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20일 한국인 NGO 활동가가 탑승한 구호선단을 이스라엘 군이 나포한 데 대해 “자원봉사 가겠다는 제3국 선박을 나포하고, 체포해서 감금했다는데 이게 타당한 일이냐”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체포 영장 발부를 검토하라고도 공개적으로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너무 비인도적이고 심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외교부의 중동전쟁 관련 재외국민 보호 방안을 보고받은 뒤 “(나포한) 법적 근거가 뭐냐. 거기가 이스라엘 영해인가”라며 “이스라엘의 주권을 침해하거나 했느냐. (선박이 향하던)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과 관계없는 데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2회 국무회의 겸 제9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KFFP)에 따르면, 이스라엘 해군은 최근 한국인 활동가가 탑승한 가자지구 구호선단을 잇달아 나포했다. 지난 18일(한국시간 기준) 키프로스 인근 공해상에서 나포된 ‘키리아코스X’호에 탑승했던 한국인 활동가 김동현씨가 체포된 데 이어, 20일 새벽 이스라엘 해군에 붙잡힌 ‘리나 알 나불시’호에도 KFFP 소속 김아현씨(활동명 해초)와 한국계 미국인 조나단 빅토르 리씨(활동명 승준)가 타고 있었다.
회의에서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이 답변을 머뭇거리자, 이 대통령은 “모르는 건가, 입장이 난처해서 얘기 안 하는 건가”라며 “있는 대로 얘기하라. 이스라엘 정부도 아니고”라고 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영해는 아니지만 가자지역 전체를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남의 나라 침략해서 전투 중이니까, 교전하면 제3국 선박을 나포하고 잡아가고 그래도 되느냐”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김진아 외교부 2차관에게 질문하고 있다. 가운데는 김민석 국무총리.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이어 “(나포 지역이) 이스라엘 영해가 아니면, 항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우리 국민을 국제법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사유로 잡아간 것 맞지 않느냐”라고도 했다. 이에 위 실장은 “검토해서 따로 보고를 드리겠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체포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전범으로 인정돼 체포 영장이 발부돼 있다”며 “지금 유럽의 거의 대부분 국가들은 체포영장을 발부해 국내로 들어오면 체포하겠다고 발표했다”라고 했다. 이에 위 실장이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렇지는 않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제가 보니까 상당히 많다. 우리도 (체포영장 발부를) 판단해 보자”고 주문했다.
앞서 2024년 11월 국제형사재판소는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 전쟁 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유럽 일부 국가는 “ICC 법규에 따를 것”(프랑스 외무부 공보담당자),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법적 의무이기 때문에 (입국 시) 체포할 것”(이탈리아 국방장관), “체포영장을 준수하겠다”(네덜란드 외무장관) 등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한국의 ‘핵심 동맹국’인 미국이 강하게 반대해왔다는 점이다. 미국 백악관은 ICC 결정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 성명을 통해 “근본적으로 거부한다”고 밝혔으며,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도 “이스라엘과 언제나 함께해 이스라엘 안보 위협에 맞설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지난해 12월 체포영장 발부에 관여한 ICC 판사 2명을 제재 대상으로 지명하는 등 반발 수위를 높였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한·미 관계의 또 다른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ICC 관련 사항은 상황에 대한 이해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지난해 4월 미국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실용 외교’ 측면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가자지구는 하마스 때문에 준(準) 전시상태가 지속되고 있어, 이곳을 향해 오는 정체 모를 배에 대해 이스라엘도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스라엘에 나포된 한국인이 풀려나는 과정에서나, 첨단 기술 분야의 한·이스라엘 기업 협력 모두에 이번 발언이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은 일제히 이 대통령을 비판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초고난도 국제분쟁을 국내 정치식 선악 구도로 접근한 것은 매우 경솔한 처신”이라며 “우리 국민이 탄 HMM 나무호가 피격당했을 때는 침묵하면서, 이스라엘 총리와 이스라엘 군 문제에는 앞장서는 모습에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제발 자중자애하라”며 “트위터에 떠오르는 대로 아무 말이나 쏟아내시던 성남시장 이재명이 아니라, 말 한마디에 나라가 죽고 사는 무게를 아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어달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