&D) 수요, 재무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설계하는 경영의 영역이다. 이를 영업이익과 기계적으로 연동시키면 전략적 경영 판단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다른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근로자들과 임금 격차가 확대되며 2차 사회적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시장경제의 근간인 ‘위험과 보상의 법칙’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자는 고용 계약을 통해 불황이어도 임금을 받고, 회사 손실을 책임지지도 않는다. 회사 잉여이익은 일차적으로 자본 손실의 리스크를 감수하는 주주의 몫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근로자 보상은 이사회·주주총회가 동의하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특히 사이클 산업인 반도체·조선 등에서 일정 비율을 강제하는 건 무리”라고 덧붙였다. 예컨대 대만 TSMC는 매년 이사회가 회사 실적과 투자 계획을 고려해 성과급 규모를 결정한다.
해외에는 과도한 이익 공유가 장기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제너럴모터스(GM)는 2023년 노조 파업 이후 성과급 등을 늘리면서 2028년까지 5년간 93억 달러(약 14조원)의 추가 비용이 필요해졌다. GM은 지난해 4분기 적자를 기록하는 등 부진한 실적을 냈지만 1인당 1만500달러(1575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해야 했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 스텔란티스는 2년 전만 해도 1인당 1만4000달러(약 2100만원)의 성과급을 줬지만 지난해 영업손실에 빠지면서 더 이상 지급하지 못하게 됐다. 업계에선 전기차, 차량 소프트웨어 등에서 뒤처진 원인 중 하나로 과도한 성과급을 꼽는다.
반면에 노동계에선 노동 가치를 우대하는 성과 배분 체계가 확립돼야 현장의 근로 의욕을 높이고 장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노동자도 경영이 어려울 때 임금 동결과 구조조정의 고통을 고스란히 분담하며 사측과 위기를 함께 견뎠다는 것이다. 실제 조선업계의 경우 2016년 이후 수주 절벽과 대규모 적자로 희망퇴직, 임금 동결, 인력 축소 등을 이어왔다. 이후 수주 호황이 찾아오며 실적이 급반등했지만 현장에서는 “인력 유출을 막고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보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