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격전지 분석④ 대구 30년 만의 ‘국민의힘 대구 둠스데이(Doomsday)’, 현실화할까? 앞서가는 김부겸, 추격하는 추경호…대구시장 선거는 대혼전 국면 미래를 향한 투표 심리에 ‘조작 기소 특검법’이라는 현실적 장벽 돌출
김부겸(왼쪽)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와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가 5월 14일 선관위 후보 등록을 마친 뒤 각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는 좌우의 날개가 균형을 이뤄야 제대로 날 수 있습니다. 대구가 그 균형을 잡아줘야 합니다.”(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
“배를 저을 때 노가 하나뿐이어도 좌우를 번갈아 저으면 앞으로 잘 나아갈 수 있습니다.”(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
따스한 봄 햇살이 분지를 감싸던 5월 11일 오전, 대구 수성구 경북고 운동장에서는 경북중·고 총동창회 체육대회가 열렸다. 경북고 동문인 송언석 원내대표(63회)와 권칠승 의원(65회)은 예정에 없던 인사말 기회를 얻어 서로를 겨냥한 듯한 메시지를 던졌다. 대구시장 후보 등록을 나흘 앞둔 시점이었다.
송 원내대표의 말과 표정에서는 ‘보수의 최후 보루’ 대구만은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읽혔다. 반면 권 의원의 발언에서는 중앙정부와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지방권력까지 확보하더라도 국정 운영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어 나왔다.
과거 권력의 메카였고 지금도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에서, 국민의힘은 지지를 호소하고 민주당은 정권 운영 능력을 강조하는 장면 자체가 낯설다. 그만큼 이번 대구시장 선거는 기존 정치 지형의 균열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받아들여진다.
운동장 곳곳의 기수별 텐트는 동문과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로 북적였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 이수찬 개혁신당 후보 등 주요 대구시장 도전자들도 지지자들과 함께 교정을 돌며 표심 잡기에 나섰다. 추경호 후보는 〈월간중앙〉과 만나 “여론 흐름이 바짝 붙은 것 아니냐”며 추세 반전을 자신했다.
실제 여론은 접전 양상을 예고한다. 뉴스1·한국갤럽 조사(5월 9~10일, 대구 시민 803명 대상)에서 김부겸 후보는 44%, 추경호 후보는 41%를 기록했다. 한 여론조사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장동혁 체제의 내부 갈등과 노선 혼선으로 지지율을 깎아 먹는 사이 민주당의 입법 강행 논란이 보수층 결집을 자극하면서 선거판이 빠르게 유동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후보가 대구시장 선거에서 이 정도 기세를 올린 것은 이례적이다. 5월 초까지만 해도 김부겸 후보는 두 자릿수 격차로 선두를 달렸다. 대구 수성갑 국회의원, 국무총리를 지낸 그는 단순한 민주당 정치인을 넘어 지역성과 행정 경험을 겸비한 중량감 있는 인물로 자리매김해왔다. 국민의힘에 피로감을 느낀 유권자들 사이에서 김 후보를 현실적 대안으로 받아들이는 흐름도 나타났다.
다만 여권발 ‘조작 기소(공소 취소) 특검법’ 논란은 선거 흐름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 이슈가 보수층 결집을 촉발하지 않았다면 김 후보의 독주가 더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구시장은 1995년 무소속 문희갑 후보 당선 이후 줄곧 국민의힘 계열이 차지해왔다. 만약 김부겸 후보가 승리한다면 31년 만의 정치적 이변이 된다. 김부겸 캠프의 이헌태 홍보특보는 “공소 취소 논란이 일시적으로 보수층 결집을 자극할 수는 있지만, 변화와 균형을 바라는 민심 역시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며 “김 후보 지지층의 결속력과 확장성이 예상보다 강하다”고 주장했다.
