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긴급차단 조치와 경찰 수사에도 저작권 침해 불법 사이트들이 여전히 성행하자, 피해자들은 직접 운영자를 찾고 소송을 제기하는 등 발 벗고 나섰다.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제작한 사진. 챗GPT
정부가 웹툰 등 불법 복제물을 유통하는 사이트를 발견 즉시 차단하는 ‘긴급차단 제도’를 시행한 지 1주일이 넘었지만, 불법 사이트들은 여전히 성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최대 웹툰 불법 공유 사이트인 ‘뉴토끼’가 정부 조치 이후에도 정상적으로 접속되고 있는 데다 관련 수사마저 장기화되면서 피해 작가들은 일본으로 귀화했다고 알려진 운영자를 직접 특정해 현지에서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19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1일 저작권침해 사이트에 대한 긴급차단 제도를 시작했다. 불법 사이트를 발견한 즉시 문체부 장관이 일단 차단 명령을 내린 후 사후에 심의를 받게 하면서 기존보다 대응 속도를 단축시킨 것이다. 문체부는 제도가 시작된 날 “‘뉴토끼’ 등 긴급차단의 요건에 부합하는 최초의 긴급차단 대상 사이트 총 34개를 선정해 인터넷서비스 제공자에 차단 명령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국내 최대 웹툰 불법 공유 사이트인 ‘뉴토끼’가 정부의 ‘긴급차단 제도’ 이후에도 3만명 가까이 있는 텔레그램 채팅방에 새 사이트 주소를 공지하며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마나토끼(일본만화 불법 공유 사이트)’의 모습. 텔레그램 캡처
하지만 19일 접속해본 ‘뉴토끼’는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운영자들은 사이트가 차단되더라도 곧바로 인터넷주소(URL)의 뒷자리만 바꿔 새 사이트를 개설했다. ‘뉴토끼’ 운영진은 2만8000여명 가까이 참여하고 있는 텔레그램 채팅방에 실시간으로 접속 가능한 최신 주소를 공지하고 있다. 같은 인물들이 운영한다고 전해진 ‘북토끼(웹소설 공유)’와 ‘마나토끼(일본만화 공유)’도 접속 가능한 상태였다. 여타 불법 사이트들도 이곳을 통해 작품을 복제하고 게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업계에선 영향력이 큰 사이트다.
이처럼 정부의 조치에도 불법 복제물 사이트가 근절되지 않는 가운데 피해 작가들은 해외로 도피한 운영자를 직접 추적해 소송까지 제기했다. 한국디지털콘텐츠창작자협회(협회)는 불법 복제물 피해 작가들을 모아 일본인으로 귀화했다고 알려진 ‘뉴토끼’ 운영자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일본 법원에 제기했다. 첫 재판은 다음 달 15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다.
김동훈 협회 회장은 “인터넷에 나와있는 운영자의 정보들을 모아 일본으로 귀화한 시점 확인했고, 일본 법무법인에 협조를 요청해 해당 연도에 귀화한 한국인 중 운영자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협회 법률대리인인 김종휘(법무법인 정독) 변호사는 “신원 특정을 위해 관보도 뒤지고 사설탐정도 고용해봤다”며 “민사 소송 이후에 형사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저작권보호원 저작권 침해대응 종합상황실에서 열린 불법사이트 긴급차단·접속차단 제도 시행 성공 다짐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불법 복제물 사이트 운영자를 쫓는 경찰 수사도 더디다. ‘뉴토끼’ 수사는 현재 문체부, 경찰청, 경북경찰청 등으로 분산돼 수년 째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뉴토끼 관련 사건이 장기화되면서 한동안 수사가 중단됐다가 최근 재개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경북청에서 ‘마나토끼’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운영진이 같다고 보여지는 ‘뉴토끼’ ‘북토끼’ 수사도 경북청에서 합병해서 진행하는 것을 검토하라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저작권 침해를 입은 작가들이 창작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서야 하는 현실이 K-콘텐트의 생태계를 위축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10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하다 ‘뉴토끼’ 소송에 참여한 A씨(34)는 “불법 사이트에 작품이 유출된 뒤 수익이 30% 이상 감소했다”며 “불법 사이트로 인한 수익 피해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 일을 그만둔 동료 작가들이 많다”고 말했다.
불법 사이트에 작품 4개가 유출당한 B씨(37)는 “내가 만든 웹툰이 (불법사이트에서 광고하는)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사이트의 이용자를 유인하는 미끼로 쓰인다는 걸 알았을 때 참담했다”며 “범죄자들이 정부와 경찰을 비웃으며 범죄 행위 당당하게 지속하고 확장하고 있음에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또 다른 피해자 C씨(34)도 “운영자에 대한 엄벌뿐만 아니라 불법 콘텐트 공유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