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한 회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정모씨는 하루 한 번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순회한다. 혐오 표현 신조어와 기업 관련한 논란 등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정씨는 “디시인사이드·더쿠·인스티즈·X·인스타그램 등 사이트에서 어떤 표현이 부정적으로 쓰이는지, 논란이 되는 주제나 브랜드가 있는지 본다”며 “커뮤니티를 보는 것이 업무의 일환”이라고 했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포스터 등 기업 홍보물에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표현이 포함돼 논란이 이어지자, 기업에선 혐오 표현을 피하기 위해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다.
홍보·마케팅 담당자들은 인공지능(AI)을 사용해 혐오 표현을 미리 거르기도 한다. 정씨는 SNS에 카드뉴스를 올리기 전 항상 초안을 AI에 넣어 위험한 표현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광고 대행사에 다니는 이모(25)씨는 “AI로 소셜 미디어 트랜드를 분석하는 사이트를 이용해 연령대나 성별에 따라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표현이 무엇인지, 회사 이름과 혐오 표현이 같이 언급되는지를 수시로 점검한다”고 했다.
혐오 표현이 쓰이지 않게 조심하는 분위기가 강해지며 일부 홍보 담당자들은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 한 기업 홍보 담당자 최모씨는 “혐오 표현이 워낙 다양하고 끊임없이 생겨나니 전부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고, 콘텐트 검증에 무한정 시간을 쓸 수도 없어 딜레마”라고 했다.
지난해 2월 A사는 '발을씻자' 제품 홍보 과정에서 협업한 인플루언서 관련 논란이 불거지자 사과문을 올렸다. 사진 X 캡처
최씨는 A사의 ‘발을 씻자’ 논란 이후 회사가 홍보 모델에도 신경 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지난해 2월 A사는 ‘발을 씻자’ 제품 홍보를 함께한 인플루언서가 과거 X에서 남혐 발언을 했음이 알려지며 비난 여론이 일자 협업을 취소했다. 최씨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일반인보다 팔로워가 조금 더 많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보단 이력이나 배경이 더 잘 알려진 연예인을 선호한다”고 했다.
온라인에선 기업이 혐오 표현을 검증하는 전문가를 둬야 한다며 ‘화이트 일베’란 용어도 등장했다. 화이트 해커처럼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베’ 등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단 취지다.
1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기업마다 '화이트 일베'가 있어야 한단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사진 커뮤니티 캡처
스타벅스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이용자들이 컵을 망치로 부수는 모습. 사진 스래드 캡처
기업이 홍보물 관리에 주의를 기울이는 건 최근 ‘혐오 리스크’를 살피지 못한 기업이 연이어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지난 18일 오전 ‘5·18 탱크데이’ 이벤트를 열어 민주화운동을 폄훼했단 비판을 받았다. 논란 이후 온라인에선 스타벅스 텀블러를 부수고 상품권을 자르는 영상과 함께 불매운동 인증 글이 이어지고 있다.
스타벅스 논란이 커지자 쇼핑몰 무신사의 과거 게시물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X를 통해 지난 2019년 무신사가 게시한 홍보물 속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라서” 문구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고, 무신사는 이날 7년 만에 다시 사과문을 올렸다.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등 33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21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스타벅스 광화문점 앞에서 '역사 모독, 국가 폭력 옹호, 스타벅스'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뉴스1
기업 홍보물에 혐오 표현을 사용해 논란에 휩싸인 사례는 최근 몇 년간 이어지고 있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구단 유튜브 채널 ‘자이언츠 티비’는 지난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을 넣은 영상을 올려 비판을 받았다. 2021년 GS25와 2023년 넥슨, 2024년 르노코리아 홍보물에 집게손 동작이 포함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집게손은 극단적인 여성주의 진영에서 남성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은 나흘째 계속되는 모양새다. 21일 전국 곳곳에서는 스타벅스코리아를 비판하는 단체행동이 벌어졌다. 광주 서구 이마트 광주점 앞에서는 광주·전남 143개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스타벅스 제품을 망치로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같은 날 서울 종로구 스타벅스 광화문점 앞에선 5공피해자단체연합회와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가 스타벅스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사퇴와 마케팅 과정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