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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번쩍, 5일 연속 택배 분류…휴머노이드, ‘진짜 일’ 시작했다

중앙일보

2026.05.19 00:08 2026.05.19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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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음료수 가져다줘.” 이 말을 들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무릎을 반쯤 굽힌 뒤 무게가 23㎏에 달하는 냉장고를 번쩍 들어 올렸다. 쌀 한 포대보다 무거운 무게를 들고도 성큼성큼 흔들림 없이 걸어왔다. 테이블 앞에 선 뒤엔 상체만 180도 돌려 뒤편에 냉장고를 안전하게 내려놓았다.

#장면2.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선 ‘피규어03(모델명)’은 밀려드는 택배를 분류하느라 분주하다. 비닐과 박스 등으로 포장된 택배를 구분하고, 운송장을 아래로 향하게 한 다음 컨베이어 벨트로 하나씩 흘려보낸다. 24시간 잠도 자지 않고 5일 넘게(19일 오후 4시 현재 134시간째) 분류 작업을 해내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람의 자리에서 ‘진짜 일’을 시작했다. 주인공은 자동차 공장 생산라인 투입을 준비 중인 현대차그룹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와, 미국 피규어AI의 ‘피규어03’이다.
현대차그룹 보스턴다이내믹스가 18일(현지시각)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무게 23㎏ 가량의 냉장고를 통째로 들어 옮기는 장면을 공개했다. 사진 보스턴다이내믹스

현대차그룹 보스턴다이내믹스가 18일(현지시각)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무게 23㎏ 가량의 냉장고를 통째로 들어 옮기는 장면을 공개했다. 사진 보스턴다이내믹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18일(현지시간) 아틀라스의 시연 영상을 공개하며 “대규모 시뮬레이션 기반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통해 새로운 동작을 빠르게 학습해 나가고 있다”며 “현실 작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전신 제어 능력과 외부 물체를 다루는 능력을 완벽히 갖췄다”고 자평했다. 특히 연구진은 아틀라스에 새 동작을 학습하고 수행토록 하는 기간을 단 ‘1일’로 잡았는데, “그만큼(하루)은 아니지만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고 덧붙였다. 시뮬레이션 학습을 통해 최대 45㎏의 냉장고를 운반하는 데도 성공했다.

피규어AI는 ‘피규어03’의 택배 분류 작업을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있다. 회사 측은 “로봇 역시 인간과 유사한 수준의 작업 속도에 접근하고 있다”며 “로봇이 고장 날 때까지 생중계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휴머노이드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것은 산업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틀라스와 피규어03이 활약하는 제조업과 물류업은 최근 고령화, 인건비 상승 등으로 성장이 둔화하고 있다. 사람이 하기 위험한 일, 근골격계 부담이 큰 일, 숙련 인력 확보가 어려운 현장에 휴머노이드가 우선 투입되면 장기적으로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피규어AI는 유튜브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프랭크’가 컨베이어 벨트 위로 밀려드는 택배물들을 분류해 정리하는 모습 생중계중이다. 사진 피규어AI

피규어AI는 유튜브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프랭크’가 컨베이어 벨트 위로 밀려드는 택배물들을 분류해 정리하는 모습 생중계중이다. 사진 피규어AI

하지만 상용화를 위해 넘어야할 장애물도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실제 피규어AI의 생중계가 완벽했던 것만은 아니다. 상자가 겹치거나 위치가 조금 어긋나면 동작을 멈추고 한참이 지나서야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물품을 꺼내다 말고 갑자기 멈춰 서서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부자연스러운 모습도 연출됐다.

안전 문제와 사회적 수용성도 풀어야 할 숙제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통제된 펜스 안에서만 움직이는 일반 산업용 로봇과 달리, 인간 노동자와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움직인다. 이는 시스템 오류나 오작동이 발생할 경우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고용 불안감도 여전히 짙게 깔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계의 흐름을 거스르긴 힘들다. 최혁렬 성균관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피지컬 AI의 가장 큰 허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일반 작업을 수행해내는 ‘일반화 능력’인데, 이번 시연은 이를 실제로 증명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일부 보완해야 할 점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산업 현장 투입 측면에서 거대한 ‘브레이크스루(돌파구)’를 맞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규어AI의 휴머노이드 로봇 ‘피규어03’이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택배분류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찰리 채플린이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노동을 묘사한 것과 유사한 모습이다. 중앙포토·사진 피규어AI

피규어AI의 휴머노이드 로봇 ‘피규어03’이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택배분류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찰리 채플린이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노동을 묘사한 것과 유사한 모습이다. 중앙포토·사진 피규어AI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1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제 세계는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산업용 로봇을 넘어 AI 기반의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며 “로봇은 사람이 부족한 제조 현장의 빈자리를 메우고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또 “로봇이 위험·기피 작업을 대신 수행하게 되면 제조 현장 역시 ‘아무도 가기 싫어하는 일자리’에서 ‘청년들이 다시 찾는 스마트한 일자리’로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휴머노이드의 조기 등판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외 주요 기업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아틀라스는 당장 올해 3분기 로봇메타플랜트어플리케이션센터(RMAC)에서 ‘실전 트레이닝’에 돌입한다. 생산라인에서 필요한 각종 데이터와 돌발 변수를 학습하기 위해 일종의 ‘인턴’으로 현장에 취업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24시간 사람 없이 AI 기술과 로봇만으로 공장을 돌리는 ‘다크 팩토리(무인 공장)’ 구현의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가한다.

실전 압축 훈련을 마치면 아틀라스는 2028년 미국 현대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 공장을 시작으로, 2029년 기아 조지아 공장 등에 순차적으로 투입된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미국에 연 3만대 규모의 아틀라스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초기물량 2만5000대를 현대차·기아 공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최근 해외 투자자설명회(IR)에서 “첫 1~2년은 미국 공장에 대량 배치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안전성을 확보할 예정”이라며 “조립 공정 중 작업자에게 가장 힘들고 가혹한 공정에 우선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도어·변속기·섀시·타이어 장착 등 무거운 부품을 반복적으로 조립하는 핵심 공정까지 로봇이 도맡을 전망이다.



고석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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