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대구·부산 광역단체장 선거. 그리고 부산북갑 보궐선거까지. 6·3 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격전지에 출사표를 낸 대형 주자들을 탐구합니다. 이들은 어떤 길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까요. 이 시리즈에서는 정치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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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고등학교 졸업사진. 사진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캠프
" “경호야. 항시 똑바르게 살아래이. 넘한테 절대 폐 끼치지 마고! 당한 사람은 몰라도 죄 지은 놈은 옳게 두 다리 뻗고 못 잔데이. 알았재?” "
추경호(66) 대구시장 후보의 모친 소오금(96) 여사는 아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틈만 나면 이 말을 한다. 수십 년 전, 그러니까 추 후보가 아직 국민학교에 다닐 적부터 그의 모친은 인이 박이도록 “올바르게 살아라”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어릴 때는 왜 자꾸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시나 생각했지만, 지금은 저 말을 삶의 신조처럼 새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기억 속 모친의 목소리는 늘 시끄러운 기계 소음과 함께였다. 1960년대 대구 서구 비산동 낙후했던 동네, 다닥다닥 붙은 허름한 주택들 중 하나였던 추 후보의 집 마당엔 큰 기계가 하루종일 시끄럽게 돌아갔다. 철사를 꼬아 철망을 만드는 기계였다. 그 기계에 부모님이 하루종일 붙어 일하는 가내수공업으로 온 집안 식구들이 생계를 유지했다.
이웃집으로 소음이 넘어갈까봐 마당에 슬레이트 지붕도 덮고 창문까지 모두 틀어막은 집에서, 소년 추경호의 소원은 ‘햇볕이 드는 집에 사는 것’이었다. 3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좁은 방에서 온 식구가 뒤엉켜 칼잠을 잤다.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캠프
그는 “2주에 한 번씩 기계를 돌리지 않는 날에 어머니께서 종종 돼지껍데기나 내장 같은 부속물을 사왔고 그럴 때면 큰 잔치가 열리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제대로 된 불고기를 먹은 것은 국민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였다. “이모가 사준 불고기를 먹고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웃음지었다.
오랜 세월 경제 관료로 공직에 종사하고, 정계에 입문한 뒤로는 이른바 ‘경제통’으로 통하는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추 후보. 그 흔한 출판기념회 한 번 하지 않아 자서전도 없고, 언론 기사에도 과거가 거의 조명되지 않아 그의 개인사는 베일에 싸여 있다. 때문에 그를 ‘엘리트 코스를 밟은 부잣집 자제’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부모님은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분들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부모님 직업부터 집에 TV가 있는지까지 가정 형편을 조사하던 시절이었는데, 부모님 학력을 ‘국졸’이라고 쓰기가 부끄럽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면 넉넉지 않은 형편에 자식들 키우느라 애쓰셨을 텐데 그걸 몰랐죠.”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가 어린 시절 철길 위에서 이종사촌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 고무신 신은 어린이가 추 후보다. 사진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캠프
그의 성장 스토리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건 스스로의 뜻이 컸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난을 극복하고 개천에서 용 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추경호 스타일’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당시에는 누구나 힘든 시절이기도 했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사람은 다 알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게다가 추 후보는 한 번 흥이 오르면 유진표의 ‘천년지기’를 열창하고 어르신들 앞에서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도 신명나게 곧잘 부르는 ‘아재미’도 갖추고 있다. 어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뜻이다.
궁핍으로 가득했던 소년 시절을 거쳐 고시생으로, 행정가로, 아버지로, 정치인으로 변신해 오면서도 늘 ‘성실맨’의 면모를 잃지 않았던 인간 추경호. 그는 이제 ‘텃밭’에서 졸지에 ‘험지’가 돼 버린 대구의 구원투수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대 후보와의 대결이 만만치 않은 상황. 그의 다음 챕터에서 과연 어떤 타이틀을 달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