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대구·부산 광역단체장 선거. 그리고 부산북갑 보궐선거까지. 6·3 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격전지에 출사표를 낸 대형 주자들을 탐구합니다. 이들은 어떤 길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까요. 이 시리즈에서는 정치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들여다봅니다.
지난 16일 부산시 북구 만덕동 ‘만덕지기 마을 축제’. 작은 공원에 가족 단위 나들이객 3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은 종이접기를 했고, 부모들은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볕이 뜨거웠지만 공원은 활기찼다.
지난 16일 부산 만덕동 마을 축제를 찾은 한동훈 무소속 후보에게 사인을 해달라며 시민들이 모여 들었다. 박성훈 기자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몰렸다. 무소속 한동훈 후보(53)가 차에서 내려 행사장으로 들어왔다. 수행은 단출했다. 운전하는 사람과 수행비서 1명. 현장에는 공보 담당자만 보였다. 정당색 조끼를 맞춰 입은 선거운동원은 없었다. 한동훈은 곧장 시민들 사이로 들어갔다.
" 사진 찍어주세요. "
사람들이 그를 두 겹, 세 겹 둘러쌌다. 취재진은 카메라를 머리 위로 들어야 했다.
" 잘생겼다, 한동훈. "
" 대한민국을 살리자. "
흰 종이를 내밀며 사인을 요청했다. 한동훈이 쓴 책(『국민이 먼저입니다』)을 준비한 젊은이도 있었다. 눈에 띈 건 10대들이었다. 적지 않은 중고등학생들이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했다. 이유를 묻자 “좋잖아요”라며 웃었다. 현장은 연예인이 온 듯한 분위기였다.
다른 장면도 있다. 선대위 발족식은 한동훈의 현재를 압축한다. 지지와 반감, 환호와 배신자 프레임이 같은 공간에 있었다. 민심의 벽은 두터웠다.
지난 17일 한동훈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발족식에 지지자들이 모였다. 한동훈은 선대위 관계자들에게 임명장을 줬다. 건물 밖 공기는 달랐다. 한동훈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열었다. 건물은 봉쇄됐다. 충돌에 대비해 경찰이 출입을 막았다.
지난 17일 부산 덕천동에서 열린 한동훈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 한 후보의 연설에 지지자들이 손을 들어 박수를 쳤다. 박성훈 기자
그들에게 한동훈은 보수 후보가 아니었다. 윤석열을 배신한 사람, 국민의힘을 갈라놓은 사람이었다. 지난달 26일 부산 구포초등학교에서 열린 ‘한마음 체육대회’에서도 일부 시민들은 그를 향해 “배신자”, “북구에 왜 왔냐”고 소리쳤다.
한동훈은 지난 4월 14일 부산 북구갑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가 싸워야 할 상대는 민주당 후보만이 아니었다. 분열된 보수와 '배신자'라는 낙인은 그가 넘어야 할 더 큰 벽이었다.
한동훈은 검사 시절 “검찰 수사는 세 줄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선대위 발족식에서 ‘왜 한동훈인지’를 세 줄로 설명했다.
민주당을 견제하려면 보수가 다시 서야 한다. 보수를 재건하려면 계엄의 그림자와 ‘윤어게인’의 덫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 출발점을 부산 북갑 승리로 만들겠다.
한동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현장에서 선거 유세로 정신이 없어 인터뷰가 여의치 않아 따로 부탁을 한 터였다. 이동 중 차 안에서 직접 연락을 했다. 지난 18일 밤이다.
궁금한 게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정치공학적 질문은 뒤로 미뤘다. 그보다 진솔한 속내를 듣고 싶었다. 그를 차기 대선 주자로까지 지지하다 탄핵과 함께 돌아선 ‘윤어게인’ 세력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