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찾은 조정선 전 PD. 한 작품 앞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조정선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배철수의 음악캠프〉. 라디오 음악 방송의 역사라고 해도 될 만한 프로그램들을 제작한 조정선(64) 전 PD에게도 은퇴는 다가왔다.
" 아내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가방 같은 거 말고 인생을 담은 선물을. "
라디오 PD라는 직업은 내 몸을 가족보다 일터에 가깝게 했다. 37년. 아내는 많은 걸 참아줬다. 2020년 말 은퇴하고 드디어 아내 곁으로 돌아갔지만 일터를 떠난 공허함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뭐라도 채울까 싶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려 했지만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대신 동해안 해파랑길을 27일 동안 걸었다. 무작정 나선 길에서 탈출구가 보였다. 남은 생애 동안 두근거리는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두근거리는 게 뭘까 생각했는데, 여행이 그중 하나였다.
아내와 1년에 두 번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패키지여행을 다녔는데, 뭔가 부족했다. 관광지만 대충 둘러보는 게 아닌 다른 여행을 하고 싶었다. 느긋하게 한 달 살기를 해보기로 하고, 체코로 떠났다.
독일과 국경을 맞댄 소도시 데친에 숙소를 잡고 우리는 27일간 라이프치히∙드레스덴∙프라하까지 대중교통으로 돌아다녔다. 걷고 싶으면 걷고, 쉬고 싶으면 쉬었다. 처음으로 여행의 주인이 된 것 같았다.
두 번째 한 달 살기로 떠난 곳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8년 전 패키지여행으로 다녀왔지만 저렴한 물가, 맛있는 음식, 친절한 사람들을 다시 접하고 싶었다. 체코 때와 달라진 건 계획이 더 없어졌다는 점.
첫 도착지 리스본에서 머물 곳을 제외하곤 갈 곳도, 숙소도 정하지 않았다. 리스본∙포르투∙빌바오∙마드리드 등을 돌며 짧게는 사흘, 길면 일주일씩 머물렀다. 어디를 가나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
돈·건강·결단력 삼박자 맞아야
」
온화한 날씨와 저렴한 물가 덕에 한 달 살기 성지로 꼽히는 포르투갈 리스본. 사진 조정선
한 달 살기 열풍을 되살린 주역은 은퇴족이다. 은퇴 후 해외로 떠나는 게 요즘 필수 코스가 됐다. 미얀마에서 한 달을 살다 온 권모(58)씨의 설명.
" 70~80세가 된 은퇴 선배들과 최근 은퇴한 세대는 또 달라요. 선배들이 해외에서 살아볼 생각을 못 해 본 세대라면, 요즘 60세 정도면 해외여행 경험도 많고 생각도 젊거든요. 어차피 은퇴하면 시간이 많은데 다녀온 사람들이 ‘너무 좋더라’고 하니 마음이 동하는 거죠. "
하지만 60대의 장기 여행은 간단치 않다. 돈∙건강∙결단력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세 가지가 준비됐더라도 또 다른 장벽이 있다. 예전부터 일부 여행사가 한 달 살기 상품을 내놓은 적이 있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고객별로 원하는 일정이나 숙소 등이 천차만별이어서 묶음 상품을 만들기 어려웠다.
여행 상품이 없다는 건 여행자가 스스로 모든 걸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은퇴자의 상당수는 해외여행을 직접 설계해 보지 않았다.
여행 일정은커녕 비행기 티켓조차 예약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많다. 세세하게 알아봐 줄 자녀가 있으면 좋겠지만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걱정만 할까 봐 말 꺼내기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곳을 고르는 방법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