5월 11일 대구광역시 경북중·고 총동창회 체육대회를 찾은 김부겸(오른쪽)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추경호(맨 왼쪽 붉은색 상의) 국민의힘 후보.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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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국민의힘에 67% 몰아준 대구의 변심
불과 1년 전 대선에서 대구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에게 67.6%의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그랬던 국민의힘이 대구시장 선거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배경에는 장동혁 지도부를 둘러싼 실망감이 자리한다. ‘절윤(絶尹,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단절)’ 요구에 대한 미온적 대응, 방미(訪美) 논란, 지방선거 공천 파동 등이 겹치며 중도층 이탈과 당내 반발이 커졌다는 것이다.
대구의 한 국민의힘 당원은 “매달 1만원씩 내던 당비를 대폭 줄였다”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보수를 지켜봐야 결국 영광은 장동혁 대표에게 돌아간다는 인식이 있다”며 “지지층 기대와 어긋나는 언행이 반복되면서 장 대표가 싫어 김부겸을 찍겠다는 사람들까지 생겼다”고 전했다. 이어 “국민의힘을 정신 차리게 할 회초리로 김부겸을 써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조작 기소 특검법’ 논란이 정권 견제 심리를 자극하면서 장동혁 변수는 다소 희석되는 흐름이다. 그러나 대구 지역 정치 고(High)관여층의 당 지도부에 대한 불신은 쉽게 걷힐 것 같지 않다. 윤석열 정부 시절 용산 대통령실에서 근무한 한 대구 출신 인사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관심은 지방선거보다 차기 전당대회와 총선에 가 있다는 비판 팽배하다”며 “현장 민심은 타들어 가는데 당은 철 지난 구호만 반복해왔다”고 비판했다.
이런 누적된 피로감과 실망감이 결국 민심 이반으로 이어졌다는 게 대구 현지의 전반적 기류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힘에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김부겸을 통해 TK(대구·경북) 현안을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편이 낫다”는 현실론도 일부에서 힘을 얻었다. 여기에 국민의힘 경선 혼선까지 겹치며 김부겸 지지율은 한때 50% 위로 치솟았다.
이번 선거 결과는 단순한 지방권력 교체 이상의 의미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이 대구·부산을 모두 지켜낸다면 친윤계 중심 체제가 일정 부분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국민의힘에 그만큼 변화의 동력은 줄어든다. 반대로 대구에서 김부겸 후보가 승리할 경우, 이는 대구 시민들이 국민의힘에 구조적 경고를 보낸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서성교 건국대 특임교수는 “대구가 무너지면 국민의힘은 정치적 정당성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며 “당내 권력 재편과 총선 공천을 둘러싼 격렬한 내부 투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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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오만이 극치에 달해”
이 모든 흐름을 다시 흔들 수 있는 대형 변수로 떠오른 것이 민주당의 ‘조작 기소 특검법’이다. 뉴스1·한국갤럽 조사에서 응답자의 54%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지만, “적절하다”는 응답은 22%에 그쳤다. 국민의힘이 제기하는 ‘이재명 대통령 공소취소용 특검’ 프레임이 파고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그동안 이재명 대통령은 국정 운영 성과를 바탕으로 대구·경북 지역의 거부감을 일정 부분 희석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실제로 한국갤럽 4월 5주차 조사에서는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 평가가 56%로 부정 평가(36%)를 20%포인트 앞섰다. 특히 지난 대선 당시 강한 비토층이었던 60대 이상에서도 문재인 전 대통령보다 높은 평가가 나타나는 등 변화 조짐도 감지됐다.
