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산골 자택. 이 집 주인장인 신영교(89·이하 경칭 생략) 작곡가는 취재진과 첫인사를 나누자마자 이렇게 말을 건넸다. 자신보다 젊은 사람에게 당연한 듯 존대하며 따뜻한 관심을 보이는 그의 모습이 영락없는 동네 중매쟁이 할아버지 같아 웃음이 나왔다.
사생활 공개를 꺼리는 요즘 세대에게 ‘연애 사업’ ‘결혼 여부’ 등을 묻는 건 민감한 일이다. 하지만 신영교가 누군가.
배우 신애라의 아버지인 그는 연예계 대표 사랑꾼인 배우 차인표를 사위로 맞이한, 참으로 눈 밝은 ‘장인어른’ 아닌가. 상대에게 딱 맞는 배우자를 골라주는 눈은 인증받은 셈이다. 그의 관심과 질문이 불편하지 않고 배려이자 친절로 느껴졌다.
사위 차인표, 딸 신애라 그리고 아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신영교 작곡가(오른쪽에서 두번째). 사진 신영교
" 나중에 짝꿍 생기면 꼭 우리 집에 데려와요. 내가 직접 닭백숙 고아 줄게요. 그거 먹이면서 신랑 면접을 봐줘야지. 그리고 결혼하면 나 꼭 불러줘요. 저 구석에라도 앉아서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해주고 싶으니까. 약속해요. 하하. "
처음 만난 취재진에게 건넨 이토록 친밀한 말이라니…. 이런 신영교의 다정한 일상을 들여다보다, 문득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사실 지난해 10월, 그는
살아온 생애를 돌아보며 정리하는 ‘생전 장례식’을 치르고 묻힐 자리까지 다 정해둔 사람이다. 생애 마지막 날처럼, 신애라·차인표 부부를 포함해 가족·지인들과 이미 작별 인사를 나눈 그였다.
암으로 위장의 99%를 절제했고, 22년 전 천국에 간 아내는 자신의 집 마당에 묻었다. 누구보다 죽음을 가까이하고, 열심히 준비 중인 신영교와의 만남이 조금은 무겁고 쓸쓸할 거라 예상했던 터다.
" 조만간 또 만나요! 다음엔 내가 좋아하는 장터에 같이 가서 놀면 되겠다. "
인터뷰 끝에 그는 취재진과의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죽음을 알기에, 더욱 유쾌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신영교 작곡가가 지난달 23일 경기도 남양주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100세의 행복3〉 2화에선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을 준비하며, 생기 넘치는 삶을 즐기고 있는 신영교의 이야기를 담았다.
암을 극복한 그가 먹는 음식들, 삶을 즐기는 마음가짐은 모두 주옥같은 건강 비결이었다.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니,
죽음을 잘 준비한다는 건 결국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기사는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신영교의 1인칭 시점에서 풀었다.
※100년에 가까운 시간, 아내만을 사랑한 신영교의 절절한 노래와 피아노 연주를 영상에 담았습니다.
신영교 작곡가가 아내의 사진을 앞에 두고 아내를 그리워하는 가슴 절절한 곡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영상으로 꼭 확인하세요. 김서원 기자
목차
📌 위장 99% 절제, 아내가 찾아낸 기적
📌 위암 환자지만 생선초밥은 먹고 싶어
📌 끝내 지키지 못한 아내의 유언
📌 홀아비는 가라… 나혼자 ‘잘’ 사는 법
📌 배우 신애라父, 딸에게 남기는 유언
46세이던 1983년, 나는 위암 선고를 받았다. 젊은 시절, 하루가 멀다하고 적게는 소주 한 병, 많게는 세 병까지도 앉은 자리에서 비우던 폭음 습관이 화근이었다.
당시
암은 곧 사형선고이던 시절이었다. 의사는 내게 1년의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
가족들은 포기 상태로 그저 하염없이 울면서 기도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작 14살이던 막내딸 애라를 두고 떠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위장의 99%를 도려내는 대수술을 결단했다.
진짜 고통은 그 뒤에 찾아온 항암 치료였다. 구토에 식욕 부진까지…. 음식을 먹을 수도, 잠을 편하게 잘 수도 없었다.
다행히 아내는 똑똑하고 강인한 사람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나를 지켜보던 어느 날, 아내가 주치의를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만약 박사님 가족이라면 지금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
의사의 답은 이랬다.
저라면 항암 치료를 그만두겠습니다.
아내는 그날로 당장 항암 치료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국내에 나온 암 관련 서적을 몽땅 독파하며 ‘생존법’을 직접 공부했다. 먹이는 것, 재우는 것, 돌보는 것 하나하나 공부해서 나에게 적용했다.
뭐든지 끝장 보는 성격의 아내가 선택한 항암 식단의 핵심 원칙은 ‘붉은 육고기 금지, 생선 위주의 식사’였다. 생선도 구이보다는 활어회로, 특히 나는 신선한 생선초밥을 좋아해서 자주 먹었다. 날것이 위암 환자에게 위험하다는 건 알았지만, 당장 입맛을 잃어 기력 없는 내 몸 속에 뭐라도 집어넣는 게 절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