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금세탁 조직과 결탁해 1000억원대 범죄수익금을 세탁한 국내 대포통장 유통 조직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은 보이스피싱과 투자사기 피해금을 대포통장에 모은 뒤 테더코인(USDT)과 상품권 거래 등을 이용해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범죄수사대는 20일 범죄수익은닉규제법·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국내 대포통장 조직 총책 A씨(29)와B씨(28), 중국 자금세탁 조직 관련 조직원과 코인 송금책 등 149명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총책과 관리책 등 7명은 구속 송치됐다. 핵심 조직원 27명에게는 형법상 범죄단체조직·활동죄도 적용됐다.
경찰은 중국 광저우와 선전 일대에서 활동하며 자금세탁 조직을 이끈 한국인 총책 김모(48·일명 ‘왕회장’)씨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하고 여권 무효화 조치를 했다.
자금 세탁 조직의 범죄 수익. 서울경찰청 제공.
경찰에 따르면 A씨 일당은 2024년 3월 지역 선·후배와 지인들을 끌어모아 조직을 만든 뒤 대포통장을 모집·개설해 보이스피싱 조직 등에 공급했다. 계좌 하나당 최소 1500만원에서 최대 2500만원을 받고 넘겼다고 한다. 경찰이 확인한 대포통장 입금액만 약 310억원 규모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투자리딩방 사기 피해금이었다.
이들은 처음엔 중국 선전에 거점을 둔 ‘왕회장’ 조직에 대포통장만 공급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국내 조직원들을 중국 현지 사무실로 보내 보이스피싱 범행과 자금세탁 작업에 직접 참여시켰고, 세탁 금액의 3~6%를 수수료로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범죄수익 세탁 규모는 총 1170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860억원은 중국 조직을 통해 세탁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범죄수익금 13억8000만원에 대해 기소 전 몰수·추징보전 조치를 했다.
가장 많이 활용된 세탁 수단은 테더코인 송금이었다. 전체 세탁 금액의 72%가 USDT 거래를 통해 이뤄졌다. 조직은 피해금을 국내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으로 전환한 뒤 해외 거래소와 개인 코인지갑으로 보내 추적을 어렵게 만들었다. 상품권 거래를 통한 세탁 비중은 19%였다.
범행에는 조직폭력배도 가담했다. 경찰 관리 대상인 폭력조직 3곳 소속 조직원 8명은 대포통장을 다른 범죄조직에 유통하고 중간 수수료를 챙겼다. 일부는 직접 조직에 가입해 모집책 역할을 했다.
한국 조직원과 중국 조직원 사이의 대화 내용. 서울경찰청 제공
이들은 은행 거래 제한을 피하려고 ‘유령 법인’을 세운 뒤 허위 세금계산서와 물품공급계약서를 제출해 법인 계좌 이체 한도를 풀었다. 또 “대출을 받으려다 속아서 계좌를 개설했다”는 내용의 가짜 텔레그램 대화 캡처본을 만들어 조직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대포통장이 지급정지되면 직접 피해자와 금융기관에 연락해 해제를 요청하는 ‘사후 관리’도 했다. 후원회·협동조합 등에 1만원 이하 소액 후원금을 반복 송금하며 계좌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한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은 “상품권 거래는 범죄수익 은닉에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고액 거래 시 실명 확인과 금융당국 보고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