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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아싸리” 그때부터다…29세 전재수 ‘3전4수’의 시작

중앙일보

2026.05.20 13:00 2026.05.26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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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선거 후보 탐구
서울·경기·대구·부산 광역단체장 선거. 그리고 부산북갑 보궐선거까지. 6·3 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격전지에 출사표를 낸 대형 주자들을 탐구합니다. 이들은 어떤 길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까요. 이 시리즈에서는 정치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들여다봅니다.
📌 6.3선거 후보 탐구 시리즈 전체 보기: www.joongang.co.kr/plus/series/355
전재수 후보가 초등학교 4~5학년 시절 소풍을 가서 찍은 모습. 사진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캠프

전재수 후보가 초등학교 4~5학년 시절 소풍을 가서 찍은 모습. 사진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캠프

1971년 경남 의령의 한 산골 마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밤이면 호롱불이 일렁이던 가난한 농가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어느덧 6살이 되었지만, 가난 때문에 늘 배가 고팠다. 그해 늦은 가을 아이는 동네 어귀에 있던 5~6m 높이의 감나무를 오르고 있었다. 탐스럽게 익은 큰 홍시 하나만 먹으면 지독한 이 허기가 달래질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달콤함은 짧았고 대가는 혹독했다. 멀리서 서슬 퍼런 기세로 새끼줄을 들고 쫓아 온 마을의 최고 어른인 할머니가 아이를 나무 기둥에 꽁꽁 묶었다. “마을의 공동 재산인 귀한 열매에 손을 대다니, 정신머리를 고쳐놓아야 한다”는 호통과 함께였다. 지금은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지만 먹을 것 없던 시절, 시골의 홍시는 고이 모셔두었다가 마을의 큰 손님에게나 내어놓는 귀한 음식이었다.


밭일하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이의 엄마는 그 모습에 억장이 무너졌다. 하지만 마을 최고 어른이 묶어 놓은 새끼줄을 차마 풀지는 못하고 그 곁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시골이라는 공동체 사회에서는 그 마을의 최고 어른이 결정한 것은 곧 법이나 마찬가지인 시대여서다. 묶인 아이도 그 옆에 묶여 있던 엄마도 아무 말이 없이 서산 너머로 뉘엿뉘엿 지는 석양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물도 말라버린 얼굴들이 어느새 석양에 붉게 물들고 있었다.


 AI활용 이미지. 위성욱 기자

AI활용 이미지. 위성욱 기자

“(엄마랑 말도 없이 그렇게 묶여 있는 게)참 서글펐는데, 묘하게도 (그날 보았던) 그 붉게 물든 빛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부산시장에 출마한 전재수는 그날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러면서 “훗날 숱한 정치적 풍파를 겪었지만 꺾이지 않고 지금까지 온 것은 아마도 그날 어머니와 함께 견뎌낸 그 붉은 노을의 기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에게는 이날의 기억이 평생 각인된 가난의 아픔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 일을 잘 기억을 못 한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는 한평생 가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보다 더 모진 세월을 많이 겪어서인지 그 날의 일화를 잘 기억을 못 하시더라”고 했다.


 전재수 후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집에서 찍은 사진. 사진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캠프

전재수 후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집에서 찍은 사진. 사진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캠프

들어가며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가 6월 3일 열리는 지방선거에서 첫 번째 시장직에 도전합니다. 12·3 비상계엄으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지난해 정권이 바뀐 후 처음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여서 그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해 볼 만한 싸움입니다. 민주당에게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부산에서 3번의 낙선 끝에 4번째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내리 3선을 하며 부산의 심장에 더불어민주당의 깃발을 굳건히 세웠던 그입니다. 하지만 ‘3전 4수, 전재수'로 압축되는 그의 인생 여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쓴 글, 구술 자료, 인터뷰 등을 기반으로 굴곡진 그의 인생을 톺아봅니다.


산골에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겠다는 희망으로 가족은 대도시인 부산 북구 만덕동으로 이사했다. 그가 8살 때였다. 하지만 도시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밤낮없이 일을 했지만 가난의 그늘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부모는 열심히 살면 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낙관(樂觀)’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마음으로 어머니는 공장과 밭으로 일하러 나갔고 그의 아버지도 밤길 같은 새벽길을 나섰다고 한다. 그런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그도 강한 맷집을 길렀다. 이 맷집은 훗날 그가 부산이라는 험지에서 세 번이나 낙선하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장 귀한 밑천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이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아싸리” 그때부터다…29세 전재수 ‘3전4수’의 시작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9948



위성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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