‘조작 기소 특검법’ 논란은 이런 흐름에 다시 제동을 걸 가능성이 크다. 지역 표심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대구 민주당 후보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공소 취소 특검 논란을 접했을 때 선거판 자체를 흔들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원래 이런 의제는 선거를 앞두고 철저히 관리하고 숨기려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를 지나치게 당당하게 밀어붙이는 모습 자체가 충격이었다”면서 “그러고도 유권자의 평가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할 만큼 여권의 오만이 극치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정색했다. 장 교수는 나아가 “장동혁 대표의 국민의힘이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길래 여당이 이렇게 나올까 싶어 한편으로는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대한민국 선거에서는 통상 보수가 먼저 결집한 상태에서 진보가 추격하는 게 일반적 흐름이었다. 하지만 2020년 이후에는 진보가 결집하고 보수가 추격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다는 게 장 교수의 분석이다. 이번 대구 시장 선거도 김부겸 후보가 최대의 지지층을 확보한 상태에서 추경호 후보가 서서히 삭감해 들어가는 식으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 김 후보 지지율이 빠지는 속도에 당락이 갈리는 구도인 셈이다. 이 같은 지지율 변동 흐름에 ‘조작 기소 특검법’ 논란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며 보수층 재결집 속도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역 정가에서 나온다.
결국 대구시장 선거의 향배는 부동층의 마음에 달려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평생 민주당 후보, 즉 ‘파란색 옷을 입은 후보’를 찍어본 경험이 거의 없을 것이다. 오랜 정치적 습관과 정체성, 지역 공동체 속에서 형성된 경로 의존성은 다른 선택을 쉽게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보수의 본산 대구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준다는 것은 많은 유권자에게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치적 정체성과 행동 패턴을 거슬러야 하는 일종의 ‘급진적 사유’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5월 11일 대구광역시 경북중·고 총동창회 체육대회를 찾은 이수찬(오른쪽 팻말을 든 사람) 개혁신당 대구시장 후보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부모(왼쪽 서 있는 남녀)와 함께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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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다시 한번’ 對 ‘내 가족의 미래는?’
실제로 지역 정가에서는 “대구는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을 밀고 싶지는 않다”는 복합적 심리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변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그 변화의 수단으로 민주당을 선택하는 순간 느끼게 될 심리적 이질감과 부담이 여전히 크다는 것이다.
반대로 일부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다른 질문도 고개를 들고 있다. “지금처럼 계속 국민의힘 후보를 찍는 방식으로 과연 나와 내 가족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느냐”는 자문(自問)이다. 이번에도 대구가 뭉쳐 국민의힘 후보를 밀어주고, 그것을 발판 삼아 국민의힘이 숨통을 틔운 뒤 총선과 대권 경쟁에서 다시 우위를 점하는 시나리오는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하지만 늘 이런 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사이, 국민의힘은 제대로 된 반성과 혁신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렇게 허약한 기반 위에 탄생한 박근혜·윤석열 정부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졌다. 앞서 국민의힘 지지를 철회했다는 한 당원은 “국민의힘이 수권정당으로 거듭하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따끔한 맛을 봐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런 잠재의식들이 투표행위로 고스란히 연결되진 않는다. 선거에서는 평상시에는 다양한 변수들을 두고 비교적 이성적인 판단이 작동한다. 하지만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그런 복합적 고려는 점차 단순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서성교 교수가 지적한다. “이른바 ‘휴리스틱(heuristic, 경험에 기초한 직관적 판단)’이 작동하면서 여러 변수가 하나의 인상과 판단으로 압축되고, 결국 유권자는 ‘투표장에 갈 것인가’, ‘간다면 누구를 찍을 것인가’라는 기준에 따라 선택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힘 역시 대구에서 수차례 위기를 돌파해온 정당이다. 선거 막판 보수 결집을 예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역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움직임을 유력 변수로 꼽기도 한다. 추경호 후보에 대한 보다 분명한 메시지가 나올 경우, 국민의힘을 이탈한 보수층 표심 일부가 다시 복귀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1948년 일본 문부성이 발간한 중·고생용 교과서에는 이런 문장이 실려 있었다. “민주주의를 단순한 정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틀렸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 결국 이번 대구시장 선거 역시 시민들 ‘마음속 민주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최종 결과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